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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증인의 삶

본문 / 1: 9-11

 

1. 증인으로 부르심

신자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과 교회의 숫자적 부흥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교회 부흥을 위해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의 부흥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시면서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교회를 부흥시키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늘로 가고 안 계신 세상에서 그리스도는 이제 성령을 받은 제자들로 인해 증거될 것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일을 위해 성령을 보내시고 권능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할 자로 선택받았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어떤 일을 위해 부대원 중 몇 사람을 차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헌병으로 차출되기도 하고, 공수부대로 차출되기도 하고, 전투경찰로 차출되어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그렇게 차출되었을 때에 나오는 것은 오직 복종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나 못하겠습니다.’는 것이 절대 없으며 무조건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군대는 그렇게 차출한 사람을 무작정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차출된 목적대로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이런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의해서 예수님을 증거할 증인으로 차출되었는데 우리로서는 예수님을 증거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삶이나 그 생각이 우리하고는 전혀 다른 세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즉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신자는 이제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만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삶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으로 쓰여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한 삶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로서는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증인의 일을 이루기 위해 성령이 오시고 우리에게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성령 받았다는 가장 큰 증거는 그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삶이되기 위해 힘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그리스도는 막연하게 멀리 하늘에 계시고 언제 오실지 알 수 없는 약속만 세상에 남겨놓으신 분이 아니라, 실제 살아 계셔서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가 곧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예수의 증인이라는 의식이 희박합니다. 내가 곧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세상에 증거 하는 증인이라는 의식이 우리에게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고, 나의 인생이고, 나의 직업이지 예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증인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11절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1)는 말씀입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는 것은, 다시 오심 즉 재림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늘로 가신 것이 마지막이 아니라 세상에 다시 오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이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 둘 필요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2. 증인의 삶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사 승천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도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2:36)고 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 이 세상은 예수님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증인으로서 신자가 증거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옛날 이스라엘처럼 예수님이 육신으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 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예수님이 나를 다스리고, 나는 그분의 다스림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은 살아 계심을 증거 하는 증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신자는 예수님의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성경책의 말씀이고 교훈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님이 외치는 말씀이기 때문에 복종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종은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의식이 살아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삶은 이러한 복종에서 너무 동떨어진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분이기에 아예 무시해 버린 삶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공경하고 그 말씀을 예수님의 외침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성경책에 적혀 있는 글로 여기고 책을 대하듯 읽고 치우는 것이 곧 우리의 현재 모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3장에 보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13:32-37)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신자의 삶이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세상은 끝이니까 세상일은 다 집어치우고 교회에 모여서 예배나 드리고 기도만 하면 된다고 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1992년도에 이런 식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땅에서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해서는 도외시하고 예수님이 오시기만 목 놓아 기다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아니고 복종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가 다시 올 테니까 너희는 그때까지 세상일은 그만두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1:11)라는 말씀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에 대해 주의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외치는 말입니다. 하늘만 쳐다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가신 그대로 오실 것이니까, 하늘을 보고 있지 말고 다시 오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삶을 살기 위해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늘에 살아 계신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신자라면, 하늘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증인의 삶을 살기에 힘쓸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멀리 하늘에 계시지만 현재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과 동일하게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곧 재림의 삶이며 동시에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 본 마가복음 13장에서 말씀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주인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가면서 문지기들에게 각각 권한을 주고 사무를 맡기며 깨어 있으라고 명합니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것은 주인이 맡긴 일에 충실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떠한 종이 주인의 일에 충실하겠습니까? 그 종은 바로 주인이 비록 멀리 타국에 가 있지만 지금 현재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종일 것입니다. 주인은 없지만 주인의 명령이 종의 심령에 살아 있을 때 종은 주인이 현재 자신에게 명령하시는 것과 같이 주인의 면전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인의 일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이것은 실제로 잠을 자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없다고 해서 주인의 명령에 대해서는 도외시하고 오직 자기만을 위한 자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주인이 돌아 왔을 때 어떠한 종이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받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으며 사는 신앙은 하루하루 예수님이 언제 오실까 궁금해 하면서 손꼽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치 군인이 군대에서 제대할 날을 기다리며 어쨌든 22개월만 버티는 그런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대할 날은 언젠가는 오게 되어 있기에 군에 있는 동안은 그 22개월이란 시간을 군인답게 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언젠가는 오십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중요한 것도 그 날이 언제인가 궁금해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그 인생을 신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오신 것처럼 말씀에 복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즉 증인의 본분을 다하며 살았는가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늘로 가시면서 증인이 되리라 하시고, 이 일을 위해 성령을 보내시고 권능을 주셨다면 다시 오셨을 때는 성령을 보내신 예수님의 의도에 복종하는 삶이었는가를 보시는 것은 자명합니다. 깨어있는 삶이었는지 아니면 자는 삶이었는지가 주님이 오심으로 판명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신자라면 이미 주님이 오셔서 나를 살피시고 계시는 삶이 되어져야 마땅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부지런히 전도하고 봉사하고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냥 살긴 살되 예수님 없이 나를 위한 삶에서 벗어나 살아 계신 예수님이 내 앞에 살아 계심을 보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사는 삶으로서의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인으로 사는 것이며 재림을 믿는 삶인 것입니다.

