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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목표를 위해 일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본문 /  요17:21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데 있어서 죄가 가로막혀 원수 같은 관계에 빠져 있기 때문에 화목케 하는 사역을 감당하러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머리의 지체로서 불러서 이 하나 되게 하는 일을 훈련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게 되는 자리에 우리를 도달하게 하려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1. 목표

우리 신앙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나를 어떻게 이끄시는가 하는 방향성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시는 계획과 목표에 대해 무뎌서 하나님의 뜻을 놓치고 그리하여 의외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는 늘 싸움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은사와 능력과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 이야기하면 상당한 경지에 있었던 것이 오히려 그들을 싸우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2-13) 하나인 것을 몹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인데 왜 싸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14절 이하에 보면 눈과 코가, 팔과 다리가 왜 서로 싸우겠느냐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27절에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합니다. 말하자면 교회라는 것은 모든 지체가 상대방보다 얼마나 더 우월하고, 특별한 기능을 부여 받아서 얼마나 더 필요한 지체인가 하는 것을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 목표 때문에 보냄을 받아 훈련 과정을 밟게 하시며 또한 세워진 것임을 기억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교회에 신자들이 모인다고 하여 그것이 신앙의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신자로 모이면 그 다음에는 신앙의 완성을 향한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건물이 지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완성을 향한 과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각 지체가 연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야기는 마치 축대 공사를 하는 것 같은 묘사입니다. 오늘날은 규격화된 벽돌이기에 쌓아가는 것이 쉽지만 옛날에는 자연석 그대로의 돌들을 가져다가 대강 비슷하게 만들어 축대를 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석들을 잘 쌓기 위해서는 서로를 깎아 내어 맞추었던 것처럼 신자란 교회 안에서 서로가 하나가 되기 위해 깎여 지는 훈련의 과정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손과 발, 다리와 팔이 다 합쳐져서 의도된 바른 기능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 같은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각자가 가진 것을 가지고 서로 비교하게 되고 그런 비교하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서로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마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것과 같이 은사나 체험이 오히려 다른 신자들의 신앙을 죽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성령 운동파에 의해 방언이 터지며, 병 고치는 은사가 나타날 때, 그것을 경험한 자는 경험하지 못한 자를 공격했고, 경험하지 못한 자는 경험한 자를 공격했습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은 안 받은 사람들을 가짜라고 했고, 안 받은 사람은 받은 사람들이 신비주의자 내지는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나아갈 방향성을 모르니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비교해서 서로의 우열을 논하고 진짜 가짜를 나누는 싸움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지금 우리가 하나 되게 하는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이 말 속에는 우리들의 신앙의 중요한 두 기준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째는 주님과 하나 되는 일이 우리의 선택과 계획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과 둘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지 않고서는 결코 이 하나 되는 훈련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 오직 은혜로

오늘 본문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21절) 이 말씀은 요한복음 17장의 핵심이요, 목표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사실을 터득해서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기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구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기록된 문체 자체를 놓고 본다면 하나의 역사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주로 쓰고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의 역사와 전 우주적인 역사의 방향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고 또한 이 역사를 어떻게 끝내실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성경의 주를 이루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떤 도나 어떤 뜻에 관한 이야기는 적고, 오히려 어떤 일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편을 들었더니 이겼고, 하나님께 잘못했더니 맞더라는 사실 기록의 연속이더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한 번 계획하시고 시작하시면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계속 강조해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잡혀 있다는 시각을 우리 믿음에 중요한 부분으로 가지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이 같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놓치고 외면하여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하여 마침내 자멸하고 만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손 안에서 시작되고 끝맺음을 본다는 사실을 뼈에 새기는 믿음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중간에 내가 비록 실패하였다손 치더라도 내 운명은 결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회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예가 요나서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 싫어 도망가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제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요2:4)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믿음의 최고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실패와 무너져 내리는 마음과 수치감과 모멸감 속에서 그것이 폭발하여 자기를 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며 모든 것을 바라며 견디는 것은 우리를 여기까지 잡아 온 것은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신앙이라기보다 오히려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그 분의 간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 신앙의 가장 큰 근거와 기초라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간섭과 섭리적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런 하나님의 목표 하에 보내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우리들을 훈련시키시고 간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가장 수치스럽고 처절한 자리에 앉아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소망이 있고 부를 찬송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4)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11장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일의 결국이 위험이 수반되고 어려움이 많아서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그런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목표하셨던 그 결과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0) 여기에 중요한 낱말이 나옵니다. 그날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것을 위해 이삭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한 싹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은 만민의 기호(기준)로 세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에베소서의 말씀으로 하면 ‘그가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같은 계획을 하셨던 그 하나님의 목표가 지금 우리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반드시 이루어지고 마는 이 믿음이 우리 신앙의 근거입니다.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사11:11-12)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기호를 세워 모두 다시 집합시키리라. 내가 불러 돌아오게 하리라. 그날에!’ 라는 식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 지를 에베소서 1장을 통해 보면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자의 충만이니라”(엡1:22-23)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요 지금도 이루어져 가고 있는 일입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3. 일하시는 방법

