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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녀 되고 지체된 우리에게 요구된 신앙

본문 /  요18: 1- 5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그 당시에 깨우쳤던 것들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복음을 증거 하는 가운데 더 깊은 뜻을 깨달은 시각에서 기록한 책입니다. 당시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또한 그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하였는데 뒤에 와서 보니 그것보다 더 깊은 내용과 더 놀라운 뜻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런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 끝부분에서 기쁨과 승리로 마감하는데 비해 요한복음은 끝까지 요한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도들의 어리석음과 실패와 못난 것들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더 많은 것입니다.


1. 의도

요한복음 끝부분에서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내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21:18-22)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만회케 하시고 그의 사도직을 다시 부활시키시며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하시자, 베드로는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저기 요한은요?’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자신이 기록한 복음서의 끝부분에 이것을 기록한 것은, 요한복음의 중요한 주제, 즉 ‘우리가 도대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가?'하는 주제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런 기록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서두에서부터 그리스도가 세상에 왔으되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고, 아무도 그를 영접지 않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어두워서 그 빛을 못 보더라는 것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의 커다란 하나의 주제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나타내는데 있어서 18장에서 마지막 21장까지는 그 절정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와 연결하여 주의 깊게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6)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알게 하려는 일 때문이셨습니다.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주님을 아는 고백을 하자 주님께서는 그것을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였다고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잠시 후에 주님께서 ‘내가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하시니까, ‘그 일이 결단코 일어날 수 없나이다'라고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방금까지만 해도 ‘바요나 시몬아 복이 있도다'라고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사단아'라는 꾸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주를 몰랐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이어 사단이라는 받아서는 안 되는 욕을 먹는 자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도 주님을 더 알아야 되는 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자보다 훨씬 앞섰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주님을 알고 있었다고 얘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 이렇게 무지한 자였고, 미흡한 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러한 길을 걸으시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시각 속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우리가 상당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 때문에 오히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중요한 신앙의 내용과 본질들의 많은 부분들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경고하며 생각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신앙의 비밀

그런 내용 중에 하나가 신앙을 도덕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신앙과 도덕은 분명히 다릅니다. 도덕은 나와 사회와의 문제,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선하고 의롭게 지내는 것을 도덕이라고 합니다. 물론 성경이 다른 사람에 대해 착하고 선하게 사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러나 신앙은 그것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신자들이 오해하는 것입니다. 윤리는 나로부터 나가서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고 선하게 산다는 이야기지만 성경이 추구하는 신앙은 나로부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로서는 어떤 선한 것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리켜 성경은 생명이라고 합니다. 즉,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그의 영광과 생명과 진리와 은혜가 나를 통과하여 밖으로 표출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이런 시각 때문에 신자의 신앙의 가장 큰 본질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5-7)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포도 열매는 포도나무의 가지 끝에 열리지만 그것은 가지의 열매가 아니라 포도나무의 열매입니다. 단지 가지에 끝에 달릴 뿐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한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어’ 즉, 내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에 이르러서는 그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그 하나 됨의 본질은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있는 것입니다. 왜 요한이 이런 시각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하였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착한 행실, 거룩한 생활, 이런 것들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과 신자 된 훈련과 요구가 무엇인지를 성경적으로 바로 파악하여 바로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은 너무도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기독교는 이런 것일 것이라는 생각을 자기 스스로 갖고 나오는 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향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능력과 실력이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 듯 생각하기에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여, 이 일이 주님께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주님을 보호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주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고 하십니다. 그 행한 대로 갚는 것 중에 지금 베드로가 말한 베드로의 열심이나, 주님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주의 편을 들겠다는 것은 합격점에 들어가는 행위가 아닌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를 향하여 내는 어떤 열심이나 열정을 신앙의 본질과 내용으로 삼고서 그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같이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와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 다음에는 전부 교회에 관한 편지가 전부입니다. 여기서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사 그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총칭합니다. 바로 이 교회야말로 신약성경의 가장 큰 내용과 핵심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 가면 그 교회가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9-12)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뜻의 비밀'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좀 더 확대한 것이 에베소서 3장입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엡3:4-6) 바울이 깨달은 비밀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인 성도들인 교회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조건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비밀입니다. 어떤 인간적인 실력이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쪽으로부터의 은혜로 말미암을 수밖에 없다는 비밀입니다. 이런 비밀은 성도가 되면 다 알게 됩니다. 즉, 예수 믿어 구원 얻는다는 진리를 다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로 한 걸음 더 진전되느냐 하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다시 에베소서 3장입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3:9-10) 그러니까 또 하나의 비밀은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구원의 비밀은 인간에게 있는 어떤 실력이나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비밀은 우리가 그 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다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러한 이야기로 충만합니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2-23) 여기서 예수님은 그의 충만케 되시는 완성에 있어서 교회를 그 한 부분으로 삼으셨다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완성되지 않으면 주님도 완성되지 않기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의 영광과 스스로의 충만을 유보하고 계십니다. 교회가 충만해져서 그의 몸을 완성하기까지는 그 머리되신 주님도 그의 충만과 완성을 유보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 되시기 때문에 충만해질 수밖에 없고 영광스러우실 수밖에 없고 완성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교회로 우리를 부르고 그의 몸 된 교회에 우리를 지체로 부르셨다는 것은 우리를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 신자들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내가 무엇을 깨우치거나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무슨 능력이나 지식이 잠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들어올 뿐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 ‘네가 천사의 말을 하고 방언을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필요 하느냐 하면 그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인가를 추적하여 그것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의 훈련이며 신앙의 본질이 됩니다.


