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2,998
오늘 : 214
어제 : 313

페이지뷰

전체 : 78,750,955
오늘 : 853
어제 : 1,570
조회 수 148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본문 / 고전 1:26-31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보통은 주일이라고 하는 일요일에 교회로 모이는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바로 오늘 모인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과연 주일에 교회에 모인 여러분은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답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가장 쉬운 질문이면서도 애매한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그 질문에 바른 답을 적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잘못된 목표

우리가 흔히 사람들보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자기들은 믿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들 합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 생각에는 적어도 예수를 믿으려면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조금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 착해야 되고, 입고나갈 변변한 옷이라도 한 벌 있어야 하고, 교회가면 헌금한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교회 나오는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를 착하게 살려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 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격려하기는커녕 착하게 살려고 하는 힘마저 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이런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착하게 살자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그럼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하면 자기가 못난 사람임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는 못난 사람이지만 신앙 생활한 시간이 많아질수록 점점 멋있고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주님을 믿어야 할 만큼 못난 사람임을 아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못난 자들이라고 말씀하느냐 하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셔야 할 만큼 못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대속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대속이란 십자가에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란 표적도 지혜도 아닌 것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실패요 연약이요 천대받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얻은 자들에게는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의 능력만으로 구원하시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2. 십자가

오늘 본문에 보면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9)고 하십니다. 인간은 자기 자랑하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자기에게 자랑거리가 없으면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들여서라도 자기는 괜찮은 사람으로 과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과시하기 위해서는 남을 깎아내리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자랑은 결국은 신의 자리에 까지 가야지만 만족을 하는 자리입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담이 받았던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의 어느 인간도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도 사람들은 자기 자랑거리 찾기에 바쁜 것입니다. 어느 방송국 프로그램에 보면 자기 교회를 자랑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교회의 자랑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미련한 것들, 약한 것들, 천하 것들 ,멸시 받는 것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런 못난 자들만 가득한 곳인데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인하여 만족하며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하는 교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하려는 것과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1:26-28) 바울의 말처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세상에서는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회는 신분사회였습니다. 그런데 문벌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결국은 세상에서 볼 때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자기 잘났다는 자랑들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파당이 생긴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그런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하면서 그들의 입을 막아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세상의 자랑거리를 내세우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세상에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세상의 자랑거리라는 것을 전부 폐하여 버리시는 것이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랑거리를 폐하여 버리신다는 것이 이미 구약에서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3. 믿는다는 것

사무엘상에 보면 두 아내를 둔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라는 여인과 자식을 낳은 브닌나라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브린나가 한나를 대적하였습니다. 아이 낳은 것으로 유세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게 되고 그리고 그때 기도한 서원대로 성전에 바치고 나서 하는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입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삼상2:3-10) 세상의 자랑거리가 있다고 교만하고 오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만이란 여호와를 대적하는 것이기에 그런 자를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는데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세우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아의 뿔을 높이실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한나의 노래와 같은 내용이 바로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가 노래한 내용이 누가복음 1장에서 나와 있습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눅1:51-53) 한나와 마리아의 노래의 공통점은 교만한 자들을 치신다는 것이며, 권세 있는 자를 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광이나 힘이란 것이 얼마나 인간을 교만케 하는 것인데 아직도 너희가 서로 잘났다고 자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자들을 부르신 것은 어느 누구도 자기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9:23-24) 지혜와 용맹과 부함이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11장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세상의 슬기와 지혜를 다 폐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만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 입니까? 약하고 미련하고 천하고 거리끼는 십자가인지 아니면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의 힘과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는 십자가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십자가는 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핍박 받던 기독교가 군림하는 기독교로 바뀌면서 십자가는 힘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인정하면서 기독교가 권세를 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한 기독교에서 교회의 능력은 세속의 권세나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종교 개혁을 하였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또 다시 세상의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힘이 되는 것은 다 끌어 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수가 힘이 되면 수를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수로만 되지 않기에 세상에서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힘은 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보다 힘이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도 돈 많으면 힘 있는 교회, 돈 없으면 힘없는 교회로 다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때에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2장입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얍2:1-7) 고린도전서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결국 한 성령 안에서 기록된 내용이기에 그런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예수 믿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영광이나 힘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자신이 못난 자 인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은혜로 되는 것이지 나는 예수님으로 만족해야지 한다고 해서 될 일도 또한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서는 이 말씀이 용납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30-31)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면 이것이 믿어지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만족은 세상의 물질과 권력과 명예가 아닙니다. 여기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믿는 우리들에게는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가 됩니다. 우리는 의롭지 않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됩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않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거룩함이 됩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과 선행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 교회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만 합니다. 그분이 지신 십자가여야만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자랑과 우리의 만족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시각으로는 못나고, 부와 명예와 권세가 없어도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만을 자랑하며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안에 아름답게 세워진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주님의 은혜가 예원의 모든 가족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와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이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구원하시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우리의 자랑거리와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은 차이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5.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5 3월 11일 1부 /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관리자 2012.03.11 1504
614 4월 24일 /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 관리자 2011.04.23 1498
613 3월 20일 2부 / 심고 물은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관리자 2011.03.19 1497
612 1월 15일 2부 /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연보 관리자 2012.01.20 1495
611 7월 22일 2부 / 주의 영광을 위한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 2 관리자 2012.07.22 1490
» 2월 27일 /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관리자 2011.02.25 1488
609 2월 24일 1부 / 하나님의 비밀 안에 있는 모든 보화 12 관리자 2013.04.10 1488
608 6월 13일 1부 / 목표를 위해 일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0.06.12 1484
607 7월 8일 2부 /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라 3 관리자 2012.07.08 1483
606 6월 27일 1부 / 영광에서 영광으로 가는 길목에서 관리자 2010.06.26 1481
605 1월 22일 1부 / 주의 사랑이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관리자 2012.01.20 1481
604 12월 30일 주일 1부 / 사랑하는 자들아 사도들이 한 말을 기억하라 13 관리자 2013.01.21 1473
603 2011년 1월 2일 2부 / 다시 찾아 오사 말씀하시는 예수님 관리자 2010.12.31 1472
602 12월 9일 2부 /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다시 듣기 1 관리자 2012.12.16 1472
601 10월 31일 / 하나님의 뜻대로 다 이루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29 1470
600 1월 29일 / 주 안에서의 환난과 위로 관리자 2012.01.29 1470
599 4월 17일 2부 / 말씀 안에서 우리가 삼아야할 참 본 관리자 2011.04.15 1469
598 1월 8일 2부 /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10 관리자 2012.01.07 1468
597 11월 28일 1부 / 부활 신앙을 가진 자의 삶 관리자 2010.11.27 1465
596 12월 19일 2부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관리자 2010.12.18 146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