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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관계

본문 / 요20:11-18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무덤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다니는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처음에는 동산지기인줄로만 알았다가 예수님이 ‘마리아야’라고 부르시자 그때서야 ‘선생님이여’라고 답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이 말씀의 내용을 가지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첫 열매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왜 만지지 말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리아에게는 만지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본문 뒤에서 도마에게는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하시며 도리어 만져보게 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왜 어떤 사람에게는 만지지 말라고 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만져보라고 하시는 것이냐는 말씀입니다. 이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제사에 대해 알아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레위기 23장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23:9-14)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할 규례들 중에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하나님 앞에 흔들어 바치는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제라고 합니다. 짐승을 불에 태우면 번제, 곡식을 불에 태우면 소제, 포도주나 기름을 부으면 전제입니다. 그런데 처음 익은 곡식단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기 전까지는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단을 하나님께로 가져와서 요제를 드리고 난 후에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흔들어 바치는 날이 안식일 다음날입니다. 이것은 곡식의 첫 단뿐만이 아니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간에 처음 태어난 수컷은 모두 하나님께 돌려야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0장입니다.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생축의 처음 난 것과 우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느10:36) 이렇게 처음 것을 돌림은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출애굽 때에 처음 태어난 장자나 짐승이나 간에 다 죽었지만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돌려야하는 것은 사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만 처음 것이 드려짐을 통해 나머지도 거룩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단을 제일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서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단은 사람이 손대지 못하고 먹지 못하게 구별된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 익은 열매가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부활의 첫 열매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나는 지금 처음 익은 열매로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곡식에 비유합니다. 처음 익은 곡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제를 드리듯이 하나님께 안식 후 첫날 다시 사심으로 구약의 그 제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차원에서 마리아에게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첫 열매라고 하신 것은 다음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는 그리스도이시고 그리고 다음에 나타날 열매들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라고 합니다. 그에게 붙은 자들, 그를 믿는 자들이 다 함께 부활의 다음 열매들도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은 맏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가 되시듯이 맏아들이 되시는 것입니다. 맏아들이 되신다는 것은 그를 이어 다른 많은 아들들이 나오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다음 열매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며 또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은 그 뒤에 계속해서 나오는 모든 열매들도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 열매로 드려지게 되심을 통해 죄인들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2. 새로운 관계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입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28:9)라고 하십니다. 즉 마태는 마리아를 포함한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을 붙들고 경배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과는 달리 마태는 예수님을 만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서의 내용이 다른 것은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 하되 일률적으로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아들로도 오셨고,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로 오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분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저자들이 각기 자기 시각에서 예수님을 증거 함으로 인해 같은 사건이 다르게 기록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어느 것이 사실이냐?’라는 면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요20:17)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만지지 말라고 하신 이유이지만 도대체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신 것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질 수 없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그 뒤의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말씀합니다. 내 형제란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형제의 관계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즉 새로운 관계가 되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예수님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곳은 본문이 처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문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형제로 불리는 새로운 관계, 예수님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신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진노의 자식일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는 귀한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로 부르면서 그러한 부름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전 본래부터 나의 아버지고, 나의 하나님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닙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을 부를 수 없는 진노의 자리에 있는 멸망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관계와 신분에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차원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할 자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로 만드는 놀라운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 마리아 신앙

오늘 본문에 예수님을 만지려 했던 마리아는 비록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알아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입니다. 부활을 모르기에 하늘의 생명에 대해서도 무지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마리아의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이 마리아의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 쪽에서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이라 부른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는 들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고 해서 무조건 믿음이 아니며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7장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 이다”(요17:3)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다는 것은 마리아의 수준을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였습니다. 만약 당시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았다고 한다면 마리아는 부활의 의미도 모르면서 영생을 얻은 자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몰랐기에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붙들고 예수님을 아는 자로 고쳐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마리아의 수준에 있으면서 ‘나는 예수님을 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아는 수준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신 예수님의 모든 일의 의미를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부활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진 하늘의 생명의 관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 그런 상태에서는 부활의 세계에 참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는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 쪽에서 정성을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있게 된 신자는 오직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공로만 의지할 뿐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생명의 활동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6-17) 예수님을 육체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고 만져보려는 식으로 믿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오직 자신을 위해 활동합니다. 자기 세계를 위해 자신의 유익과 탐욕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구축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신앙도 인간의 유익과 탐욕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뿐입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버리고 주님만 바라본다는 것이야 말로, 세상의 사고방식이 아닌 하늘의 생명의 활동의 증거물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행하시고 이루신 일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이 가능해진 것이고 하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이 모인 교회는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과 섬김만을 높이고 노래할 뿐이지 인간이 중심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지 아니하면 필히 인간의 탐욕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비록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며 여러 가지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것으로 판단될 뿐입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친분과 정으로 모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차원 높은 주님의 희생과 섬김으로 모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용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친분과 정을 뛰어 넘어 만나는 교회의 관계인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생명에 결코 나아갈 수 없는 우리가 생명에 참여하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인가를 묵상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에게 내 마음의 전부를 내어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되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내 힘과 정성과 열심이 주님을 붙들고 있는 자리에서 놓아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주님의 보좌 우편에서 자기의 택한 자들을 위하여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빌고 계시는 그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야 하늘의 평안을 맛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만든 새로운 관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이젠 그 받은 자녀라는 신분에 걸 맞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땅의 것을 얻기 위한 우상이 아닌 하늘의 것을 채우기 위한 참 하나님을 만나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실 때 우리의 매일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삶이되시기를 바라며, 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아름답고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께서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3.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는 무엇입니까?

4.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가졌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5. 교회란 어떤 사람이 모인 곳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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