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0,449
오늘 : 148
어제 : 287

페이지뷰

전체 : 78,736,222
오늘 : 655
어제 : 1,64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소금이 맛을 잃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본문 / 14:25-35

 

 

1. 따르는 무리

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따르는 무리에게 제자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중간에 말씀하시는 비유가 있는데 도리어 그 비유가 읽는 우리들에게 난해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말씀의 참된 의미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한 주인이 베푼 잔치에 청함을 받았으나 여러 가지 자신들의 일(밭을 샀다고, 소를 샀다고, 장가가야 한다고)로 바쁜 나머지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들이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청함 받은 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일이 더 중요하고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결국 그 잔치를 하나도 맛보지 못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인 주님의 제자도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앞에서 예수님이 땅에 것과 세상의 떡으로 배불리려 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으로만 만족을 누리려 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함을 말씀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아무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무리들에게 예수님이 돌이켜 말씀하시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들은 과연 왜 주님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까? 과연 예수님을 좇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을 삼년 동안이나 좇았던 주님의 제자들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았던 자입니다. 어느 날 밤이 맞도록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 예수님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기도 전에 배와 그물과 잡은 고기를 버려두고 형제 안드레와 세배대의 아들로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을 좇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예수님을 따라다닌 이유를 알고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20:20-24)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들 또한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나중에 로마를 무너뜨리고 유대 나라를 회복할 때 한 몫 잡아 보겠다는 계산이 그들 가운데 깔려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다 분을 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기에 예수님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모두 흩어져 도망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당시에 예수님을 좇으며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병인들과 소경과 저는 자들과 죄인들이 주로 예수님을 좇고 찾아 다녔는데 결국 이 무리들도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좇는 것입니다. 문둥병을 고치고, 소경이 눈을 뜨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귀신이 쫓겨 가며, 오병이어로 장정만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 등 헤아릴 수없는 예수님의 이런 능력을 보고서는 이만하면 그가 우리의 임금이 될 만하겠다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임금을 삼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이 나중에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신들의 원대로 되지 않자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는 소리에 합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제자의 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주의 제자

오늘 본문에 보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6-27)고 합니다. 주님께서 돌이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왜 나를 따라 오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따라 오려거든 밭도 버리고, 소도 버리고, 남편과 아내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밭도 얻고, 소도 얻기 위하여 나를 좇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돌이켜야 한다고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부모와 처자 그리고 형제까지 미워하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도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벧전2:9)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사장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33장에 보면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33:8-9)고 하십니다. 부모와 형제와 자녀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과 언약을 준행하고 지킴에 있어 부모와 형제와 자녀 때문에 행하지 못하는 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자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가족을 다 버리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자면 자신의 밭이나 소를 더 귀하게 느끼고 또는 내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 보다 더 사랑스러워서 하나님을 따르는 데 걸림이 되고 그리고 자기 목숨을 위한 것을 얻고자 주를 따르는 것 때문에 도리어 주님을 따르는 참 이유와 목적을 가지는 데 방해가 된다면 아내와 남편을 버리거나 목숨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런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내가 산 밭이, 내가 구입한 소가 또는 내가 장가가는 것이 우리를 청한 그 잔치에 참석하는데 것 보다 더 귀하다고 여겨지는 그 우리의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잔치야 참여하여 그 하늘 양식을 맛볼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나, 부부간에 사랑하는 것이 그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하고 큰 본질입니다. 그것이 빠진 효도나 부부간의 사랑은 도리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며, 기독교가 윤리와 도덕이 아니라는 의미는 바로 이런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리고 그 하나님이 부모를 공경하고, 배우자를 사랑하라고 하시기에 순종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는 증거가 바로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 땅의 부모님께 효도하고, 부부간에 사랑하는 것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주를 좇는 허다한 무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무리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유익을 위해 좇는 자들입니다. 그 좇는 무리들이 그런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33)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좇는 무리들의 그런 생각이 바로 자기의 소유인 것이며, 그 생각을 그리고 그 소유를 버리지 않는 한 예수님의 제자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들에게 설명하시고자 오늘 보문에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완성을 위하여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14:28-32) 예수님이 설명하시려고 드는 첫 번째 비유는 망대를 세우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망대를 세운다고 가정해 볼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망대의 설계도를 제작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앉아 그 설계도대로 지을 것에 대한 예산을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리 설계도가 좋아도 그 설계도대로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이 없으면 시작은 했지만 이루지 못하는 결과가 따름으로 오늘 본문 말씀처럼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다 이런 설계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설계도는 약속의 땅 가나안 이었습니다. 그는 그 설계도로 완성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살던 본토를 떠나는 것으로 그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완성에 걸림이 되는 친척과 아비 집도 떠났습니다. 그는 그렇게 설계도대로 완성을 이루어 오늘날 우리에게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별호를 얻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설계도 역시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들도 그 설계도대로 이루기 위해 살던 애굽을 떠나는 것으로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설계도대로 이루기 위해 그들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났으며, 요단을 건너 완성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그 완성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완성을 보았습니다. 그럼 우리의 설계도는 무엇입니까? 우리 또한 가나안 땅입니다. 신약 성경대로 한다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3-5)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완성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설계도를 가졌다고 바로 완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는 설계도처럼의 완성을 위한 수고가 있어야만 합니다.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의 방주를 짓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에 대한 설계도는 주셨지만 방주를 완성하여 주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이스라엘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설계도를 주실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성 그 자체를 선물하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완성으로 초대하실 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완성이시지 우리의 완성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는 것입니다. 이미도 완성을 이루신 예수님이 걸으신 그 길을 좇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은 우리의 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사안일에 빠져 설계도를 공짜로 받았으니 완성도 공짜로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어떻게 망대가 세워지겠지 라는 우리의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나 없나를, 망대를 다 지을 수 있나 없나를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소유, 즉 내 생각과 예수를 좇는 내 마음을 보며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좇으면 내 소원을 이루고, 어떤 눈에 보이는 유익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망대를 짓는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 내 소유인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만 예수님을 좇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다음 비유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진 군사로 싸워야 할 적의 군사를 이길 수 있는가 헤아리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설계대대로의 완성을 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전쟁에서도 싸우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승리를 위한 작전 계획이 먼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승리를 위한 계획이 아무리 좋아도 내가 가진 군사로 그 계획을 이룰 수 있느냐를 헤아려보지 않으면 우리는 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전이 좋아도 그 작전대로 움직일 수 있는 군사가 없으면 시작은 하였으니 결국은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그 계획대로 이룰 수 있는가, 내가 가진 것이 작전 계획처럼 우리에게 승리를 줄 수 있는가 헤아리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 계획대로 이룰 수 있는 군사도 없는데 어떻게 되겠지 하며 기적적으로 이길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의 길인 것입니다. 예산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망대 공사를 하다 중단되어 완공하지 못하면 조롱거리가 되고, 내가 가진 군사는 생각지 않고 전쟁을 하면 지고 마는 것처럼 예수를 좇는 자들이 자신이 주를 좇는 이유와 목적과 뜻을 생각지 아니하고 주를 좇으면 우리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14:33-35)고 하십니다. 여기 말씀처럼 자기의 모든 소유(주를 좇는 잘못된 목적과 생각)를 버리지 아니하면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그것은 결국 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었다는 것은 소금이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소금은 좋은 것으로 쓰임 받고자 만들어졌지만 그런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그 소금의 목적대로 쓰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며 또한 소금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가 내 소유를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제자로서, 소금으로서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쓸데없어 내어버려지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배설한 잔치에 세상의 것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그 초청을 거절하고 있다면 우리는 내 소유를 버리지 못한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또 잔치에는 참여 하였으되 제공되는 하늘 양식에는 관심하지 않고 오직 언젠가의 하나님 나라만을 소망하며 그리고 그때 대접받기 위해 오늘 봉사만 하여 그 양식을 맛보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적인 위로나 동정을 받으려고만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소유를 버려야만 잔치에서 제공되는 하늘 양식을 맛 볼 수 있으며, 주님의 참 제자가 되며,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를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선택과 어떤 결정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만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와 십자가의 길은 육신적으로는 고통의 길이었지만 그 길일이야 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과 영광의 길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제자로 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협착한 길을 걸어야만 할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은 험해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기쁨과 영광과 보람과 특권을 가지고 그것만을 자랑으로 삼아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 예원의 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잔치에 청함을 받고도 그 잔치에 참석하지 않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2. 오늘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에 대한 말씀을 듣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며 또 예수님을 좇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좇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주의 제자도, 즉 주의 제사장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까?

