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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본문 /  고전 2: 1- 5


1. 충돌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하면 하늘의 세계를 이 땅에 펼쳐내시는 예수님의 활약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세계를 다른 말로 표현해서 묵시라고 한다면, 이 땅의 흐름을 역사라고 합니다. 묵시는 그 기원이 이 땅의 현실과 다르기에 언제나 이 땅의 현실과는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런 묵시와 역사의 충돌로 일어난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끊임없이 자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그 사람이 교회를 나오든지 아니 나오든지 간에 자기를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러 오시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현실 속에서는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살리고자 하는 것인데 과연 누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하고서 따라 나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 나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자기 부인의 대가로 무엇인가를 바라고 나온 것입니다. 자기가 부인하고 고난을 받은 것만큼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원하시는 자기 부인이 아니라 자기를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직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성경은 아담의 후손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담의 후손들이 모인 곳을 아무리 교회라고 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자기를 살리는 방향만이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자신이 잘 살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좋은 곳에 가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상급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 역시 자기 부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죽고 나서도 자기를 챙기고자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욕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욕망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오늘날 우리 인간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우리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현실세계를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것입니다.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고자 몸부림치는 내용들이 이 안에 다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내 몸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하고 그러면 눈의 욕구도 충족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서는 자랑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악과 따 먹을 때 유혹의 내용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두가 첫 사람 아담의 욕망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십자가

오늘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기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보는 영상매체나 신문에 등장하는 광고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광고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없는 욕망까지도 만들어 내어서 팔려고 하는 것이 광고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먹고 마시는 광고를 보면 그것만 먹고 마시면 불로장생할 것처럼 선전하기도 하고, 아파트를 선전하는 것을 보면 그 아파트를 구입해서 거기에 살기만 하면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무엇이 기쁜 소식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기쁜 소식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십자가를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 십자가가 기쁜 소식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입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118:22-23)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며, 이 일은 주께로부터 된 일이기에 기이하게 여김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건축자들입니다.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행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이것저것 필요하다는 것은 다 주워 모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것도 그 아이가 장래에 필요하니까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부모는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성공이나 행복을 위하여 선택하면서 살아가는데 예수의 십자가도 무언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믿고자 나선 것인데, 알고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거침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내버린 것입니다. 바로 그 버려진 돌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성취를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을 가지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편의 말씀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의 저자들이 다 인용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그 앞에는 동일한 비유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입니다.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마21:33-39) 한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서 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종들을 세를 받게 하려고 보냈더니 세를 주기는커녕 때리고 죽이고 쫓아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 다시 보내도 그렇게 하자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며 아들은 공경할 줄 알았는데 아들마저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21:42)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자 이 말씀을 들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을 보고 말하는 줄을 알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란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율법이 있고, 성전이 있고, 제사장들이 있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있는 그곳에서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세계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왜 사람들이 싫어하고 꺼리는 이 십자가만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어떤 인간도 스스로 십자가가 좋아서 나는 십자가를 사랑해야지 하면서 나오는 사람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이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싫다고 도망 가버리는 십자가를 증거 하는데도 그래도 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사람이 나온다면 이것은 결코 그 사람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바울의 복음

다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1-2)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였을 때에 심히 두렵고 떨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다른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면 고린도 지역에 와서는 좀 더 세련되게 전도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우선 좋은 이야기를 하고서 그 다음에 십자가를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라고 그러면 교회로 오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좋은 이야기 하고 나중에 신앙이 좀 더 자라서 그 십자가의 내용을 받을 만하면 그때 가서 양육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리라고 작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미련해보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전도를 하려면 융통성이 있어야지 이렇게 꽉 막혀가지고 무슨 이야기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그것을 전하다가 매 맞고 쫓겨나고 고생을 하는데도 그것만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2:3)고 말씀합니다. 바울사도는 십자가를 전하는데 있어서 두렵고 떨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한 내용이 사도행전 18장에 있습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18:1-10) 고린도에서 처음에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적하고 훼방하니 바울이 옷을 떨어버리고 이방인에게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 복음을 전하는데 수다한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바울사도에게 두려워말고 잠잠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소식을 전하는데 훼방과 대적들이 나타나지만 그러나 믿는 자들 또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무엇으로 구원하시는가 하면 십자가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며 십자가만을 증거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님 편에서 졌고, 믿고 따르고 천국까지 가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자체의 능력이 자기백성을 끌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가가 왜곡되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바울이 두렵고 떨리는 것은 대적 자들의 훼방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십자가가 제대로 증거 되지 아니할까봐서 심히 두렵고 떨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도를 하면서 조심 한 것이 사람의 지혜로 권하여 설득시키고 세뇌시키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의 지혜만 서게 되는 것이기에 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전도할 때 능력을 구합니다. 말을 잘해서 상대방을 꼼짝없이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우리의 말솜씨로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할 말이 없으면 예수쟁이들 말은 잘한다고 하지 그 말에 설득당하여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너희 부르심을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혜 있는 자나 능한 자나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능력으로 예수 믿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무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예수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 하고자 한 것은 구원의 능력이 어떤 인간의 능력이 아님을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전하는 자의 실력도 아니고 받는 자의 실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결코 사람을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랑거리가 나온다는 것이 잘못되었기에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에게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나는 무언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다는 자랑이 있습니까? 우리가 바울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복음을 제대로 아는 자라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꺼리고 어리석게 여기지만 우리에겐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 믿음과 시각이 우리 가운데 주의 은혜로 충만하여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존귀한 자로 더욱 더 세워져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에서 말씀하는 ‘아담의 후손’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십자가 사건이 예루살렘에 일어난 의미와 바울이 그 십자가만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반대와 핍박을 당해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바울의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의 지혜의 말로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바울 복음을 전할 때 심히 두렵고 떨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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