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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시 찾아 오사 말씀하시는 예수님

본문 / 요21: 1-14

하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는 하나님이 신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으로 판단해 버릴 뿐,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그 답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여기기에 답을 알기 위해 성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음을 기억하시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1. 베드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인간들이 죄인 되었다는 것을 먼저 에덴으로 돌아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제일 나중에 인간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꼭 한가지만은 금하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한가지의 금지명령은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 된 위치를 알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결국 자기 욕심에 끌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따 먹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녕 죽었고 또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죽음이고, 그 다음에 호흡도 끊어지게 되어 영육 간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죄 지은 아담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찾아오시지 않으셔도 할 말이 없는 인간입니다. 그저 두려움과 부끄러움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만 기다리며,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물론 범죄에 대하여 그 책임을 물으시고 죄에 따른 형벌도 내리십니다. 그러나 놀라운 약속은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 약속은 사단의 권세를 깨어버리시고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해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 한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게 찾아 오셔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찾아오심이 구약에 많이 나옵니다. 정말 부지런히 종들을 보내셨건만 그러나 인간들은 부지런히 하나님을 반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얼마나 더 맞으려고 그러느냐 그러니 이제 그만 매 맞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를 맞는 이유는 돌아오라는 매였습니다. 그러나 맞을수록 돌아오기는커녕 오히려 멀리 멀리 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찾아오셔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남은 자’입니다. 이사야 10장입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 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사10:20-23) 야곱의 족속이 바닷가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올 것입니다. 이렇게 남은 자를 주께로 돌이키기 위해 드디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자 참람되다 하여 죽이려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 이 땅을 방문하신 것입니다. 인간세상에서 이보다 더 놀라운 소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주인을, 죄인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어떻게 대접하였는지 베드로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유대인들은 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러한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 자신을 부르시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능력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들을 고쳤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죽으셔야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죽으신다는 말씀에 베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리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사단아 물러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베드로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이고, 사람의 생각은 곧 사단의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이란 메시아가 와서 죽지 않고 다만 자신에게 힘만 보태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적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이루어질 나라 같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오시지 않으시고 자기의 종들만 보내어 말씀만 하셔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식으로는 될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 오셔서 대신 희생하심을 통해 자기의 남은 백성들을 찾아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다짐에 맹세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던 베드로가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미 배신할 줄을 알고 계셨기에 ‘닭 울기 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그 일을 통해 정신이 번쩍 들어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의 불같은 맹세도 결국 주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돌아선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2. 찾아오심

예수님의 제자들은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는지라”(요21:3) 고 말씀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서도 나는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하면서 고기 잡으러 간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본문 14절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 찾아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야 하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혹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확인시키기 위한 차원이라면 한번으로 족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이미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제자들에게 거듭 나타나시는 것은 부활에 대한 확인을 떠나 뭔가 다른 의도가 있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시고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서 그물을 들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함께 끌어 올려보니 153마리나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자 베드로는 생각나는 게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처음 부름 받았을 때의 장면입니다. 누가복음 5장입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5:1-11) 그때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고기 잡힌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고는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제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시자 그 고기와 그물과 배와 집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 다시 확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은 고기를 잡으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찾아오심은 원래의 목적을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3. 본분

베드로는 철저하게 자기 열심에 있어서 한번 실패를 맛 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주를 따르겠다고 장담을 했지만 베드로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자기 열심도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의 일에 있어서 스스로 열심을 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열심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깨달은 자가 바로 베드로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일에 대해 인간의 열심이 쓸모가 없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혼란입니다. ‘그럼 뭘 하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자기 열심에 실패한 사람으로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자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인지 혼란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에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말합니다. 어부는 베드로의 직업이었습니다. 즉 고기 잡는 일에는 기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 등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은 것입니다. 결국 이제는 고기를 잡는 일에 조차 자기 열심과 재주가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까지 자기 재주가 힘을 발휘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문제에서 자기 열심에 실패한 사람이 이제는 생계 문제에서까지 자기 열심에 실패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결국 생계까지 예수님이 책임지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먹고 사는 문제에서까지 인간의 열심이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재주나 기술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먹고 살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열심을 철저히 포기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곧 신자의 신자다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를 세상에 보내서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시지만 믿게 하는 것은 제자들의 능력이나 열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건지시고 믿게 하심으로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냄 받은 자는 ‘아무리 전해도 안 믿는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냄 받은 자는 전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지 믿게 하는 책임까지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요한복음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지만 예수님이 어부인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대개는 예수님이 능력을 줘서 많은 사람을 믿게 하는 자로 부르신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본문을 배경으로 생각한다면 베드로에게는 믿게 하고 건지는 능력이 없습니다. 어부는 어부인데 자신의 재주로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어부입니다. 어부로서 베드로가 할 일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지는 것뿐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힘으로 사람을 낚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는 전도 자체를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전도인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 재주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했다 해도 그것은 주님이 하게 하신 것임을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다만 보냄 받은 그 자리에서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라 했으면 사랑하는 자로 살면 되고, 용서하라 했으면 용서하는 자로 살아가면 됩니다. 신자는 예수 믿기 전에는 내 힘으로 살았고, 내 생계를 위해 내 재주를 발휘했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내 힘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내 생계를 위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도구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신자의 모습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의 신자 됨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사는 것에 있습니다. 내 힘을 의지하고 내 열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소망하면서 주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신자다운 모습니다. 이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름 같이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산다고 해도 우리 힘으로 사람을 낚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께 부름 받은 자들은 영육간에 주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 존재와 신분의 위치입니다. 이 위치와 신분을 잊거나 놓치지 말고 매일의 삶 가운데서 주님의 부르심 그 부르심을 상을 좇아 살아가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명령을 두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3. 베드로의 맹세와 베드로의 부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4. 예수님이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셔서 확인시키려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의 말씀으로 153마리의 고기를 잡은 베드로가 그 일을 통해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이 신자인 우리에게 주신 신자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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