4. 윤리나 도덕이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는 뜻은 무엇이며,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5. 자기의 소유를 버리지 못하면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6. 설계도를 받았다는 것과 그것이 곧 완성이 아니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7. 소금이 맛을 잃고 내어 버려진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8. 오늘날 우리가 걸어야 하는 주의 제자로서의 삶은 어떤 길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3 1월 19일 / 사도행전4. (행1:9-11)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증인의 삶 116 관리자 2014.02.26 5706
172 1월 12일 / 사도행전3. (행1:6-8) 증인들이 전해야 할 증거의 내용 121 관리자 2014.02.26 3632
171 12월 29일 / 사도행전1. (행1:1-5)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34 관리자 2013.12.29 2418
170 12월 22일 / 디도서8. (딛2:15-3:8) 은혜로 사는 자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인식 185 관리자 2013.12.22 3683
169 12월 15일 2부 / 디도서7. (딛2:15 - 3:8) 은혜로 사는 자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인식 82 관리자 2013.12.15 2034
168 12월 8일 2부 / 은혜로 우리를 양육하시는 하나님 161 관리자 2013.12.08 4653
167 12월 1일 / 디도서5. (딛2:6-10)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880 관리자 2013.12.01 9164
166 11월 24일 / 디도서4. (딛2:1-5)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그렇게 하라 781 관리자 2013.11.23 6061
» 11월 17일 추수감사주일 / 소금이 맛을 잃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9 관리자 2013.11.23 1720
164 11월 10일 / 디도서3. (딛1:5-16)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삶 104 관리자 2013.11.10 4313
163 10월 27일 1부 / 디도서1.(딛1:1-4) 예수님의 사도 그리고 그의 사역과 임무 278 관리자 2013.10.27 8809
162 10월 20일 2부 / 야고보서24. (약5:19-20) 돌이킨 자가 돌이키게 하리라 3 관리자 2013.10.20 1577
161 10월 13일 / 야고보서23. (약5:13-18) 고난 중의 기도와 즐거움 중의 찬송 15 관리자 2013.10.13 2225
160 10월 6일 / 야고보서22. 내 형제들아 맹세하지 말라 2 관리자 2013.10.06 1319
159 9월 29일 / 야고보서21.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283 관리자 2013.10.06 10359
158 9월 1일 2부 / 야고보서17.(약4:5-10)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시는 하나님 1263 관리자 2013.09.01 16050
157 3월 24일 2부 /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38 관리자 2013.04.10 2106
156 3월 10일 1부 / 그림자를 놓고 실체를 붙드는 신앙 79 관리자 2013.04.10 3940
155 3월 3일 2부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 관리자 2013.04.10 1351
154 2월 24일 1부 / 하나님의 비밀 안에 있는 모든 보화 12 관리자 2013.04.10 1488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