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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자로서의 출생과 신자로서의 삶

본문 /  요17:19


오늘 본문은 신자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되며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되며 무엇을 모델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 등을 제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1. 보냄 받음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듯이 주님께로부터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신자들이 무엇을 위해 보냄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말씀만을 놓고 보면 예수님의 대속 사역 곧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의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16절 말씀부터 보면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라고 선언하시고 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낸다고 하십니다. 신자가 이 세상을 사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늘나라에 속한 자라면 지금 당장 하늘나라로 데려가야 맞는 것임에도 우리는 18절 말씀처럼 예수님이 아버지께 보내심을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던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기에 세상에 내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19절에서 다시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심으로 분명한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한 자로서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세상에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도하시고 계획하신 거룩함에 이르는 목적으로 보냄을 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세상에서 먹고 살자면 세상에서도 적당히 처신하면서 섞여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세상과 신앙이 연결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신앙과 현실이라는 이중적인 구조 속에서 바리새적인 길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신앙을 예수 믿어 천국 들어가는 것 밖에 생각지를 않고 있지만 성경은 신자의 신앙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즉,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구원 얻은 자로서의 어떤 수준과 성장과 완성에 관한 요구와 그에 따르는 훈련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구약의 결론은 인간이란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데 그 도움은 바로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으로 구약이 끝이 납니다. 그래서 신약의 이야기는 구약이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된다고 하였으니 그리스도로 이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고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생의 모든 구원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신약이 더 많이 언급하고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기초 위에다 성도로서 어떻게 훈련되어져야 하며 어떻게 성화되어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 성화에 관한 부분이 없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신앙만 가지고 그냥 앉아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고민은 대부분 ‘죄를 안 짓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려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도 안 되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것이 죄인 줄을 알면서도 ‘하나님 이것은 죄인데 저로 하여금 이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길로 가면서도 그런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신자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오해하여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언제나 수동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얻은 구원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수동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결단이 있고 수고가 있는 것입니다.


