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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본문 / 2: 6-10

 

 

1. 하나님의 바른 교훈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5-17)고 말씀합니다. ,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람됨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지 세상의 가치관이나 자기의 지식이나 판단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 역시 이러한 본능과 속성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기에 늘 성경을 본다고 하여도 우리의 뜻과 주장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유리한 것은 인용하고 불리한 것은 뒤로 밀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디도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권할 때에 부패하지 않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도 얼마든지 부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패란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전하지 아니하고 설교자 자신의 뜻과 비전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설교자도 이러할 수가 있고 또 설교를 듣는다고 하는 자도 얼마든지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과 주관을 견고히 세워놓고서는 자기의 입맛에 따라 골라 듣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작 하나님이 자신에게 해 주고 싶어 하시는 들어야 할 말씀은 다 놓쳐 버리고 오직 자기에게 유리한 말씀만 챙기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 받지 않게 하라는 주 안에서의 권면을 들었습니다. 이 권면들이 나와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치 못하고 있으면 자기 합리화 시키지 말고 회개하여야 할 것이라 했습니다. 늙은 남자는 절제, 경건, 신중, 믿음, 사랑, 인내함에 온전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여자는 이 모든 것에다가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젊은 여자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젊은 여자는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고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말씀을 들으면서 요즈음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는 항변도 나올 수가 있고, 우리가 다 죄인인데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지킬 수 있는가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들은 결국 자기 합리화로 나가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나의 삶은 나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훼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씀을 보든지 또는 듣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당연하게 우리가 순종하여야 할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율법적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고,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본분이라는 자세에서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며 저는 무익한 종일뿐입니다 하는 자를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함부로 자유를 말하며 그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의 욕심과 게으름과 불순종과 충성하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도 다 자유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로 삼으라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5:13)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자유를 가지고 너희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노릇하라고 부름을 입은 자들임을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굶어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서 탈북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들 탈북자들 중에 중국에서 복음을 듣고서는 제 삼국이나 대한민국으로 오지 않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선교회 소식지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그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다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허락한 자유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젊은 남자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2:6)라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를 교훈한 것처럼 이제 젊은 남자를 교훈하라는 것입니다.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여기 신중 하라는 것은 물론이고 앞에서부터 계속해서 살펴 본 말씀들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 했습니다. 인간이 단순하지 아니하고 다면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 인격 안에 남녀노소의 특징이 다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다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다만 그 사람의 신체적인 특징을 따라 두드러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을 뿐이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남자들에게 하는 이 신중이란 목록도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이 되는 말씀이 됩니다. 신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보면 절제, 분별력, 자제 등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므로 결국 남녀노소 모두 다에게 있어야 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7절부터 보면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2:7-8)고 합니다. 이 편지를 받는 디도도 젊은 남자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본을 보여야하며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교훈에 부패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한번 언급한 말씀입니다만 바른 교훈을 전함으로 듣는 자들로 하여금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설교자 자신이나 젊은 남자들이나 모두 단정함과 경건함으로 책망할 것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디도가 사역하고 있는 곳은 그레데 섬입니다. 그 섬에 대하여 한 선지자가 말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곳에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자들에게서도 그들과 동일한 모습이 나오면 그들이 대적하지 아니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르게 산다고 하여도 대적하지 아니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적들은 잘하나 못하나 대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자들이 단정함과 경건함으로 살면 그들이 악하다고 험담을 하다가도 실상을 보게 되면 그들이 부끄러워질 것이라는 겁니다. 결국 이렇게 하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이 이렇게 살면 세상에서 대접받고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한 반대와 조직적인 모함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아니하게 하며,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셨습니다. 그 결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세상이 볼 때는 미련하고 어리석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벽하게 성취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교훈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도 다른 영광이 아닌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비밀이 십자가를 통하여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언약의 완성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어떤 신분을 갖고 또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주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과 전혀 구별되는 모습으로서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대부분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또 세상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길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도 이 세상이나 또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십자가를 지신 아들 안에서만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주를 좇아야 하는 것이며, 그 주를 좇으려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삶은 필수적인 삶인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이러한 삶이 있는지 돌아보고 점검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이런 것이 하나님께 영광 되는 삶이라면 사람의 직업이나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종이라고 하여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종으로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까? 종이 성실하게 일하다가 주인의 눈에 띄어서 갑자기 고속 승진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가 비록 종의 신분에 있지만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상전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인이신 그분 앞에 늘 서 있는 종인 것입니다. 그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미 종이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자유자이기에 자기의 하는 일에 대하여 억울해 하거나 한탄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인에게 더 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부터 보면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2:9-10)고 합니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라고 하며, 거슬러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훔치지 말고 오히려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라고 합니다. 만약 오늘날 종이 아니지만 노사가 대립하여 있는 현장에 가서 이 본문의 말씀을 읽었다면 노동자들에 의하여 돌 맞아 죽을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은 그렇다 하더라고 오늘날 직장 생활을 하는 우리는 우리들의 상사에게 범사에 순종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고, 신실하게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사 앞에서는 예예 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신분에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이 종의 위치에 있어도 하나님의 자녀요 자유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자기기만이 아니라 성경의 약속입니다. 이 자유를 맛보지 못하면 자신이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도 늘 범사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7:20-24)고 합니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입은 그대로 지내라고 합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자유 할 수 있거든 자유 하라고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전혀 문맥이 어울리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본에서는 혹 자유 할 수 있어도 그대로 지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바울의 요점은 믿는 자들은 자신의 외적 신분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의 신분이든 아니면 자유자의 신분이든 하나님과 함께하면 다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자유자나 종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종이나 자유자나 간에 예수 안에 있다면 종이라도 자유자요, 자유자라도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밖에 있을 때는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 죄와 사망의 종이지만,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자유자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신분의 지위고하가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의 능력이 대단한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인생에게 영생이 주어진 것을 안다면 종이나 주인이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말랐거나 뚱뚱하거나 예쁘거나 아니거나 간에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범사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데도 아직도 세상의 가치관에 이리 저리 요동치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교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교회의 진공청소기를 털어내면서 미세한 먼지가 거름망에 가득하여 물로 씻어보려고 해도 잘 씻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 촘촘히 먼지들이 거름망에 가득하여 물 한 방울 스며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이 세상의 미세한 먼지들이 너무 많이 들어붙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살핌으로서 주 안에서 바로 설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주 안에서 바라기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이 우리의 귓가만 스치고 지나가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뒤집어 놓기를 사모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삶에서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떠한 신분과 처지에 있든 그 모든 위치와 자리에서 아름답고 존귀하고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님의 이름만이 선포되어지는 예원가족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의 사람됨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며, 인간들의 현실은 어떻다고 합니까?

2. 하나님의 교훈을 권할 때에 부패하지 않게 하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3. 말씀을 듣고 나타내는 어리석은 모습과 말씀을 들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4. 디도에게 신중하게 권면하며 선한 일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인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 안에서의 하나님의 영광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6. 비록 종의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7.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신분의 지위고하가 문제가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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