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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본문 / 2:14-21

 

 

1. 신비주의와 야망

우리는 지난주에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고 제자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방언이란 분명한 외국어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언의 내용이 하나님의 큰일이라는 것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술에 취하여 아주 황당한 말들을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듣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 즉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하면서 그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그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셔서 성령을 보내셨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이 듣기에는 술이 취하여 헛소리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과 베드로가 성령이 임하게 된 것에 대해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2:14-16)라고 합니다.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삼시면 우리 시간으로는 아침 아홉시인데 어떻게 아침부터 술에 취하여 이러고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방언을 하며 하나님의 큰일을 증거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2:17-21)고 합니다. 바로 요엘 선지자의 이 말씀이 성취가 된 것이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방언을 이상한 말하는 것처럼 오해 하듯이, 성령이 임하면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는 내용도 마치 점쟁이들이 입신하여 과거를 말하고 장래를 말하고 꿈을 해몽하고 하는 식으로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유명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예언기도 받는다고 합니다. 말로는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을 거론하지만 점쟁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언, 환상, 꿈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신비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꾼다고 하니 인간의 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자주 쓰는 말로는 비전인 것입니다.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하는 내용으로 예언과 환상과 꿈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란 모두 이 세상에서 말하는 자기 꿈에 불과하며, 자기 야망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인간은 세상에서 그런 자기 꿈과 야망을 포기하지 그 헛된 꿈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못 이루면 자기 자식에게서 이루어 보기 위해서라도 자기 몸은 부수어 지는 한이 있더라고 뒷바라지를 하여 성공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지자들을 통해 보이셨던 하나님의 꿈이 오늘날은 전혀 다른 인간들의 꿈과 야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야망들은 바로 아담과 하와에게서부터 생긴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유혹을 지금도 모든 인류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인데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왜 내 꿈을 이루어 주지 않느냐고 금식과 철야로 농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는 목회 성공의 욕망을 가지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 성공의 꿈을 가지고, 각자가 각양의 소원을 가지고 환상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예언과 환상과 꿈을 크게 두 가지로 오해할 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비주의와 인간의 야망인 것입니다.

 

 

2. 예언과 환상과 꿈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서는 선지서인데 그런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꿈꾸어 왔던 내용들이 무엇이었습니까?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시대는 주로 구약의 왕들의 시대입니다.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백성들이 복을 누리지만 왕들이 잘못하면 백성들은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선지자들이 왕과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심판의 와중에서도 늘 하나의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들이 바로 예언이요 환상이요 꿈이었습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하여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과 같은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살피고 그들이 꿈꾸어 오던 내용들이 무엇이었을까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고 적이 쳐들어오고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 무엇을 예언하고 어떤 환상을 보고 무슨 꿈을 꾸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메시아의 통치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책망하며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언제나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 3장에도 보면 예루살렘의 멸망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4장에 보면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4:1-6)고 하십니다. 선지서의 주된 흐름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선포함과 동시에 회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갖 사치와 향락 속에 있는 자들을 심판하고서 회복하시는데 주님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을 딸들을 정하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들의 꿈이었습니다. 또한 이사야 11장에도 보면 그 앞에까지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결국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서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하는 일들이 있는 나라, 상함과 해함이 없게 될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환상이고 꿈인 것입니다. 다시는 상함과 해함이 없는 그러한 통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선지자들의 꿈인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요엘의 예언처럼 말세이기에 정신 차리라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그것으로 세상은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의 세상은 말세라는 역사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자신의 계시를 알리는 방법으로 선지자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예언와 꿈과 환상을 통해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이 주어짐으로서 꿈을 꾸고 예언을 말하고 환상을 보게 된다면 결국 선지자들에게만 주어지던 계시가 성령이 임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신 지금의 시대에서는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계시가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자녀와 젊은이 노인, 즉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계시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에게 따로 개별적인 계시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령이 임한 모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닫게 되고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기 다른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계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성도들에게 각기 다른 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으로서 동일한 성령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성령 안에서는 같은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 성령 안에서 우리 모두가 가지게 된 같은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오늘 본문에 보면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2:19-21)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으로 예언을 하게 하실 때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땅에서는 징조를 베푼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징조는 피와 불과 연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이 확실하게 드러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이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속에 있음을 증거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의해서 죽으심으로 세상이 곧 어두움인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보기에 세상은 평화롭고 힘만 쓰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오순절 성령이 임하실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불이란 이사야서에서는 심판하고 소멸하여 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이방인까지 정하게 하여 자기 백성으로 불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알기에 오직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엘 선지자가 꿈꾸던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선지자들이 꿈을 꾸고 환상을 보면서 예언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성령이 임한 제자들이 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주 예수를 믿으라고 외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곧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제자들의 외침을 듣는 이들에게는 이 외침이 얼마나 술 취한 자들의 소리처럼 황당하게 들리겠습니까? 오늘 여기에 앉아 이 말씀을 듣는 계신 우리들도 이러한 말씀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들만이 아니라 노아 홍수 때에도 그러하였고,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천 년 전에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조롱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종말이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데 그러느냐고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세상을 심판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면 굳이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신 이 세상이 곧 심판을 받을 어두움인 것을 알게 된다면 성도가 취하고 바랄 것은 구원 밖에 없습니다. 어두움에서 자연히 빛을 찾고 빛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한 성도라면 세상을 희망으로 보지 않습니다. 만약 세상에서 자신에게 희망이 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힘을 쓰는 삶을 산다면 그는 성령의 마음으로 산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신자로 하여금 세상에 희망을 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세상에서 유일한 희망인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의 같은 마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소망을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의 대상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성도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에 성령이 임한 자와 성령이 없는 자의 차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신약의 사도들도 이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벧후3:2)고 합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예언하고 꿈꾼 것이 무엇입니까?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3-13)고 합니다. 이 땅이 불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황당하고 술 취한 자의 소리처럼 들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조차 이상하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있다는 것은 종말을 보여 주는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말의 시대에 참으로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자는 바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처럼 주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는 자가 선지자들과 같은 꿈을 꾸는 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꿈을 꾸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인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방언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삼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지 않는 것이 곧 성령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지만 옛날 이스라엘에 오셔서 죽으신 그분이 지금은 하늘에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는 것과 예수님은 죽인 이 세상이 곧 어둠이고 심판이 대상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성령 받은 신자이며 구원받은 자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모든 관심을 세상으로부터 예수님에게로 바꿔놓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아 감사와 찬양이 그리고 영광을 주께 돌리는 삶을 사는 예원 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령이 임하면 환상과 예원과 꿈을 꾼다고 하는 내용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무엇입니까?

2. 어렵고 힘든 환경과 상황 가운데서도 구약의 선지자들이 꾸었던 꿈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계시적인 측면에서 오늘날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4.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요엘 선지자를 비롯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꿈을 꾸고, 환상을 보면서 예언한 것은 무엇입니까?

6. 제자들의 선포하는 복음 전파를 술 취하였다고 여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한 성령을 받은 주의 성도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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