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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광의 자리에 초대를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

본문 /  요17:24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영광은 ‘창세전부터 내게 주셨던 영광’이라고 하여 우리의 상상과 이해를 초월하며 이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그런 수준의 영광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런 영광을 말씀합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놓고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고 싶으신 것, 즉 예수님의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하는 질문에 대해 성경이 제시하는 것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 나라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해 대개는 요한복음 3장 16절과 같은 말씀을 인용하여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하는 식의 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요구하시는 엄청난 계획과 목표 가운데 어느 일부분만을 특별히 설명한 구절과 내용만을 너무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보통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은 그에 대한 성취라고 이해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에 대해 구약보다 신약을 찾습니다. 그럼 신약의 서두에서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신약이 시작되면서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구약 인물들을 서두에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함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에 대해 알지 못하면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세계’란 족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족보가 나온 다음에 17절에 가면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마1:17)라고 마무리함으로서 이 족보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과 역사를 같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은 다윗이 준비해서 솔로몬 때에 와서 짓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를 당하면서 그 성전이 몽땅 다 훼파되고 맙니다. 그러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되돌아 온 이후에 다시 성전을 지어 그리스도 때까지 이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성전에 대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지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가 성전 역사를 중심으로 흘러 내려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격과 사역의 핵심을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두 사람의 이름을 들어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 모든 목적이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에 하나님 나라에 관해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일단 이 결론부터 내려놓고 왜 그런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다윗이 먼저 언급이 되는 것은, 아브라함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다윗에 이르러 완성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 나라 건설과 완성에 있어서 하나의 예표와 상징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대표하기에 그들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과 다윗

창세기 12장에 가면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여기에 말씀하는 모든 족속이라는 것은 다른 족속들이 한 족속을 인하여 복을 얻는다는 것이기 보다, 복을 얻는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시작될 것을 이야기하는 차원에서의 모든 족속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건설하시면서 그의 백성을 삼는데 첫 시조로 세운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나온 후손들을 그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나라가 구성되려면 국민과 국토와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주권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고, 국토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셔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식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이야말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 삼기로 한 유일한 택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혈육에 관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성경이 늘 아브라함을 들먹여서 우리의 신분과 소속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입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 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4:16) 이렇게 은혜에 속한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입니다. 또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3-24) 하십니다.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위한다고 말씀함으로 구원 얻은 자는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런 은혜가 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경은 우리가 믿었더니 구원을 얻게 되었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구원해 내었다는 쪽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을 통해 늘 아브라함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의 부름 속에는 당신의 나라를 성립시키기 위한 원리와 약속 등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에는 이 부분에 대한 묘한 표현이 나옵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행7:2-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 즉 내 민족 내 백성을 삼아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셔서 아브라함은 본토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가나안 땅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가나안에 살게는 하시면서 유업으로는 주지 아니하셔서 아브라함은 그 땅을 유리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 땅에 살게 되는 것은 그 후손인 이스라엘이 국가가 된 다음에야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했는데 실제로 그 땅을 유업으로 차지하게 되는 자들은 여호수아를 앞세운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차지하였기에 결국 아브라함이 유업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입니다만 문제는 왜 아브라함 때부터 그 땅을 바로 유업으로 주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출애굽해서 그냥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아서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내 나라에는 거룩하지 못한 자는 못 들어온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에게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설립하시고 우리의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해서 바벨론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되어 돌아와 이제 다시 지켜보려고 하지만 역시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로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의 후손이 되어 함께 백성이 된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존재는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럼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설명하려고 등장 했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는데 있어야 되는 선결 조건, 즉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사방의 대적들을 잠잠케 하는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역대상 22장입니다.