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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말씀 안에서 우리가 삼아야할 참 본

본문 / 고전 4: 6-13

 

1. 성도의 정체성

지난주에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까지 판단 받지 않겠다고 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4:6)고 하여 자신과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을 보인 이유는,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고 한 내용은,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린도 교회성도들이 서로 대적하여 파당이 생기고, 교만하게 된 것은 기록한 말씀을 벗어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적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은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무언가 더 잘난 것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는 것은 이미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대적하고 교만하게 되면 기록한 말씀을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까? 7절에 보면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고 합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받았기에 자기가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놓고서 자기가 무슨 특별한 행위를 한 것처럼 자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의 정체성이 나옵니다. 성도란 모든 것을 받아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만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이 과연 은혜로 된 것이냐를 물어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당에 나오기면 하면 일단 예수 믿는 자로 간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지 자신을 확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3장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주인으로 계십니까? 아니면 종으로 계십니까?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보여 주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그렇습니다. 성도란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닌 줄로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피로 값을 주고 사셨기에 주님의 것이 된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모든 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무슨 은사를 받았든지, 큰일을 행하게 되든지 간에 전혀 자기를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서 한 것이기에 대적하여 교만하여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자기 자랑거리가 나왔다면 그것은 이미 기록한 말씀을 벗어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믿는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할 성도들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2. 복음에 대한 착각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에게 은사들이 나오는 것을 가지고 자기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의 밑바탕에는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니 무언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들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고린도 교인들이 생각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고전4:8-10)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배부르며, 왕 노릇하며,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아마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부요하고, 왕처럼 살고,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된다고 이야기하며 전도하기가 쉽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항상 가득한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서 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정치계도, 법조계도, 학자도, 의사도 많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는다는 우리도 이런 말씀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본을 삼을만한 사람을 성경에서 찾으라면 대부분 어떤 사람을 찾습니까? 또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성경 인물 중 어떤 인물을 본받으라고 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성경에서 우리가 보기에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위대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할 때에 신학생들이 본을 삼는 교회와 목사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시골이나 도시의 개척교회를 하면서 교인 몇 사람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복음이 좋아서 복음을 증거 하며 살아가는 그런 분들을 본을 삼았겠습니까?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은 흔히들 말하는 대형교회 목사님들일 것이며, 방송이나 책을 통해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그런 목회자들일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목회 성공이라 여기며 말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가족 중에도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비전을 크게 가지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전의 크기라는 것도 대부분이 교회와 사역의 크기를 말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사도인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하셨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9-13) 하나님은 바울과 같은 사도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곧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로마 시대에 노예 검투사들의 피를 흘리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관중들은 그 모습을 환호하고 즐기며 구경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당하는 고통과 죽음을 마치 이런 구경거리가 되듯이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미련하고, 약하고, 비천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며, 친히 손으로 일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도의 길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자를 우리 자녀들에게 본을 삼으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고, 믿음이 좋아지시기를 바란다고 하면 우리는 과연 아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마도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성경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모습이 이러하였습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우리가 주로 믿는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종이 주인이 받은 대접을 넘어설 수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인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받은 대접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죄 없으신 그분이 이 땅에서 당하신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영광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그 복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세상에서 힘과 능력과 세상의 영광을 주는 복음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면서도, 세상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보암직한 것들이 교회에 많아야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찾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마귀의 요구들을 다 물리치시고 십자가로 멸시와 천대와 사람들의 조롱거리인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자랑하려고 합니까? 고린도 교회나 오늘 우리의 현실이나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보암직한 것들을 교회에서 제공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시키는 대로 하면 구원도 받고, 세상의 복도 받는 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거짓말을 사람들이 좋아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곳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고,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서 더러운 것과 찌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우리를 향해 욕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하십니까? 나를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망하라고 저주 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이며, 거기다가 한 가지 더 나는 복음을 안다는 교만까지 보태고 있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자랑

이처럼 세상의 지혜로는 십자가의 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알려주시기 위해 감추어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비유를 작은 겨자씨, 가루 속에 섞인 누룩, 밭에 감춰진 보화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라고 찾아 나설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찾아도 찾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세상의 구경거리와 만물의 찌끼 같은 대접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안에 복음을 감추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사도와 비교하면 우리는 황금마차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해 받는 핍박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면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 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그러한 것을 감당할 만한 믿음이 되지 못하기에 우리가 감당할 정도만 허락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런 수고와 헌신이 있기에 자랑할 것이 많고 상을 많이 받겠습니까? 디모데전서 1장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1:12-17) 바울사도가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이 무언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주의 긍휼을 입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이 받은 그러한 은혜가 내게 닥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 은혜라면 주지 마시라고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그렇게 수고하고 고생한 것은 자기의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것이 있어야 예수님을 증거 하기 쉽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나 같은 죄인도 용서 하셨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자신을 선택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세상의 왕 노릇하고 지혜롭고 존귀한 대접을 받으려고 하였으니 얼마나 거꾸로 가는가 하는 것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얼마나 성경의 말씀과 거꾸로 가는가를 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귀의 유혹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네가 예수를 믿으니, 세상에서 영광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고 유혹한 그 유혹을 이기는 길은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인데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으로 나를 살리셨다’는 고백뿐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남들보다 더 멋지고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주님으로 살면 내 이웃들에게는 그렇게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자신은 그것이 자랑이 아닌 바울과 같은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더욱 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세상이 인정하는 것으로 우리 자신이 치장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의 은혜가 더욱 더 값진 것임을 알아가고, 주님만 바라보는 주바라기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 밖으로 넘어가 잘못된 본을 삼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말씀 안에서 우리가 삼아야 할 참 본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예원의 모든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진 것을 말씀 밖으로 넘어갔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가지고 자기가 잘나 받은 것처럼 착각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원하는 복음과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4.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 비유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마귀의 유혹은 무엇이며, 그 유혹을 이기는 길은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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