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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세상과 이별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

본문 /  고전 4:14-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사도가 자신이 본이 된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본에 비추어 보니 고린도 교인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면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대단한 능력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그러나 바울사도는 자신이 사도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증거 하였습니다. 죽이기로 작정한 자처럼 미말에 처하게 하셔서 천사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미련하고 약하고 비천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하고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권면하니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1. 아비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을 고린도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처럼 권면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여 책망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나 아비는 적다고 하는 것은, 자신은 아비의 심정으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낳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디모데도 바울은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만 스승이란 율법이 몽학선생임을 말할 때에 사용한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선생이 있지만 아비는 적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아비로서 자기의 힘으로 낳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23:8-1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을 높이면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선생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것을 보고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선생이라 아비라 지도자라는 칭함을 받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은 한 분이시고, 아비도 한분이시고, 지도자도 한분이신 것입니다. 땅에서의 선생이나 아비나 지도자는 다 자기의 권세를 행사하는 자들입니다. 땅에서는 군사부일체라 하여 권위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늘나라에서는 큰 자란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아비라고 하는 것은 자기는 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를 빼버리면 자기가 아비가 되고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가 낳은 자들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고 합니다. 디모데도 주 안에서 아들이라고 합니다. 즉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는 자로서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권면을 위해 디모데를 보내면서 하게 하려는 일은, 바울사도가 각처 각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친 것인지를 다시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가르치고 본을 보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가게 되면 그들의 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2. 세상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능력이라고 하면 대부분 방언이나 예언 그리고 신유 같은 것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고린도 교회에는 그러한 능력들은 풍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알아보고자 한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란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능력 그러면 이미 고정된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은사들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능력이라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 세상에서 통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보다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된다다는 것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내용들인 것입니다. 세상은 말 그대로 능력이 대접받는 곳이며 무능하면 도태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상에서 능력을 숭상하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가정에서나 국가에서나 교회에서는 열등한 인간으로 여기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골수에 박힌 능력이란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성취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능력이란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말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성공에 대하여 간증이라는 명목일 빌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좋아하며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야기를 하면 무관심하여 졸다가 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환영하는 능력이란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는 무관합니다. 무관한 정도가 아니라 기피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능력입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만이 아니라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였습니다. 혹시나 자기의 지혜나 자기의 능력으로 전도가 되어 사람의 지혜에 있게 될까봐서 얼마나 조심하였는지 우리는 고린도전서 2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린도 교회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고 바울사도가 얼마나 조심하였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한 바울이 드러내고자 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라는 것이 자명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의 도란 멸망하는 자들이 볼 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보란 듯이 세상의 힘과 세상의 영광을 입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모습, 바울사도와 같은 모습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그런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란 자기를 자랑하거나 업적을 과시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십자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이 났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돌이 날아오다 멈추거나 되돌아가서 던진 사람들에게 맞는 것이 아니라 던지는 대로 맞았습니다. 눈이 터지고 머리가 터져가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스데반 집사 혼자 본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주님을 보면서 돌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예수님의 능력이 성령과 은혜가 충만한 스데반 집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 돌 던지는 현장에 바울이 주도적인 인물로 동참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스데반 집사와 같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향하여 욕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 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인 것입니다.


3. 별세의 능력

그런데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과연 능력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스데반 집사나 바울사도의 이러한 능력이 임하기를 정말 원하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누가 나를 향하여 가난하다고 무시하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그들처럼 그를 위해 기도하기는커녕 두고 보자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능력을 받아 너보다 더 큰 부자가 되고, 성공한 자가 되어서 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능력으로 여기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목회자들도 과연 무엇을 능력으로 보는 것입니까? 엄청난 교인의 수와 웅장한 건물과 많은 돈으로 큰일을 많이 하는 것을 능력 있는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비판하는 자들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 뒤에서 비판이나 하고 있다고만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피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에 나오면서 예수를 부르고 십자가를 말하는 우리가 기피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만이 받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 된다는 것인데 그 구원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은 이 세상에서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서 끄집어내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별세하게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옥한 땅에서 부유한 생활들을 하였습니다. 먹고살만하니 더욱 쾌락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성읍에서 무엇이 능력으로 통하겠습니까? 더욱 많은 돈과 권세, 더 나은 재미를 누리는 것이 능력으로 통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그 성은 유황불로 태워버려야 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라는 것은, 흔히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성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과 권세를 가지고 더 재미있게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탈출하는 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지금 하늘에서 불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가 우리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9장입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창19:15-16)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탈출을 하지 못합니다. 미적 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그들의 손을 잡아서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중보를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끄집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롯의 처는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사위 감도 있고, 그동안 마련한 재산들과 집들이 불에 태워지니 돌아봐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말씀이 농담으로 여겨지십니까? 롯의 사위들도 그 소식을 들었지만 농담으로 여긴 것입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4) 오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 무엇이겠습니까? 온 세상은 불살라지기 위하여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참된 능력이란 이 세상에서 건짐 받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을 쌓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세상이 소돔과 고모라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세상에서 떼어내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별세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묶여서 별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기에 어느 누구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아들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능력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의 본능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발동이 됩니다. 세상에서 인정하는 것들을 가지기를 원하며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혹 우리가 그런 것들을 가졌다 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누리며 만족하며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예원 가족들이 모든 것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벗어나셔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자가 아닌 세상 것으로 살며 스스로 만족하는 자에 머물러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능력이 우리를 다스리셔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만족이 되어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바울이 말하는 일만 스승과 아비는 무엇입니까?

2. 우리가 좋아하는 능력과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어떻게 다릅니까?

3.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면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집니까?

4.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별세케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가?

5.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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