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대상22:6-9) 다윗이 성전을 못 짓는 이유는 피를 흘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의 삶이 아들 솔로몬에게는 평강을 주었습니다. 솔로몬은 평화인 샬롬의 변형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싸움이 없는 곳입니다. 적대 세력이 있을 수 없고 우리를 슬프게 하거나 애통하게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도 ‘다시는 슬픔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사망이 없는 곳’이라 합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전을 지을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열왕기상 5장입니다. “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하오니”(왕상5:3-5) 여기 보면 솔로몬의 부친인 다윗은 사방의 대적을 인하여 전쟁하느라 성전을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과 같은 내용이 고린도전서 15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15:20-26) 여기 26절에서 원수에 대한 영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다윗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것은 열왕기상 5장에 보니까 적을 물리친 후에야만 평화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백성으로 삼는 데 반대하는 적대 세력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퇴치하지 않고는 거룩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 원수를 물리치는 일을 상징하는 것이 다윗입니다. 결국 솔로몬이 평화롭게 성전을 짓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그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자로서 부르시기 위해 그 대적을 발바닥에 밑에 굴복시키고 멸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서 족보 이야기 가운데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또 다윗부터 포로까지, 포로부터 다시 그리스도까지’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이처럼 구약의 모든 역사가 결국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면서 우리를 부르시는데 부른 우리에게 율법을 주어서 그 나라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비록 평화를 얻어서 뭔가 되는 것 같았지만 종국은 실패하여 매 맞고 포로로 쫓겨났다가 다시 하나님께 울부짖어 회개하고 되돌아 왔어도 매 한가지로 율법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실력이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의 시작이요,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신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이 대속 사역인데 히브리서 2장에 보면 그 대속 사역은 단지 우리의 죄 값을 치루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죄 값을 치룰 뿐 아니라 원수를 치는 것으로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2:14-16) 그러니까 다윗이 원수들을 퇴치한 이후에 솔로몬 시대에 평화가 있었고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듯이, 예수님이 오셔서 맨 처음 하셔야 되는 일은 다윗에게서 상징되었던 것과 같이 대적을 물리치는 일, 즉 ‘마귀를 없이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신앙의 기준이 되는 거룩은 율법으로 검증하였는데 그 율법 앞에서 온전한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고 신약 시대가 열리면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는 하늘나라를 온전히 열 수 있는 거룩해 지는 것이 율법 앞에서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대신 다 이루심으로 이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식적인 첫 선언부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줄곧 구약을 통해 상징화 되어왔던 하나님 나라 건설이 드디어 완성의 본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포로까지, 포로부터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까지 있었던 모든 역사가 나타냈듯이 그 어떠한 것으로도 불가능했던 하나님 나라 진입을 위한 거룩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히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5:39)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대하여 서슴치 않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이라는 것은 구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은 모두 예수님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도 설명하셨습니다(눅24:44-48 참조). 이렇게 구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두 기둥이며, 그 내용을 가장 이해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두 인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거룩이 허락되었기에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기도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구약시대같이 지었다가 허물어지는 성전과 그런 신앙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으로 초대를 받은 우리들은 아직도 거룩에 미달하여 과거 구약의 율법 앞에서 무참히 깨어지고 울고불고 되돌아와 다시 시작해 보지만 결국은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앞세워 지었던 성전을 하나님이 닫았으면 좋겠노라고 하는 저주 속에서 끝맺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가 이젠 그리스도로 인하여 참된 거룩에로 초대되었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 우리의 출발점이며, 이미 거룩에로 초대받은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거룩의 완성입니다. 골로새서 3장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1-4)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의 완성을 위하여 사랑을 요구받고 있고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이 요구되는 것이고, 창세전에 그리스도에 허락되었던 그 영광의 자리에로 초대받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혹 이 거룩의 길에서 모자란 부분이 드러났어도 그것은 자녀로서의 부끄러움이지 하나님의 자녀에서부터 떨어져 나가는 공포와 실패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엄청난 일들을 해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 우리의 기쁨과 신앙을 더 굳게 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마태복음 1장의 족보가 성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건설에 아브라함을 먼저 언급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건설에 다윗을 먼저 언급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5. 우리가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게 못 살아도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신앙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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