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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은혜로 사는 자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인식

본문 / 2:15- 3: 8

 

 

1. 오직 은혜

인간의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 즉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 이후에는 우리의 행함으로 되어진다고 하는 말들은 우리가 공식처럼 외우고 있는 신앙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런 주장이나 말들이 나오는 것은 구원이전에는 인간이 죄인이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구원을 받고 나서는 이제는 인간이 선한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존재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또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구원 받은 자로서 선하고 바르게 살라는 말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인간의 구원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창조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구속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구원 이후에 인간이 그 은혜에 보답을 하거나 선하고 아름다운 행위를 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시기에 구원 이후의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선한일도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인가를 드러내시는 차원에서의 일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고 말씀합니다. 바울사도가 수많은 서신에서 성도로서 어떻게 하여야 할 내용들을 많이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전도가 오직 성령의 나타남으로 인하여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일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사람이 자기의 의지나 결단으로 선한 일을 할 수도 있고 또 바울의 이 고백처럼 은혜로 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의 열매로만 보면 그 일은 똑 같아 보이지만 보이지 아니하는 그 안의 근거는 어마든지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봉사가 정말 은혜였는지 아니면 자기의 행함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봉사가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감사와 기쁨이 나올 것입니다. 그 봉사에 대해 사람들이 알아주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런 봉사를 할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행함이라면 자기 자랑이 나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아니하면 섭섭할 것이고 혹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기 의에 스스로 도취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자신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2:15)고 합니다. 여기 말하고 있는 이것은 앞에 21절부터 14절까지 말한 내용들입니다.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남자, 젊은 여자 그리고 종에게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지난주에 보았던 말씀처럼 은혜로 양육 받는 것이라 했습니다. 다시 11절부터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2:11-14)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은혜이고 그 다음 양육은 너희가 스스로 책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만 낳아 놓고서는 그 다음부터는 네 마음대로 알아서 자라가라는 부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확실하게 양육하시는가 하면 그 근거가 자신을 주심까지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셔 구속하신 백성을 그리스도의 영광을 소망하도록 은혜로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부터 10절까지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범적 행동을 해야 할 필요성은 11절부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근거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계속하여 그 자유자를 얻은 자에게 교육 활동을 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는 새로워진 삶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신서에 나오는 모든 명령의 말씀들을 우리가 율법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받는다는 것은 그 행함의 책임이 받는 자에게 있는 것이지만, 은혜로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행할 수 없기에 주님께서 이루신 것을 믿으며 또 그 이루신 것을 내가 누릴 수 있게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지 못하는 자인가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면서 주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자신이 힘을 다해 수고하였으나 자기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2. 전에는 그리고 지금도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보면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3:1-2)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서신서를 쓰던 당시에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이기에 결국 로마의 법에 복종하고 순종하라고 합니다. 또 모든 선한 일을 예비하게 하고, 어떤 사람에게도 비방하지 말고, 다투지 말고,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대한민국의 정당한 법들을 다 복종하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관용과 온유로 대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안 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이를 악물고 도전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더 나아가 잘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행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은혜가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그것에 대한 답을 이어지는 말씀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3:3-8)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전에 어떤 상태에서 그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두 가지 인식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로서 날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산다면 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자기가 어떤 자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아를 찾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러고 사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좋게 보고 긍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를 학대하고 미워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바라는 자아상에 미흡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자랑하든 미워하든 결국 자기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어리석고, 순종치 아니하고, 속은 자요,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내고,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하는 자였다고 합니다. 우리 가운데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습니까? 이 내용이 3절 앞머리에 우리도 전에는 이라는 말로 끝나는 부분입니까? 아니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까? 우리가 느끼며 아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기는 한 것입니까? 바로 이런 부분이 제대로 인식되지 아니하였다면 우리는 아직도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되는데 아직도 자신의 죄와 비참한 모습을 보지 못하기에 남의 허물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우리의 과거의 모습 또는 현재의 모습이 이러함을 인식한다면 회개할 것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은혜를 이야기 하고 또 은혜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우리가 이러한 자였음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벌써 자기 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시절 모른다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서 은혜를 입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계속하여 어리석고, 순종치 아니하고, 속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은 주님의 은혜의 다스림으로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런 어리석음 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을 향해 비웃으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주의 은혜를 망각하고 또 자신의 처지를 보지 않는 어리석음이며 순종치 아니함이라는 것입니다. 피차 미워하고 있고, 용서가 되지 않는 채로 살아간다면 주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멱살을 잡는 것처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은 사실은 잊어버리고 자기에게 아주 사소한 빚진 자를 탕감하지 못하는 자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어느 자리에서 나오게 되었는가를 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놀라고 부끄러워 입을 닫을 것이며, 주님의 은혜 외에는 이야기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바울사도가 모든 사도들 보다 더 수고하고 충성하였지만 자기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3. 은혜를 아는 자의 고백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 모두가 다 이러한 자라는 인식을 하는 자로서 은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없는 자에게는 은혜란 장식품일 뿐입니다. 자기의 의로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지식이 자기를 꾸미고 가꾸는 치장 용도로만 갖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고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자기가 죽도록 충성하더라도 그것에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만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4절부터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3:4-5)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떠한 의로운 행위를 인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어떠한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 드러내는 것입니까? 우리도 전에는 다 어리석고, 순종치 아니하고, 속고 있는 자로서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하고, 악독과 투기로 지내며 피차 미워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무엇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서 선한 것이 나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서도 속고 있으니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긍휼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이란 6절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3:6)라는 말씀처럼 거듭남만이 아니라, 성령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풍성히 부어주심으로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믿음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었다는 반응도 없이 오직 주님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비록 바르게 살고 있다고 하여도 불신자들에 대하여 관용하여야 하는 것은 자기들이 바르게 살고 있는 근거가 자기들에게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빌어먹는 걸인이 자신처럼 그렇게 빌어먹지 못하고 있는 다른 걸인을 업신여길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는 도리어 그 빌어먹지 못한 걸인 앞에서 황공한 생각을 가지고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대인관계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죄인인지를 제대로 알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지금도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영생의 소망을 바라며 살게 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결코 자신의 지식과 행함을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이렇게 불러내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8절에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3:8) 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미쁘다고 합니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고 합니다. 이 여러 것이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인한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하신 일들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인식함으로 오직 주님의 은혜만 드러나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입니다. 이것만 기억하며 인식하며 살아도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또 이웃들 보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몰라줘도 상관은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나의 모습을 알기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그 모습이 나의 것이 아닌 나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주의 모습임을 알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매일의 삶 가운데서 선포되어지고 표현되어져야 할 진정한 신자로사의 마음이며 삶인 것입니다. 이런 예원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성령 안에서의 은혜로 말미암은 봉사와 자기 힘으로 하는 자기 행함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다고 합니까?

3. 서신서에 있는 말씀과 명령을 율법이 아닌 은혜로 받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가져야 할 첫 번째 인식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하나님 안에서 바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 때의 삶의 모습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6. 두 번째 인식은 무엇이며 그러한 인식이 바로 세워지지 않을 때와 바르게 세워 졌을 때에 나타나는 증상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7. 바울이 우리들에게 굳세세 말하라고 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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