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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본문 /  요20:18-21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18-21)


지난 시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의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마리아의 수준으로는 예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참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주를 본 사실과 또 주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 전합니다. 따라서 당시 제자들은 주께서 다시 사셨다는 것에 대해 마리아를 통해 전해 들었고 또 일부 제자들은 빈 무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여서 문을 닫아걸고 모였습니다. 이들이 기도하였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두려워하여 전전긍긍하고 모여 있을 뿐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두려움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살펴보고 이러한 두려움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제자들

마리아는 이른 아침에 무덤을 찾아 가서 빈 무덤을 보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전해들은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요20:19) 다른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에 대해 믿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4) 그렇게 볼 때 본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듣고도 여전히 유대인을 두려워하고 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말이 그들에게 전혀 어떤 힘을 주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서도 제자들과 같은 모습을 얼마든지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예수님이나 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있으며 위로를 얻고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에 대한 말을 듣고도 여전히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동일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본문의 내용은 연약한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신앙에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까지 제자다운 모습을 드러내지를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붙들릴 때는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께로부터 도망친 그들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 앞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마디로 잘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제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처럼 우리 역시 신자다운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고치시고 새롭게 하시면서 주님의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며 사랑입니다. 이점을 염두에 두며 살아가신다면 결코 교만이라는 악한 길에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2. 두려움과 평강

19절에 보면 유대인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두 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안전장치를 하여도 평강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두려움의 뿌리는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이란 죄로 인하여 온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결국은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결국 일평생동안 죽음이란 공포 속에서 그 죽음의 종노릇하면서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에서는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종이 되어서 벌벌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으면 안 되고, 나는 실패해도 안 되고, 성공해야만 된다는 이러한 모습이 실패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붙들려 사는 불쌍한 인생인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죄로부터 온 것이며 그 근원을 창세기 3장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8-10) 죄가 들어오기 전의 에덴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는 갑자기 하나님을 피하게 된 것입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가리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았고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범죄이후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앞에서건 사람 앞에서건 자기를 스스로 가리고 또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범죄의 결과로 두려움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나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사람들은 일생동안 죽음에 종노릇을 하기에 두려움으로 지내다가 지옥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자들의 목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불과 유황에 들어가는 목록에서 바로 그 일 순위가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죄지은 결과입니다. 이것이 물론 믿지 아니하는 죄와 연결되고 나머지와도 한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만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도 죄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기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러한 두려움에서의 해방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두려움에 붙들려 있는 자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그런 두려움으로 인해 평강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인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비록 예수님이 직접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에게 자동적으로 평강이 주입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때문에 갑자기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겨서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모임을 갖는 그런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지만 평강이라는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을 때 그 두려워하던 것들이 전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님을 바르게 알게 되었을 때 그 상태를 가리켜서 평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같이 자신의 안위에 영향을 주는 힘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에서 염려와 걱정도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세상의 것이 나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생각하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고 말씀합니다. 결국 세상의 힘에 대한 두려움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분을 생각지 않는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강은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는 말씀은 인사치레의 말도 아니고, 평강이라는 마음을 주시겠다는 뜻도 아니라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이 결코 두려워 할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겠다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는 구절을 보면 마치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평강을 얻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평강의 상태의 기쁨을 의미하기보다는 죽은 줄 알았던 스승이 살았기 때문에 이제 자신들의 문제는 예수님이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로 인한 기쁨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예수님을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쁨 역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으로 인한 것이지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다시 사심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신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세주가 다시 생겼다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한 것이 평강이었다면 예수님이 그런 제자들에게 21절에 다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21절)는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의 기쁨은 주님의 평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보냄 받은 우리

그리고 21절 뒤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신 것 같이 제자들을 보낸다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과 그 마음과 동일하게 제자들을 보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이나 삶에 있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자리로 보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오직 천대와 멸시와 고난의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만 바라보시고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태나 어떤 환경과 형편에도 평강이 있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로 이러한 자로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에게 보냄 받은 제자답게 살아가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평강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은 내가 살고자 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남들처럼 살아봐야 한다는 욕심으로 인해서 자신이 낮아지게 되고 실패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인생이 끝이고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의 권력자와 힘에 대해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예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제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신 것처럼 보냄 받은 제자다움은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버지의 뜻 아래 존재한다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인생은 분명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쪽으로 분명히 책임지시고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뿐 세상에 대해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되어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으로 평강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간섭을 벗어나서 되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죽는다면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실패한다면 실패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죽음과 실패를 원하고 기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뛰어 넘어서 신자를 해가 되는 쪽으로 끌고 갈 수 없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 실패한다면 그것은 세상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실패로 밀어 넣어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보고 살아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사심은 사망에 대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즉 세상은 결코 예수님의 백성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죄로 인하여 몸의 사망은 필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이 죽는 것은 세상의 권력과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인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에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돈이 없는 것, 실패하게 되는 것, 어느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것이야 말로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로 살아갈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주님의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이 평강은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돈으로 평강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의 명예와 권세로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이제 이 선물을 받은 자답게 어떤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두려움 속에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을 누르며 사사기를 바랍니다. 그 평강의 하나님의 우리의 매일의 삶을 지배하며 간섭하사 언제나 하나님으로만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마리아에게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제자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2.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그 뿌리와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3. 두려움에 붙들려 있는 제자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기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죽음과 실패까지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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