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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원칙

본문 / 8: 7-13

 

1. 교회와 법

믿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성도에게 어떤 법칙을 세우시고 그 법칙을 준수하실 것을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법칙을 잘 준수한다고 해서 인간이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칙을 준수한다고 해도 인간의 본질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면 율법을 지키는 법칙준수가 믿음과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법칙준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에게 어떤 법칙을 세워주고 그 법칙에 대해서 순종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칙을 준수하지 못하면 기독교라는 단체의 일원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처럼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교인들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와 교회에서 믿음 있는 자로 대우받기 위해서 교회가 세워준 법칙을 준수하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법칙을 잘 준수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으로 인정받는 길이기에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보다는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인이 법칙을 잘 준수하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그리스도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법칙이 없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나라이지 법칙을 잘 준수하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단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사는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완전히 충족된 나라가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법칙을 세우거나 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것은 하늘나라 이야기이고 우리는 지금 땅에 세워진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법칙이 없다는 것은 맞는데, 그것은 우리가 죽은 후, 즉 우리가 하늘나라에 간 다음의 이야기고 지금은 땅에서 교회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법칙을 준수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란 법칙을 준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드러내면 되는 것이지 어떤 법칙을 준수함으로서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은 없습니다. 교회란 천국이 어떤 곳인가를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기로 보여줘야만 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이 법칙이 없는 나라라면 법칙이 없는 그 천국을 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입니다. 신자라는 신분은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신자된 자가 법칙을 준수하지 않아서 신자된 신분에 무슨 손상이 가거나 부족함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결국 그리스도의 피로 되어진 신자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그 신분이 유지되는 것은 우리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믿음과 법칙준수를 연관 지어서 교인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데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교회마다 신자들끼리 법칙을 내세우며 서로 판단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세워진 나라를 허물어뜨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질서를 연상하게 될 것입니다. 법칙이 없다 보니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무질서와 어지러움으로 가득찬 교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를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질서란 어떤 법칙을 세워서 모든 성도가 그 법칙에 준수함으로 행동에 통일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일에는 물건을 사고팔지 말자'는 법칙을 세워서 '우리 이제부터 주일에는 물건을 사고팔지 말자'는 식으로 주일의 행동에 통일을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깡패 집단'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깡패 집단은 조직을 위해서 통일된 행동과 질서를 요구합니다. 깡패 집단은 개인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두머리가 제정한 법칙을 지켜야 하고 그 법칙대로 실천함으로서 조직의 기강을 세우고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도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고 법이라는 이유를 내세워서 강요한다면 결국 교회는 깡패 집단이고 하나님은 깡패 두목밖에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법칙이 없으면 무질서해진다는 말을 하는데, 교회의 질서란 행동의 통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질서란 신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한 분의 마음에 우리들의 마음에 맞추어져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질서이고 통일인 것입니다. 신자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이 통일이고 질서인 것이지 어떤 행동을 통일한다고 해서 질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이 통일된다고 해도 인간의 마음이 제각각이면 그것은 통일이 아니며 그것이야말로 교회의 무질서이고 어지러움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법칙에도 매이지 마십시오. 자유롭게 살아가십시오. 그러나 우리를 붙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은혜에 매입니다. 억지가 아니고 강요가 아니라 은혜를 알게 된 자로서 은혜를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자는 법칙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이 그를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세상 심판의 기준은 어떤 법칙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입니다. 심판의 근거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명확하게 해 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편에서 법칙준수를 믿음이나 심판이나 상 또는 축복으로 연결 지어서 강요한다면 그것은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천국은 법칙준수에 대가로 세상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어린양의 피의 은혜로 감사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어떤 법칙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고 장차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신다는 내용을 알고 그것을 믿고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2. 말씀과 인간

오늘 본문에 보면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세상에 재앙이 내려집니다. 인을 뗄 때는 세상 문화와 문명을 치셨는데, 나팔을 불 때는 그 재앙의 범위가 자연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물을 하나님이 다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이 범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만 재앙을 내리시면 되는데 왜 죄 없는 자연까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연은 인간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세계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세계를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의 완벽성을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맨 처음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흠이 없고 영광된 것이었습니다. 그 세계를 인간이 흠집을 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과 연관이 있는 세계를 모두 없애 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새롭게 창조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완벽한 세계를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는 것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옛 세상은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옛 세상도 말씀에 의해서 생긴 것입니다. 말씀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기에 말씀에 의해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말씀에 의해서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된 피조물의 본질입니다.

