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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영광 우리의 영광            

본문 /  요17: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17:1)


요한복음 17장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예수님의 기도들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자들을 향하여 가지고 계신 가장 영광스러운 계획들과 이루시고자 하는 뜻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영광”이라고 말하면 세상에서 성공하여 잘 되어진 상태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영광”이란 전혀 다른 뜻입니다. 여기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요구하신 영광은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구하는 영광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영광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받을 영광도 무엇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하는 것을 먼저 살펴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 신자 된 우리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광

본문에서 “때가 이르렀사오니”라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지칭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십자가 사건이 예수님께도 영광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도 영광이 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전능하심, 풍성하심, 생명 되심, 거룩하심, 사랑하심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설명하는 대부분은 구속사역과 연결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이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이 3번 나옵니다. 그런데 다 그것이 인간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 여기까지가 우리를 향한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이렇게 구원하시는 이유가 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가장 최고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7-12) 하심으로 ‘전부터 바라던 우리’라고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놀랍게 나타나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세전의 하나님의 기뻐하신 계획이며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리시며 참으시며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우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큰 빛을 발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13-14)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가장 큰 일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부터 바라던 바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신 것을 이루는 것’이 구속 사역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신에게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요구하십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구속사역을 이루는 것인데 그것이 예수님 자신에게도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의 보람과 의미와 영광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를 예수님의 모범 가운데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영광이 되는 일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신자의 영광

그런데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아버지 영광으로 쓰임 받는 일이 무엇인가가 나타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7-39) 여기서 말하는 영광도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말합니다. 이 일이 아직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님이 안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성령님이 오셔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고 있어서 예수님 단독으로 구원하시는 것같이 보입니다만 물론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도 있으시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이 말씀하심 같이 예수님의 사역의 배경과 기초에는 이런 내용들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입니다.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8:16) 또한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8:42)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의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과 그 뜻을 따라서 일하신다는 것을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7장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37-38절)라고 하여 ‘나를 믿으면’ 또는 ‘내게 오라’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목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지를 갈 수 있는 선상에 서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으신 것입니다. 바울도 이와 같은 내용의 묘사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그 예수님을 본받은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는 안내장이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나타내신 그 일로 인하여 사람들 앞에서 영광을 받거나 박수를 받으신 적이 없으시지만,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시는 일로써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일이었기에 영광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변의 환호를 받거나 박수 받는 일에 대하여 그것이 좋아 쉽게 욕심을 냅니다. 그러나 한 번의 환호와 박수를 받기 위하여 몇 배의 노력과 인내를 감수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의 영광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바르게 알려면 신자의 영광에 대한 올바른 이해부터 해야 합니다. 신자의 영광을 쉽게 박수부터 받는 일이라고 생각하다가는 평생 아무것도 못하고 맙니다. 국전에 가서 보면 미술가가 되고 싶고, 음악회에 가면 음악가가 되고 싶고, 운동선수를 보면 운동하고 싶고, 이런 식으로 박수와 환호를 받는 일에 대하여 욕심을 내다간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환호와 갈채에 따라 그 목표를 자꾸 바꾸면 집중할 수도 없고, 집중하지 못하면 훈련도 안 되고 성과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면 영광이란 도달할 수 없는 그림에 불과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그 자신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붙잡지 못하면 그만큼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삶을 살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자 된 우리에게 지금 당신께서 서신 그 자리가 영광이라고 선언하시면서 우리가 바로 그 길을 걸어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28장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을 가르치라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는 이런 권위가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 신자들의 영광인 것입니다. 모든 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요, 동시에 우리의 영광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0-24) 여기서 예수 믿고 제일 큰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빨리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천국 가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빨리 천국 가는 것이 나 하나 만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지만 내가 살아서 신자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이는 것이요, 동시에 그것이 내게도 영광이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좋느냐 죽는 것이 좋으냐하는 질문 앞에서 사람이 계산적이고 물질적인 관계에서 사는 것보다, 내가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이며 그 일에 더 많이 쓰임 받는다면 그것이 더 좋은 일이며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보면 경제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혹은 사회적인 명예 문제에 있어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생긴 시련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 하면서 어떻게 해결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가 하는 것에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가지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신자가 생활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원리를 떠나 그 일을 세상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순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순간이라 할지라도 믿는 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생각하고 행하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3. 삶의 고백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사실이 보여 지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것들을 추구하는 삶은 참으로 헛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13절)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기도란 것이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허락되었느냐 하는 점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 허락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느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 가지셨던 원리 또 예수님의 삶의 자세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들을 다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이나 행동에 있어서 결코 하나님을 향한 길에서 어긋나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요구하자, ‘너희가 이렇게 나와 함께 오래 있었는데 아직도 아버지를 못보았느냐’라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친구들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에 내게서 누구를 보게 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0) 그렇습니다. 신자의 영광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내게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 일을 하노라’는 고백이 나와야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그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 고백이 바울만의 고백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 모두가 해야 하고 만들어 내야 하는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또한 우리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신자들이 사탄으로부터 항상 받는 두 가지 유혹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지 못하게 하는 일이요, 둘째는 예수 믿고 난 신자들로 하여금 신자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내 안에 살지 못하게 하여 내가 산 신자들의 미련한 삶의 산 증언들과 고백들이 바로 구약 이야기들입니다. 오늘날도 구약의 광야에서 노상 얻어맞고 이방과 열방에 포로가 되어 괄세 받고 산산 조각이 난 처참한 이스라엘 이야기를 반복하고자 무서운 줄 모르고 덤벼드는 무지한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게 그 영광의 자리를 빼앗기고 후회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으로 살기로 작정하게 되시기를 바라며 또한 그런 삶을 통하여 오직 우리의 몸을 통해 그리스도만 존귀히 드러나게 되는 우리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의 대부분의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구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의 사역의 배경과 기초에는 무엇이 깔려있습니까?

3. 그럼에도 ‘나를 믿으면’ 또는 ‘내게 오라’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세상에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거나 또는 영광을 나타내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가 세상에 살며 만들어 내야 할 신앙 고백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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