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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본문 / 1: 1- 5

 

1. 시각

오늘부터 사도행전을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하면 기억나는 것이 주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하루에 3천 명, 5천 명씩 전도가 되었다는 내용들과 방언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는 내용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능력을 행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들었을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아 우리 교회도 크게 성장하여 한번 크게 쓰임을 받자는 식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항상 성령 충만의 비결, 전도의 비결, 교회의 부흥 같은 제목들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의 영웅담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빈틈없이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일에 사도들이 부름 받고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들 자신의 경건이나 기도를 통해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되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켜 세웁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제자들을 주목하여 보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이 사람이 온전케 된 것이 어찌 우리 개인의 경건과 능력으로 되어진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는가 하면서 이 사람이 온전케 된 것은 주 예수의 이름이 이렇게 하였다고 전파합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승천하셔서 지금도 자신의 약속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며 성령의 능력을 받아 행하는 신비한 이적들을 사도행전의 중심으로 보는 이들은 오늘날도 같은 성령을 받아 사도행전에서처럼 능력과 이적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을 합니다. 물론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성령행전을 성령이 일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지 성령을 받아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면 그것이 곧 사도행전을 크게 오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읽으며 조심해야 할 부분은 사도들이 행한 이적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어떤 기적을 행하고 승리를 이루었는가를 알리기 위해 사도행전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도행전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 예수님이 세상에 세우신 사도들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기록한 책입니다. 즉 예수님은 비록 하늘로 가셨지만 그것으로 예수님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들로 인해 예수님의 시대가 계속 이어져 감을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사도행전에서의 사도들의 사역은 사도 개인의 사역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계속된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출애굽기에서 여호수아서에 이르기까지 이루어 내시는 것처럼 복음서에서 약속하신 내용을 사도행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언약을 위해

오늘 본문 1절부터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1:1-2)라고 하여, 수신자가 데오빌로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데오빌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으로, 결국 이 사람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모든 자들이 사도행전의 수신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기에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에 아무나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과 사랑을 입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 받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용서를 받았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서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바로 데오빌로인 것입니다. 그러니 한 말씀도 놓치지 말고 귀담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가 말하는 여기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말씀합니다. 누가는 바울 사도와 선교여행을 같이 한 사람으로 의사 누가라고 알려진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이 전편이고, 사도행전은 후편으로 전편인 누가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과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3절부터 보면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3-4)고 하여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내셨는데 40일 간을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하신 바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러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약속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기서 말하는 성령세례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중생과 성령세례가 같다, 다르다는 논란이 장로교와 오순절 계통에서 서로 대립된 주장을 합니다. 장로교는 중생, 즉 거듭남이 성령세례라고 보는데 반해 오순절 계통은 거듭나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제2의 축복인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방언을 해야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바람이 불어서 사람들마다 방언 받으려고 산으로 쫓아다닌 것입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무언가 화끈하지 않고 밋밋하다보니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이 임하여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하는가는 생각에서 인위적으로 성령의 일을 만들어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분이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이 오심으로 사도들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능력을 행한 내용만으로 사도행전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니 오히려 핍박을 받고, 쫓겨나고, 돌 맞아 죽고, 순교하는 모습으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죽는 모습으로 결론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능력이란 예수님처럼 죽는 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으려고는 하지 않고 능력 받아 종교적인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다시 보면서 과연 주님의 약속하신 바가 무엇이며,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통해 신실하사 자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4-49)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그리고 시편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자신의 완전하신 구속을 이제 부활 승천하셔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자리에 오르시고 주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성령의 임하심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하신 바를 지금도 주님께서 신실하게 이루어 내심으로 이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도 주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얻는 회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이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성령을 받아 대단한 능력을 행하였다더라, 누가 병을 고쳤다더라, 누가 방언을 하였다더라가 중심이 아니라 얼마나 주님의 약속하신 바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사도행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이 사도행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도행전은 현재진행형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더 추가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이 증거 되리라는 말씀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증거 되면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하신 바를 어떻게 이루어 내시는가를 제대로 파악을 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의 목표와 방향이 제대로 잡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은 단지 복음서에서만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부터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그 약속이 성령의 임하심을 기다리는 것인데 이것을 구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1-34)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합니다. 33절에 보시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3)고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어서 손을 잡고 나왔는데도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남편의 손을 잡고 가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이끌려 가나안으로 가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의 마음은 늘 애굽으로 향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서 천사의 손에 이끌려 심판 받는 그 성을 겨우 벗어나면서도 롯의 아내의 마음이 여전히 심판 받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새 언약으로 구원하여 내시지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죄된 상태가 어떠한지를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혀가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 성령님

그럼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신 새 언약은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도망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하고 원하는 바가 늘 세상적인 것들로 채워지기에 성령께서 따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시는데 그러한 성령의 일하심을 우리의 일로 간주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새 언약의 내용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제 길로 갔지만 주님께서 그 무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언약이며 단번에 영원히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 언약 안에서는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그러면 이제 말씀을 보지도, 듣지도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 안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모르던 것을 이제 주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의 최대치가 무엇입니까? 바로 34절 끝에 있는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심을 자신의 죄와 비참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그 이름의 능력을 알고 믿게 된 사실이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이 임하심으로 알게 되고,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또한 요엘서 2장에서도 예언되어 있는데 이것을 사도행전 2장에서 인용하여 말씀합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2:16-21)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심이 이미 말세입니다. 지금이 말세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이 임하시게 됨으로 예언하고, 환상을 보게 되고, 장래의 일을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예언과 환상과 장래의 일이란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내용이 아닙니다. 장래에 피와 불과 연기가 닥칠 것입니다. 주의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세상의 종말을 알게 되는 것이 성령이 임하신 능력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나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장래가 어떻게 될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무엇이 능력이고 복입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이야말로 약속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까? 그렇다면 세상의 종말을 아시고 그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의 약속을 받은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신 성령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가를 다시 한 번 묵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큰 능력과 기적이 아니라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며, 우리 어리석음 대신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그 우리 안의 성령님의 일을 우리의 일로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우린 결코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령님과 하나 되어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이 삶 속에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또 자랑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본분임을 알아 살아가는 날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생각하는 사도행전과 성경이 말씀하는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은 무엇입니까?

2. 사도행전 수신자를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누가복음의 기록 내용과 사도행전의 기록 내용은 어떻게 다릅니까?

4. 성령세례에 대한 주장이 어떻게 다르며 또 그런 주장이 나오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사도행전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이해하려면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까?

6.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새 언약으로 시작하지 아니하시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이 말씀하신 새 언약, 즉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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