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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율법은 사랑으로 종노릇하라는 하나님 마음

본문 /  요18:28-32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드디어 빌라도의 법정에 서게 됩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기에 사형 판결권과 집행권이 로마 총독에게밖에 없었기에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빌라도 사이의 대화와 그 부분의 사건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붙잡아 온 자들에게 빌라도가 묻는 질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 모습

오늘 본문에 빌라도가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며 죄목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에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18:30)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쓸데없이 왜 번거롭게 하겠냐. 보다 못해 할 수가 없어서 귀찮게 하게 되었습니다.'하는 식의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소하는 이들이 얼마나 합법적인 절차와 객관성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란, 반드시 부도덕하고 더럽고 악한 모습으로만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생각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도덕적이고 의로울 것 같은 곳에서 감쪽같이 죄악이 자행되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생각하는 죄는, 성경이 말씀하는 죄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죄인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로 연결되는 사건에만 관심을 가짐으로 여기에 나타난 인간의 죄악과 부패한 상태에 대한 적나라한 모습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지금 예수님의 고난 중에 나타난 제자들과 대제사장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 또 로마인들을 통해 지금 인류의 처지가 어디인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게 되는데 말하자면 거기에 우리들도 끼어 있는 셈인 것입니다.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마26:57-59) 여기서 공회란, 당시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오늘날로 하면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쥔 지도자들이 합세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증거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짓증거를 제대로 찾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마26:60-61) 여기서 두 사람이란, 모세의 법에 기록된 최소한의 증인입니다. 사람에 대한 고소는 증인이 하나밖에 없으면 안 됩니다. 두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 일을 원한과 복수심으로 조작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증인이 두 사람만 있다면 이길 수 있고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 일을 가지고 사람을 잡는 일에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성경이 어떤 의도 하에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정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궁극적인 자리에 나아가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자기에게 유리하게 가져다 쓰는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제사장, 서기관, 공회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법에 도무지 저촉되지 않는 사람들 같이 보입니다. 증인도 둘 이상 세워라 해서 둘 이상 세웠고,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뺐지 않고 빌라도 총독에게 보내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예수님을 사형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합법한 절차를 밟았다고 해서 정당하였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성이 거룩한 포장만 덮어 썼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에서 예수님을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서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을 지키려고 하여 이방인의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 된 로마인의 관정에 들어가면 부정하게 될까봐 철저히 조심할 정도로 하나님의 율법과 거룩함에 치밀한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정을 가진 자들이 유월절의 어린양 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기가 막힌 대조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들의 이 같은 행동 양식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세세한 문제는 잘도 지적하고 구별하여 걸러 냅니다. 유월절을 얼마나 거룩하게 지켜야 되는지 그리고 두 세 증인이 있어야만 고소할 수 있는 것도 잘 지킵니다. 이게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약대는 삼키는데 목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하루살이는 먹어도 목에 걸리기 전에 잇새에 끼일 정도로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열심을 내면서도 약대같이 큰 문제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저지르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화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만큼 우리를 찌르는 고소장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는 적은 죄 문제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하루살이 걸러내듯 잘도 구별해 지키면서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있어서는 주저 없이 일어섰던 자들입니다. 적어도 우리도 그를 미워했던 자들입니다. 우리를 죄인이라고 해서 미워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대표로 세워서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중요한 핵심중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적어도 제사장이고 공회원이요 바리새인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그 언행심사가 오늘날 우리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새 부대

한 예로 누가복음 5장입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눅5:27-33)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향해 왜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왜 당신은 금식을 안 하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결국 한 가지 목적, 즉 예수님을 책잡아 죽이기 위해 이 모든 종교적인 지식과 율법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셨던 이스라엘을 향한 율법의 방향은 온데간데없고 그 주신 율법으로 누구를 때려잡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만의 문제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신앙의 싸움거리입니다. 로마서 13장엔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8-10) 율법을 주신 목적이 단지 간음, 살인, 도적질하지 않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잘못을 안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 자신과 인생을 악에게 병기로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드리며 선을 이루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작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와 선한 일에는 힘쓰지 않고, 앉아서 하는 일이 누구는 기도 안하고, 누구는 예배 빠지고 하는 것이나 적어서 하나님 앞에 보고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받아놓고 한다고 하는 일이 이렇게 다른 사람을 흠잡는 일에 사용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중심에 사람을 살릴 생각이나 거룩한 완성이나 생명과 영생을 향한 목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남을 죽이고 시기하며 원수 맺는 악한 일에 빠져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는 일의 조목조목은 다 옳은데 결국 그렇게 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지적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가면 또 다른 금식 논쟁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은~~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9-14) 결국 신앙이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야 될 줄을 알고 하나님 앞에 도우심을 구하러 나아온 가난한 심령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 저 사람이 낫습니까? 내가 낫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여기에 나타난 바리새인과 같은 자세를 취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신앙을 자랑해 놓고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도적질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잘 내는 자들이 못 박았습니다. 이 성경의 강력한 지적을 가볍게 넘기시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누가복음 5장의 금식 사건을 보면 이런 말씀으로 연장됩니다.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눅5:34-39) 여기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우리의 심성이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고선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기독교적인 지식과 율법을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가지고 살인을 하는 무서운 자리에 서고 만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라고 하십니다. 율법이 율법으로서 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중생한 이후에라야 가능합니다. 우리들은 이제 가능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가만히 방치해 두면 언제나 옛 습관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살인하지 않았느냐, 도적질 하지 않았느냐, 간음하지 않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느냐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5:39-42)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이 지적이 죄인 된 우리들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이 같은 사랑하지 않는 죄인의 근성에서 속히 벗어나고 뿌리쳐야 할 것입니다.