우리 역시 말씀이 생명인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63)고 합니다. 때문에 나라고 하는 존재는 말씀에 종속된 자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도 나의 인생도 모두가 우리 마음대로 계획되고 성취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서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며, 말씀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초의 인간은 말씀에 순종하는 인간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를 성취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겠다는 것은 말씀이 아닌 자기 개인적인 문제를 앞세우고 자기 인생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서 발버둥 치는 세상과 그런 세상 속에 사는 인간을 허물어뜨리시고 말씀을 이루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셔서 그 나라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다 이루었다'고 외쳤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롭게 세워진 예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이 세상에서 그 흔적을 드러냅니다. 그 흔적이란 자기 인생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성취를 살아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말씀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자기 개인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말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 개인의 인생까지도 말씀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말씀을 자기 인생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인생은 말씀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을 인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성공을 위한 쪽이 아니라 말씀을 이루는 쪽으로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아는 신자는 자기 개인 문제조차도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인간들과의 차이점입니다.

 

3. 중요한 일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교회가 '법칙준수'라는 것까지 동원해서 하나님이 인간 개인의 인생을 위해서 존재하고 계시는 것처럼 선전을 하고 가르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라고 하는 목사 개인의 사업과 목사 개인의 인생 성공을 위해서 교인들을 끌어들이고, 또 그들을 이용하고 있는 이것을 과연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깡패 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사가 말씀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목사 권위를 내세우게 되고, 목사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에게 도전하고 반기를 드는 자를 자기 집단으로부터 축출해 버리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깡패 집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말씀으로 이루어진 교회라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말씀이 무엇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하시는가에 정신이 집중되는 것이 말씀의 피조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에 의해서 말씀을 보고 살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법칙을 준수함으로서 되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자연에 대한 재앙이 보여질 때마다 옛 세상을 허물어뜨리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은 단지 인간을 혼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래 세상을 창조하셨던 그 창조의 원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을 말해주는 심판입니다. 세상은 인간이 중심이 아닙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방식을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나온다면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기 개인 문제를 끌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는 말씀을 이룰 자질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법칙준수, 예를 들어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성경공부하고 구역예배하고 봉사하는 모든 행위를 총동원해서 말씀을 이루겠다고 시도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결과입니다.

인간의 행위는 선악 체제의 토대 위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기에게 의가 되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에 인간의 법칙준수란 결국 자기 의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종교적 죄악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함으로서만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향한 어린양의 심판으로 향합니다. 어린양의 심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본다면 우리 개인의 인생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린양의 심판에서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남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사소한 일에 너무 힘 빼고 살아가지 마시고 진짜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알아 오직 그 일에 마음 쓰시면서 살아가기 바랍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날 교회 생활을 하는 우리의 삶과 믿음의 삶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2. 오늘날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법칙준수가 믿음의 장애물이 된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교회의 질서는 무엇이고 또 반대로 무질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4. 하나님께서 죄 없는 자연까지 재앙을 내리시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오늘 말씀에 선악과를 먹기 전후의 인간의 존재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합니까?

   

6. 하나님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겠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7.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신 예수님 나라의 흔적은 어떻게 나타나며 또 그것은 세상 인간들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합니까?

   

8.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 없는 교회와 말씀의 피조물인 교회는 어떻게 다릅니까?

   

9. 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모습에서 우리를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10. 인간의 어떤 행위도 종교적 죄악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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