2. 구원 이후

성경에서 우리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선 항상 나의 의지나 결단 이전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로마서 3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1-24) 이 말씀은 구속에 관한 은혜의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그러나 22절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에서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구원은 믿어서 얻는 것이지만 성경이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에 믿는다는 것은 행위나 공로와는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 내가 믿었더니 그것이 조건과 공로가 되어 구원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 구원이라면 그 구원은 이미 은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믿는다는 말은 신자가 된 다음에 하는 말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게 찾아 오셔서 나의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게 하신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아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은 내가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고 거기에 대해 생각조차 없었는데 어느 날 그냥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구원에 대해서도 ‘구원을 인간 스스로가 이룰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그 구원을 값없이 받아 가지기만 하면 된다’고 오해하여 사람들이 왜 안 받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인간을 죄인 할 때에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기에 전혀 하나님을 향해 손도 내밀지 못하는 저주와 비참 가운데 앉아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영안이 어둡고 영의 귀가 먹통이 되어 하나님을 찾지 않고 모르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공짜로 가져라 하는데도 안 가지는 것은 믿음이 없거나 완악해서가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것을 믿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나의 능력으로 믿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되었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것이 신자들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보고 듣고 회개하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믿음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하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딴 짓하고 있을 때에 우리를 잡아 오셨다면 지금도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나가면 또 하나님의 은혜로 잡아다가 이 자리에 데려다 놓으면 되지 뭐 하러 신앙생활을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냐’ 하는 겁니다. 아마 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 이런 식의 질문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롬6:1) 사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질문은 반드시 나와야 하고 또 이 부분을 바르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위험한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 진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구원의 다음 단계에 대해 명확하게 풀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요구나 감각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이 구원은 우리가 부모에게서 출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에 부모님과 상의하거나 의논을 한 적이 전혀 없는 것처럼 우리의 구원은 내가 설득을 당하고 지혜롭게 처신하고 판단하여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과 섭리와 은혜일뿐입니다. 그럼에도 너무도 많은 신자들이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잘 깨닫고 설득당한 결과인 줄로 여기기에 내가 설득만 잘하면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권적으로 꺼내어 내신 사역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원 이후에 마음대로 죄지으며 살아가도 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전적 책임을 져주시겠구나 라고 간단하게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관심과 책임 하에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았으니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가 아니라 구원 받았기에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있고, 채워야 할 소중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4)고 하십니다. 새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새사람이 되었으니 새사람다운 길을 가라는 말입니다. 신분이 바뀌는 것은 노력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되지만 그러나 새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도 나의 노력과 수고를 접어놓고 기도와 말씀만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저절로 될 줄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이 절대 필요하지만 말씀과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가야하는 방향과 원리와 목표와 방법들을 깨닫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지 기도와 말씀자체가 내 발걸음을 새사람을 향해 내디뎌야 할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새사람으로서의 길은 내가 직접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완성을 위한 훈련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은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혹은 행사나 어떤 활동들은 많이 하고 있는데 정작 성경에서 요구하는 인격적인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위해 자신을 훈련 가운데 동참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는 이 점을 지적하고 아주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와 인격적 훈련의 성격을 뛴 요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25-32) 그러기에 예수를 믿으면 올라간 눈 꼬리가 내려와야 하며, 웃음이 많아져야 되며, 참으며, 용서하며, 인자해져야 됩니다. 이것을 시험과 시련과 유혹이 기다리는 세상 속에 들어가 새사람답게 힘쓰고 노력하셔야 됩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서 또 이웃 앞에서 과연 새사람다운 신자로 살았느냐를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도만 한다고 해서 신자로서 마땅히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수고와 노력을 다 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중적인 면, 즉 신자로서의 출생과 신자로서의 삶 이 두 가지의 면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며, 이제부터 신자로서의 삶은 내가 걷지 않는 한 나의 신앙에 변화와 진전과 성장이 오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설교에 아멘하고 감동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을 대신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감동하고 은혜를 받은 것은 그대로 살기 위해서라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은혜 받았다는 말은 모두가 효과를 잃은 공수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이 자리에 나아온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은 자이기에 나아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 얻은 자로서 신자답게 살아가는 것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내가 가야하는 길이지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 길입니다. 혹시 우리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이 같은 은사들이 이 길을 잘 가도록 분발시킬 수는 있어도 단축시켜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로서 은사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체험이 있다고 해서 많이 성화된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성화의 길을 가는데 있어 우리에게 가장 많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 사람으로서의 생활 습관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는 성품적인 훈련이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가 하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훈련에 대해서는 골로새서 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2) 신자로 이미 출발을 했다면 이제 이것을 전제로 하여 그 다음에 요구 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5-10) 이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중생이란 바로 이런 신앙생활들을 가능케 하는 전제 조건입니다. 우리들이 이미 중생하여 지금 죽어도 하늘나라에 갈 것을 확신한다면 이제 그 확신을 근거로 하여 나아가야 할 중요한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나를 자녀로 삼으셨기에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구원 받고 은밀하게 숨어서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라고 세상에 보낸 것은 아닙니다. 그럴 것이라면 벌서 데려 가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세상에서 더 거룩하게 변화시키시기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같은 일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내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변화되고 성령의 열매들을 맺히게 되는 기적을 허락 하소서’라는 요청과 울부짖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 앞에 다가오는 시련과 난관들을 극복하고 이기십시오. 우리는 이기고 승리하도록 의도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진 자들입니다. 넘어질 수는 있으나 실패 할 수는 없으며, 이 길을 돌아갈 수는 있으나 포기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는 반드시 이 길을 완수해야 됩니다. 로마서 12장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우리의 생각만을 드림으로 다 드렸다고 여기지 마시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우리의 삶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시련과 유혹 앞에서 우리 인격과 존재자체를 산제사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바쳐서 성공하도록 의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고 외면한다면 우리만이 손해 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의 우리는 갑자기 특별한 초능력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전과 같은 기능을 가진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야 하는 성품 적이고도 성령의 열매적인 이 성화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계속적인 훈련이 있을 뿐입니다. 내 본심은 하나님의 편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안타까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무기력한 고백을 이제 더 이상 반복하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온전한 순종을 바치고 온전한 마음과 몸까지 드리십시오. 이 일에 지지 마십시오. 그러기에는 이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이 짧은 인생의 순간 동안의 훈련이 저 영원한 나라에서의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이 엄연한 진리를 직시하여 분발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의 구약에서의 결론과 신약에서의 우리를 향한 요구는 무엇입니까?

2.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도 그런 삶이 되지 않는 이유와 오해는 무엇입니까?

3.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애 대한 의미와 ‘믿음’에 대한 오해로 가지된 구원에 대한 우리의

   오해는 무엇입니까?

4. 말씀과 기도와 같은 신앙생활과 우리의 성장을 위한 훈련 사이에 있는 착각은 무엇입니까?

5. 중생(구원)은 무엇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6. 세상에 속하지 않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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