 

 

3. 착하고 충성된 종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는 말씀은 신자에게는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러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기껏 가지는 두려움은 평상시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에 빠지면 행여 하나님이 벌주지 않을까 하는 정도에 머무는 수준입니다. 교회 일에 부지런하지 못하고, 성경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은 것 때문에 하나님이 복주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염려에 머무는 수준입니다. 이런 것 자체가 이미 증인으로서의 삶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보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5:5-6)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은 오시는 때를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오실 것을 전혀 생각지도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도적은 생각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옵니다. 따라서 도적같이 임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자기 백성들에게는 오실 날을 미리 알려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실 것을 알고 산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실 것을 알았다면 이미 오신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사는 것이 곧 우리의 존재 이유이며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의 하나하나가 이 땅에서 우리 개인을 위하고 준비하는 것으로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며,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증거 하는 것으로 보여 져야 합니다. 천국을 소망하고 사는 신앙이 우리의 삶으로 표현되어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삶은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표현하는 것으로 드러납니까? 세상보다는 천국이 제일이고, 우리의 눈으로 보고 사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는 것으로 세상이 끝난다는 것을 표현하는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표현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믿음을 받았고, 성령을 받은 자라면 당연히 이 일에 부지런하고 힘써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 모두가 이 자리에 부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아래에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위한 삶이지 내 삶을 위한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삶과 예수님의 관계는 뭔가 뒤바뀌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1)는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외쳐지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멀리 계셔서 우리를 간섭할 수 없는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늘로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나중에 되어질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되어진 일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재림 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일해서 많은 것을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무익하고 악한 종으로 책망을 받고 어두운 곳으로 쫓겨남을 받았습니다.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둔 것은 일해 봐야 자기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고, 받은 것이 남들에 비해 하찮은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버림으로서 한 달란트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고 그저 자신의 것으로 사는 인생이 돼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혹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버리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증인의 삶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하늘로 가시며 맡기신 증인의 삶에 대해 물으실 것입니다. 그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하실 지는 우리 스스로가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이라는 삶을 살면서도 그 날이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치 이 땅이 전부인양 세상 사람들과 전투하며 싸우는 자들이 아닌 그들과는 전혀 싸울 공통분모가 없는 자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오실 주님이시지만 지금 우리 앞에 서 계신 분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주의 말씀을 명령으로 들을 수 있는 근거며, 깨어 있는 증인의 삶임을 알아 우리에게 허락된 이 시간들을 허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그래서 주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까?

3. 예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4. 하늘만 쳐다보는 신앙과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는 신앙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주의 종으로서 깨어 있는 것과 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 도적과 같이 임하지 않을 것이란 말씀의 의미와 그것을 아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7.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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