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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의 날에 견고하게 하시리라 

본문 /  고전 1: 4- 9


오늘 본문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제일 큰 문제가 있다면 그가 받은 것을 모르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며 하라고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시는 것에 우리의 목표와 소원이 있기 때문에 신자의 생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고린도교회는 성경에서 서신서를 보낸 교회들 중 가장 신앙적인 문제가 많았던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에 풍족한 선물을 받고 있다’(5절)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이 구비된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내세의 영광된 복뿐만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함께 일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약속이요 우리의 특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런 감사와 감격 보다는 언제나 궁핍함과 좌절과 불만을 더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왜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 더 많지 ‘하나님이 이것을 주셨고, 나를 이렇게 인도 하시는구나’ 하는 것들은 상당히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목표로 세운 것과 성경이 우리에게 목표로 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신자는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고’‘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자’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은 언제나 5절에 있는 바와 같이 ‘그의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결국 신앙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아니면 밖에 있느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을 수 있는 실천적인 차원에서의 신자의 실패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시는데 불신자의 문이 아닌 신자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갈3:22)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았기에 주님께서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내치리라”고 심각하게 경고했던 교회입니다. 그래서 결국 신앙이란 성경이 목표하는 것과 우리가 목표하는 것의 충돌로 말미암아 실패가 생긴다는 아주 간단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결국 신앙은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를 예수 믿게 하여 무엇을 만들려고 하시는가 하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와 불만과 불평을 나열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입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골2:1-2) 신앙의 가장 큰 핵심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찾지 못하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특별한 간섭을 요구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열매가 없고 기쁨이 없고 승리가 없는 언제나 갈급하고 실패로 점철되는 인생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4-7)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들, 능력과 지혜와 은사와 복들은 너무 풍성하고 넘치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거리밖에 없는 것이 우리, 즉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우리인 것입니다.