교회는 분명히 바람 잘 날이 없고 오해와 상처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이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룰 방법도 없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물론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는 방법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본의 아닌 상처를 주게 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임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산출해 내는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상처들로 인해 우리가 완전히 깨어져 버리지 않도록 깊이 간섭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간섭은 놀라운 것이요, 비밀스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곧잘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지만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해 주시는 놀라운 간섭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요, 믿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전 역사적인 차원에서 일해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이 같은 사실을 가장 잘 나타낸 장면이 요한계시록 5장에 보면 나옵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5:1-8) 여기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나오는데 말하자면 역사책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란, 세상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 역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내어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구원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구속사를 풀어나갈 자가 없어서 사도 요한이 웁니다. 그러자 그 구속사의 인을 떼고 책을 펼 자가 나타납니다. 다윗의 뿌리,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기심으로 이 책을 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5:9-10)”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있기에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모아 올 수 있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구속 역사의 인봉을 떼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계시록 6장부터 10장에 이르도록 그 인봉을 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인을 뗄 때마다 어떤 일을 하고 하나의 역사가 진전됩니다. 그렇게 일곱째 인까지 뗍니다. 이렇게 차례로 인을 떼는 것은 구속 역사의 진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일곱째 인을 떼니 거기서 다시 일곱 개로 세분됩니다. 이번에는 첫 번째 천사가 나와서 나팔을 붑니다. 여기서 또 다시 일곱 나팔이 등장하며 구속 역사가 진전되어 나갑니다. 나팔을 불때마다 역사가 진전되어 나갑니다. 10장까지는 여섯 번째 나팔까지 분 것으로 나타납니다. 일곱째 나팔은 아직 안 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곱째 나팔을 불면 이젠 끝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모든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을 묘사할 때마다 이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듭니다.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15:50-51) 우리는 사실 지금 실패하고 실수하고 잘못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의 실패로 갚지 않으시고 그것을 통해 오히려 우리에게 분명한 유익을 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잘했다고 내 놓을 만한 것이 별로 없기에 늘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붙드시고 오히려 문제가 변하여 복이 되고 실패와 어려움이 변하여 성숙을 이루는 경험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완성시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잘 반응하면 복과 칭찬받으면서 완성되어 갈 것이지만, 반대로 내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거스리고 잘 반응하지 않으면 결국 얻어터지되 그렇다고 버려지는 것은 아니고 더 큰 고생으로 동일한 결론과 수준에 도달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 생활을 바로 이런 차원에서 정립해야 합니다. 교회는 분명히 미숙한 사람끼리 모여 감당할 수 없는 얘기들을 나누고 훈련 받아야 되는 곳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들이 생기는 곳임을 각오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여기서 넘어지든 실패하든 순종하든 훈련이 되어지고 성숙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들이 교회 안에서 누구를 욕하고 넘어지고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욕하고 떠나지는 마시고 교회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기왕 지금까지 여기서 값을 지불하고 훈련을 받았는데 이대로 다른 데로 가면 안 됩니다. 조금만 넘으면 검은 띠 딸지 모릅니다. 딴 데 가면 다시 흰 띠부터 시작해야 되는데 왜 또 그렇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속을 썩어도 같이 썩고, 같이 돕고, 책임을 서로 나누어짐으로 이 교회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신령한 이익과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와 사회 앞에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그 일들을 책임지시는 교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심과 하나님의 간섭이 내일의 우리를 아름답고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세울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고린도교회가 상당한 경지의 신앙을 가지고도 분쟁과 다툼이 있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바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힘들고 어려움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 가운데서도 견디며 바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이루실 일들은 무엇입니까?

5. 성경에서 마지막 날을 묘사할 때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우리가 교회 가운데 마음 상하여 욕도 하지만 떠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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