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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방언

본문 / 2: 5-13

 

1. 성령의 오심

우리가 그리스도인 되어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이제 내 백성이다라는 선언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자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선언하셨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아닌 그냥 세상의 사람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됨을 자각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하시는 일이 곧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우리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나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이 오심으로서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그 마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신과 영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일을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 5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8:5)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일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면 결국 자기 일, 즉 육신의 일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음으로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성령의 오심이 단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성령이 오시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신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셔서 하실 일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 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그 사명은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이 오셔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오심을 결코 신비한 요소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본질 자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생각하지 않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즉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달라지게되는 것이 성령의 오심인 것입니다.

 

 

2. 다른 언어

그런데 우리는 성령의 오심을 신비한 능력을 입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방언에 대한 내용입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고 합니다. 우리는 방언에 대하여 한번쯤은 생각하여 보았을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방언을 하게 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논란도 많았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방언을 해야 고급한 신자처럼 말하며, 방언을 하지 못하면 아직도 초보이고, 방언을 해야 성령의 충만을 받은 증거이고, 능력 있는 신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방언을 해보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방언을 훈련해서 받도록 하는 곳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방언이란 무슨 종교적인 황홀경에 빠져 나오는 이상한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외국어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통역이 필요한 방언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도 복음의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방언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거의 모두가 분명한 외국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방언에 대하여 먼저 구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보고 사도행전의 방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 인류는 하나였기 때문에 언어도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바벨탑 사건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이후에 땅에 흩어져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음에도 인간들은 흩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높은 탑을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해버리심으로 흩어 버리신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인간의 언어가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더욱 다양한 사투리가 생겼을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방언들이 하나로 된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즉 성령이 임하심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섰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큰 일이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대로 땅 끝까지 증거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언어가 다른 민족이 쳐들어오게 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심판이기도 한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28:49)라고 합니다. 언어가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을 치러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28장에도 보면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28:11)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생소한 앗수르의 언어로 말씀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다른 방언이 나타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외국 나라가 쳐들어오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방언이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게 됨을 통하여 심판과 회개의 촉구가 들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고를 하나님께서 여러 번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스라엘이 방언을 쓰는 나라에 의하여 망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 하는 동안에 그들의 언어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일상적인 언어들이 바벨론 언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이란 단지 민족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는 회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방언이란 심판의 징조를 의미하고, 은혜 받은 이방인에게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더불어 새로운 이스라엘에 참여하게 된다는 징조라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방언에 대하여 예언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16:17)라고 합니다. 새 방언, 즉 새로운 언어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취가 오순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서 방언을 말하는데 그런데 그 방언을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한 말이 아니라 분명히 알아듣는 말이었습니다. 이 오순절 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합니다. 유대인으로서 각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외국에서 태어났기에 히브리어 보다 외국어를 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사람들인 제자들이 어떻게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말을 하는가 하고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방언을 한 것은 신비한 말이 아니라 외국어인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민족과 혈통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만들어진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안에서는 언어와 종족과 문화의 벽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구약에서 방언이 심판의 기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 방언도 역시 심판의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어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도대체 제자들이 전하고 있는 그 방언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3. 다른 언어의 내용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2:11)라고 합니다. 방언이 어느 나라의 말로 되었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언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큰일입니다. 하나님의 큰일이란 바로 이어서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 내용입니다. 오늘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이미 요엘서에서 예언 된 대로 성령이 임하신 것이며 그리고 성령이 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 하나님의 큰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방언을 한다 또는 못한다 하는 어떤 종교적인 황홀경과 현상들에 마음을 두지 마시고 하나님의 큰 일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 일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 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2:14-36)고 합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증거한 하나님의 큰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증거를 받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제가 방언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심판의 소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알아듣는 자는 어찌 할꼬 하면서 회개합니다. 그때 하는 말이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37절부터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2:37-42)고 합니다. 이러한 반응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큰 일이 증거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이 없는 것은 생소한 방언 한마디 들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외국인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솰라 솰라 한다고 말합니다. 무엇이라고 말은 하였지만 못 알아들으니 그러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두 가지 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내용처럼 놀라는 사람과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입니다. 놀라는 사람들은 그러면 어찌할꼬 할 것이고 조롱하는 자들은 돌로 치려고 할 것입니다. 직접 돌로 치지는 못하니 배척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복음이란 방언처럼 증거 되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에서 방언을 쓰는 자들이 들어오는 것이 심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면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고전14:20-25)고 합니다. 복음이 증거 되면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이상한 말들이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증거 되면서 우리 속의 것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죄임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나의 자존심을 위하여, 나 살기 위하여, 내 가정 지키려고, 내 교회 잘되게 하려고 예수를 불렀는데 그런데 그것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임 당한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이 말씀 앞에 우리는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는 자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성령이 오심으로 내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를 생각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일 말함을 들음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돌이켜 다시 주 앞에 서서 주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구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길이 손해이고, 지는 삶인 것 같아도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임을 알기에 주저 않고 그 좁은 길을 갑니다. 그것이 내 힘도, 내 능력도 아님을 알기에 항상 주께만 영광되게 하시고, 그런 자 되게 하심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이 삶이 예원 모든 가족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구원 받은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며 또 그 문제를 위해 하나님이 취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2.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과 신자 된 우리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방언은 무엇이며 또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5. 오늘날 바른 복음도 방언(외국어)처럼 들린다고 하는 뜻은 무엇입니까?

6. 바른 복음을 듣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까?

7.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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