2. 그러나 우리는

그런데도 우리는 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갈급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사도 바울은 여기서 세상과 나는 십자가로 서로 단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가치관과 인생관 그리고 인생의 목표 이런 것이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인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우리의 신앙과 소원과 만족과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소원은 세상에서 인정받거나 대접받지 못합니다. 마치 오락실에 가면 게임 잘하는 사람이 최고인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락실에선 공부만 잘 하는 사람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오락실에서 인정받지 못한 공부 잘하는 자가 부모님께 “나를 왜 이렇게 키웠습니까?” 하며 원망하진 않는 것입니다. 나중에 공부가 인정받는 때가 되면 오락만 하며 살았던 것을 후회하기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공부가 더 소중하고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게임에 유혹받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이 바로 여기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예수 믿고 그 이름 안에서 행동을 하려니까, 공부 잘해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학생이 오락실 가서 바보 된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화를 내며 “제가 열심히 기도 할테니까 오락도 잘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락을 잘하려면 기도를 잘해야 되는 게 아니라 공부를 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야 될 것을 놓고 세상의 시험에 져서 “내가 이것도 못하는 줄 아냐”고 하며 팔 걷어붙이고 늦게 배운 도둑질을 하고 있는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다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세상이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해 놀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가는 신앙의 길은 지금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길입니다. 우리 신앙의 가치를 바르게 인정해 주거나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멋있어 보이는 것이 나이가 들어 보면 전혀 생각이 다른 것입니다. 어릴 적에 남학생들은 모자 삐딱하게 쓰고, 여학생들은 치마를 짧게 입으려고 허리 있는 데를 몇 번씩 접어서 치마를 올려 입었던 것이 멋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은 순종하지 않는 것이 무슨 용기고 주관이 있는 것이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땐 괜히 그렇게 행동하는 게 무슨 큰 용기나 있고 자랑인 것 같았는데 지금 보면 아닌 것입니다. 부모님의 역할은 우리를 학교 보내고 도시락 싸주고 교복 입혀준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학원도 보내 주고 필요하다면 가정교사라도 붙여 주는 게 부모입니다. 그렇게 어리석은 시절을 살던 우리에게 부모님들이 안 해 준 게 없는 것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는 일은 게을리 하면서, 할 줄 모르는 것만 한탄하는 그래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그 가운데 서서 바보처럼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 신앙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3. 신의 성품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성경의 말씀 가운데서 세상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쳐야 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판단을 할 때는 언제나 우리의 상식에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고가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3장입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 너희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전3:18-23)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도전을 받을 때 우리 스스로 지혜롭다 여겨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따라 대응합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닌 것을 마치 진리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원래 우리한테 습관이 되었던 세상 유혹이 우리한테는 발언권이 된 셈인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로서 살아야 하는 거룩한 일에 우리를 충성시키기 싫어해서 언제나 우리의 상식과 발 등에 떨어진 화급한 일이라는 핑계로 신자의 길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무기와 풍성한 복들을 빼앗기고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입니다. 오늘 이 설교 내용을 근거로 해서 이 내용을 잘 보십시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1:3)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밤낮 가난한 것은, 생명과 경건에 관한 것은 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목표로 삶지 않으니까 신자의 실제 생활이 가난하고 실패와 좌절 가운데 눈물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일을 하지 않고 세상을 쫓아가니까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사망의 길에서 놀고 있도록 놓아두실 수가 없기 때문에 실패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실패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루시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라고 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지 않으신 것이 없고 그 길을 방해할 것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닌, 정욕을 따라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구하면 우리 앞에는 난관과 좌절과 형벌과 재난뿐입니다. 하나님이 놓아두지 않고 세상도 우리를 놓아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일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고, 세상은 우리가 자기편이 아니기에 우리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이 싸움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요함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기도하면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허락하셨으며,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지를 차곡차곡 쓴 교과서인 성경이 있으며, 급하면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기도를 하면 즉시 지금이라도 천군천사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뜻에 합한 일과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소원한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안 하니까 우리의 인생에 간증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라고 되어 있나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이 싸움을 하셔야 됩니다. 믿음을 주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이 심판이 아닌 남에게 유익을 주도록 덕을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덕을 쌓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분별할 수 있는 더 깊은 경지에 갈 수 있는 지식을 주십시오. 지식이 바른 균형을 갖고 온전한 인격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절제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고 인내하게 해 달라고 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인내가 그냥 참는 인내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거룩이 증거 되고 남과 함께 그 목적지에 가는 형제 우애를 주십시오. 이것을 정해 놓고 싸우셔야 됩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우리가 늘 구하는 내 사업 잘 되고, 돈 잘 벌고, 다른 사람보다 좋은 집에 사는 것 같은 것은 여기 목록에는 끼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자의 신앙에 승리와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를 구원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의 아들을 주신 이가 그의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이 성경이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8장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롬8:31-32)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여기에 대해 우리는 경험이 없기에 확신이 안서고 자신과 기대가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쪽에 대해 우리의 소원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일에 하나님이 풍성히 주셨다고 약속한 것이 우리의 소원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에게 병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돈과 명예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금 더 거룩하고 영원하고 유일한 복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런 거룩과 생명에 이르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기초하고 그 안에서 세움을 입고 뿌리를 박는 것으로 쌓아가지 않는 한 신자의 인생같이 한심한 것은 없습니다. 학교를 가되 공부를 안 하는 학생입니다.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고 학교는 가는데 공부는 못하는 것입니다. 지각도 안 하고 어디 나가 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불량배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학교에는 도시락만 먹으러 오는 학생이 꼭 있습니다. 나가서 무슨 사고를 칠 만큼 거칠지도 않고 그렇다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할 만큼 사람이 똑똑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이 하신 말씀 “네가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내치리라” 하시는 것과 같은 신앙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신자의 생애는 원래 승리와 자랑으로 연속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록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지만 그 순간에 얼굴이 천사같이 빛났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실패가 아니며 좌절이 아닙니다. 스데반에게 있어서는 기쁜 자리였고 보람된 자리였고 하나님 앞에 쓰인 참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인생이 우리에게 실제로 허락되고 있습니다. 이 인생을 놓치지 마시고 우리 스스로의 인생의 원리와 인생관과 목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하시고 승리하시는 예원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께 다 받았음에도 우리에게 감사보다 불평과 불만이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우리의 신앙에 ‘그리스도 안에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십자가로 세상과 우리가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우리의 신앙이 이 땅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간섭하심에도 우리로 실패케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이 목표로 하신 우리가 싸워야 할 신앙의 싸움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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