3. 사랑의 사람

그래서 신앙은 십일조를 했느냐, 주일을 지켰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성수했다면 그것은 맛이 상한 음식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주일을 지키는 것이 기쁜 일이 되는 것이고, 주를 사랑한다면 나에게 못되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주님이 그 사람도 사랑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려고 발버둥 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란, 우리가 억지로 지키도록 요구된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기준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안 지켜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안 지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는 안식일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안식일에~~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3-28) 여기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율법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이도록 되어 있다'는 논조로 예수님을 몰아 부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죽이려고 율법을 만드신 분이 아니라 너희를 사랑하고 복을 주려고 율법을 주신 분이다. 다윗이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먹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시지 않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려고 하시고 은혜를 베풀려고 하신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그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궁리만 하고 있느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중요한 하나의 철칙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꼭 하라고 시키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복이 되기 때문에 하라는 것이지, 우리를 고달프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율법을 대할 때에 그것을 괴롭고 고달픈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복을 주시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셨다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이웃을 얼마나 살려내고 위로 했는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입니다.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눅13:10-16)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잘난 척하는 것입니다. 나는 잘난 척 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잘난 척하며 남을 괄시하는 것을 보면 도무지 못 참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기 보다는 비꼬고 꼴 보기 싫은 마음이 먼저 떠오르면 우리는 부끄럽게 여기야 합니다.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으니까 나도 그런 마음을 갖지 라는 생각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까지 율법이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단지 정당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는 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을 요구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죄를 안 지었다’는 것 까지가 율법의 요구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며 그 원수를 위해 기도하며 그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헐벗거든 입히는 자리에까지 가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좇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로마서 13장에서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라고 하고 있고, 갈라디아서 5장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갈5:13-14) 종이라는 신분은 힘들고 고달픈 직책입니다. 자존심이 없는 직분입니다. 이런 ‘종노릇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그것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만일 이것을 놓치면 율법과 종교적인 지식을 가지고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15절)는 것입니다. 그가 가진 종교적인 지식이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자리에 까지 못가면 결국 그 많은 종교적인 지식을 가지고 피차 물고 먹는 것밖에 더 있을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주님께서 지셨던 십자가처럼 서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 일에 우리의 인생을 걸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세리 마태 집에서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비방하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주님은 ‘나는 건강한 자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병자를 부르러 왔고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믿고 그 분을 마음에 영접한 신자라면 그 분의 말씀인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신자의 평생의 목표는 원수가 없는 것이며, 섭섭함이 없는 것이며, 억울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원수와 섭섭함과 억울함이 사랑으로 바꿔치기 당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들은  뺨을 때리는 자를 향해 또 다른 뺨을 대며, 나에게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가장 못되게 구는 자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에겐 사랑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하시며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옳고 그른 것을 판가름 짓는 싸움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 옳고 그른 것이 사랑과 덕을 세우는 경지에 이를 때에 다른 사람을 살려내고 주님처럼 한 알의 썩는 밀알로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기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쌓은 신앙의 지식들이 또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아닌지를 돌이켜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으로 종노릇하고 밀알처럼 썩어지고 당해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려내고 위로하고 북돋우어 주었는가를 점검하시고 거기에 남아있는 신앙의 생애를 걸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본문을 통해 보여주는 우리가 가진 죄에 대한 오해는 무엇입니까?

2. 사람을 고소할 때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세워야 하는 성경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3. 리새인과 서기관의 문제만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신앙의 싸움거리는 무엇입니까?

4. 도적질하고 거짓말하는 자가 아닌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잘 내는 자들    이 예수님을 못 박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참 기준은 무엇입니까?

6. 우리가 주 안에서 가져야 할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철칙은 무엇입니까?

7. 주를 믿음으로 갖게 된 사랑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8.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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