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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도마의 믿음과 보지 않고 믿는 믿음

본문 / 요20:24-31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에서는 알 수 없고 배울 수 없는 하늘의 세계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늘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하늘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의 세계는 생명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생명나무를 감추시고 아무도 그곳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생명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생명으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설령 인간이 생명에 대해 말하고 생명을 얻는 길에 대해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습득한 경험과 상식에 의한 것이지 하나님이 알려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세계에 대해 말씀하시는 성경에 충실 하는 것이야 말로 생명으로 향하는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우리의 도움이며,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이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신자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만이 구원자시며 주님 앞에서 우리의 재능이나 힘은 쓸모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성경이며, 말씀이 확실한 증거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체험적인 기적을 원합니다. 그저 믿고 바라보는 것에 대해 막연한 것으로 여기고 확실한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체험을 하거나, 꿈에서라도 예수님을 보게 되면 자신의 믿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어떤 말씀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체험

오늘 본문에 보면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5절을 보면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마는 지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직접 목격하지 못하고 다른 제자들을 통해 그 사실을 전해 듣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입장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도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이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전달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받고 있는 것이 같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의 말을 들은 도마는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가 요구하는 것은 직접 손의 못 자국을 봐야겠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봐야겠고, 옆구리에 넣어 봐야겠다는 것입니다. 즉 직접 확인을 하고 체험을 해야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도마의 모습에 대해 너무 믿음이 없다거나 불신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 역시 도마처럼 직접 예수님의 못 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 만져보고 확인을 한다면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에 대해 믿음이 더 깊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성경에서 말씀한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몸소 체험한 것이 더욱 더 살아있는 믿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쩌면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하는 것보다는 내가 봐야 믿겠다고 나서는 도마가 더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솔직하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봐야 믿겠다는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못 자국을 직접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도마와 다른 제자들과 차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못 자국을 직접보고 만졌지만 다른 제자는 만지지를 못했다고 해서 도마가 더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의 구분을 많이 합니다. 체험적인 것을 기준으로 해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 또는 적게 받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정반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못 자국을 만져 보라고 한 것은 도마가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도마에게 오신 것인데 이것을 두고 도마가 더 낫다고는 말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체험이라는 것이 절대로 자랑거리로 등장할 수 있는 조건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뭔가 체험을 하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믿지 않을 정도로 완악했기 때문인 것이지 특별히 사랑하거나 더 나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런 체험을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으로 여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런 체험을 한 사람이 간증집회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체험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못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 있기 때문에 너희와는 다르다는 식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부끄럽습니다. 여러분은 저 같은 체험을 하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는데 나는 얼마나 못나고 형편없으면 체험을 줘서 믿게 하시는 것입니까?’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2. 복 있는 믿음

다시 오늘 본문에 보면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하면 도마에게 직접 손을 넣어 만져 보게 하시는 이유는 도마를 믿음 없는 자로 그냥 두지 않으시겠다는 주님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특별히 도마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도마는 만져 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고 하니까 믿음 있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도마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요20:28)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믿음을 고백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보고 믿는 것과 보지 못하고 믿는 것에 차이를 두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즉 보고 믿는 것보다는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더 수준이 높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또 다시 ‘체험을 했는가 하지 않고 믿는가’ 하는 것으로 믿음의 높고 낮음을 구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체험을 하는 것이 나은가, 체험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은가를 구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믿음은 우리의 체험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체험을 하지 못하고도 믿는 자들이 나타날 것인데 그들이 바로 복 받은 자들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의 결과를 자신의 삶에서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원하는 것이 기도 응답이라는 체험일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현실에서 차곡차곡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의 응답을 가지고 신앙의 싸움을 하는 모습들을 교회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같이 기도를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응답을 받고, 어떤 사람은 안 되었다면 응답 받지 못한 사람은 이미 응답 받은 사람보다 신앙이 낮은 것으로 치부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 응답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 되었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마저도 몸의 가시를 인해 세 번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바울 사도의 원함대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체험을 했든 기도 응답이 있든 없든 그 모든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기적만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몇 개만 기록하신 것은 기적의 의미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임을 믿는다면 별도의 기적이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믿음이 있기에 기적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체험이 없이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성령이 도우셨기 때문이고, 하늘의 믿음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우리가 보지 못하고 믿는 자에 해당되는 것이고 결국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있는 그것이 복을 받은 것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봐야 믿겠다는 것은 믿음을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도마의 믿음이었습니다. 나에게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어야 믿겠다는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세상에 하나님은 하늘의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믿음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누리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신자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어떤 체험을 이야기한다 해도 거기에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되고 그것을 부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체험이 필요 없는 자리에 와 있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이미 복 있는 신자입니다. 이 복을 상실한 자로 산다면 그는 참으로 불신자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체험이나 엿보는 자로 말입니다.

 

3. 거룩한 믿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의 세계는 세상의 믿음과는 구별된 거룩한 믿음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는 히브리서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11:1-7)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노아는 그 당시 사람들이 볼 때에 미친 사람입니다. 도대체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데 자기 혼자 산에서 방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나 노아는 이미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심판의 경고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의 심판당할 것을 믿습니까? 세상이 심판 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 받을 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거대한 혹성이 지구로 향하여 돌진하여 온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과학자들의 말이 아닌 주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어야만 합니다. 믿음이란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믿음같이 세상에 없는 믿음입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경고를 받았다면 노아처럼 방주를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자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히11:23-28) 모세는 바로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버리고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상주시는 분을 바라본 것입니다. 바로 영생의 상인 것입니다. 이것이 귀한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다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뿐입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 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11:33-40) 이러한 믿음의 세계에 우리는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능력과 그 세계에 부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이기에 세상의 자잘한 것들에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허락하신 믿음으로 믿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가진 믿음은 우리가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믿음은 그런 것이지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된 은혜의 믿음이며,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고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 또한 그 길을 가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지키고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동하지 않는 믿음, 보이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가 허락 받은 믿음임을 알아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믿음으로 세워져 가시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말씀(성경)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체험하고 믿는 도마와 같은 믿음에 대한 인간적인 생각과 성경의 견해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이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도마의 믿음과 복 된 믿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히브리서서 11장에서 말씀하는 거룩한 믿음에 대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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