3. 요구

마태복음 13장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3-12) 이것이 성경의 큰 비밀입니다. 있는 자는 더 받아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깁니다. 아는 것에 대해 성경은 아주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아는 자는 더 넉넉하게 되지만, 모르면 더 궁핍해진다고 합니다. 영적인 문제에서 말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하여 영생에 대한 정의를 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신앙인들의 가장 큰 병은 그가 내고 있는 열심과 진심에 비해 결실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열심과 정성에 비해 신앙생활이 너무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모르는 차이로 말미암아 공부하는 내용의 중요한 핵심 대신 엉뚱한 것에 대해서만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생활은 무지하여 제쳐놓고, 자기 자신이 요구하는 욕심을 좇아 신앙의 열심을 부려놓고서 잘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늘 우리는 나의 정성이면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기에 거기에는 많은 무익한 상처와 좌절과 또한 교만으로 떨어지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바로 못 믿고, 바로 못 믿으니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2장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 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신자의 성공은 그 스스로의 성공이 아니라, 그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공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면 내가 실패하는 것 이전에 오늘 나를 그의 지체로 부르셔서 명령하시고 요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실패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신자의 불신앙은 혼자만의 실패가 아니라,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선포되는 것이 막히며 그의 은혜의 손길이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신자들은 모두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한 기관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식으로 하면,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게 하려고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쓰이는 자는 잘 되는 대로 더 잘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각자는 주님 안에서 얼마나 주님과 연합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것이 나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런 시각에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생애는 언제나 ‘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왔노라. 내가 하는 일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바로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의 삶은 주님이 가신 발자취를 따라서 ‘내가 행하는 모든 삶은 모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요. 주님이 하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고백을 해야 되며 그것을 기준으로 해놓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연마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요구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또 한 알의 썩는 밀알로 부르시고 있으며, 환난과 핍박 속을 걷게 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께서 많은 영혼들을 일으키시며 흑암에서 건져 내시며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주님께서 가지신 그 지식과 지혜와 능력만 떼어다가 내가 갖고 내가 원하는 일에다 그것을 뿌려서 내가 편해지고 박수 받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요구하니까 늘 주님과 충돌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 주변에 우리로 인하여 생명이 자라고 있으며, 한 사람이 치유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오늘도 나는 순종이라는 것으로 나를 조절하고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에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보이며, 내게서 드러나는 주님의 삶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의 삶이 곤고한 날들일 수는 있지만, 그 날이 영광과 기적의 삶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에서 찬송과 감사가 넘쳐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죽었던 나무에서 꽃이 피며, 죽었던 땅에서 놀라운 생명의 발아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보이지 아니하거든 지금 이 시간 속히 돌이키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쁨과 영광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요한복음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 신앙과 도덕이 다른 이유는 무엇이며, 다르기에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3. 성도들과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의 본질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4. 오직 성도들에게 순종이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신자들이 모두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이 자녀 되고 지체된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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