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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묵은 누룩을 버리고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본문 /  고전 5: 1- 8


1. 고린도교회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성령이 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시고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이 임하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16:7-11) 성령이 오셔서 죄에 대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의에 대해서는 이 땅에 유일한 ‘의’이셨던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심으로 더 이상 세상에 ‘의’가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들이 스스로의 의를 쌓아서 의인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은, 더 이상 심판의 기준과 대상도 이 세상의 임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 임금이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심판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된 자들은 자기의 죄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를 지신 것을 또한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성경에서는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고 합니다. 그들이 거룩하게 된 것은 그들의 노력과 애씀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 거룩함을 입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입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 여기에서 너희 중에 이런 자들이 있었다는 말씀은 바로 앞에 있는 말씀에 그 목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 음란한 자,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 하는 자, 탐람하는 자, 술 취하는 자, 후욕하는 자,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바로 고린도 교회에 이런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고린도의 교인들이 어떤 문화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음란과 우상숭배 그리고 간음과 탐색과 남색 등 이 모든 것들이 다 성적인 문제들입니다. 이 교회가 있는 고린도 지역은 항구도시로서 향락이 무척이나 심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헬라문화권에서도 방탕하게 사는 사람들을 ‘고린도사람처럼 산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고린도에는 미의 여신이라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도시 중앙에 우뚝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여 사제들이 천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은 어둠이 내려 밤이 되면 도시로 내려와 종교 의식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 의식은 바로 성을 기리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에는 음악과 노래와 시의 신이라는 아폴론의 신전도 있었는데 그 아폴론의 신전은 아폴론을 숭배하는 남자들이 미동들과 동성애를 하는 중심지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적으로는 최고로 타락하고 문란한 도시였던 것입니다. 이런 곳에 복음이 증거 되고 예수 믿는 자들이 생긴 것입니다. 그 속에 음란하지 아니한 자가 누가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음란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만연한 세상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그 거룩한 능력으로 거룩하다고 하시고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2. 누룩 없는 떡

그런데 그 교회에서 세상 사람들도 행하지 아니하는 음행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전5:1-2)  헬라문화나 로마문화가 다 성에 대하여 관대하고 문란하지만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건드리는 자는 엄격하게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 교회 안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충격적인 범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고린도 교회가 그런 죄를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교만하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은사가 많이 나타나는 신령한 자들이라고 교만하여졌고, 그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만과 자랑이 있는 곳에서는 죄에 대하여 통분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에,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능력이란 신기한 능력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을 알아보겠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란, 자신들의 죄가 십자가로 인하여 사함을 받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죄에 대하여 분통이 터져야 하는데 오히려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 형제가 있는데도 통분히 여기지도 않고, 물리치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서 예수님의 공로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런 죄를 짓고 있는가 하는 바울사도처럼 분노가 일어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말씀을 자기에게 하나도 적용시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그런 죄를 짓지 않았기에 괜찮다면서 화살을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죄란 크고 작은 죄가 없습니다. 큰 죄는 사망에 이르고, 작은 죄는 몽둥이 몇대로 해결된다는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오직 죄의 삯은 사망일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죄의 목록이라고 해서 나는 그런 죄와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이 자기 교만과 자기 자랑이라는 죄에 빠져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나는 그런 죄 짓지 않는데 하면서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설교시간에 수많은 죄가 지적이 되어도 목사 자신이 찔리지 않는다면 그 설교자는 위선자일 뿐입니다. 또한 듣는 자들이 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으니 괜찮다고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한 형제의 죄가 내 자신의 고통으로 와 닿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러한 자를 바로 잡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몸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 몸이라고 하면 우리는 이상하게 여길 것입니다. 내가 죄 지으면 내가 벌 받고, 내가 잘하면 내가 상 받는다는 삶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는데 어떻게 한 몸이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개별자라는 개인주의 사상은 서양철학의 중심임을 아셔야 합니다. 서양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의 흐름도 이런 개인주의 적인 사고가 강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란 개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5:6-8)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 너희의 몸에 누룩이 들어왔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니 너희가 과연 그리스도의 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어느 암에 대한 통계를 보니 오늘 날은 남자 세 명중 한명, 여자 다섯 명 중 한명이 암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내 몸에 암이 생겼다면 우리는 통분히 여기면서 어떻게 하든지 치료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남이 암이 걸렸다면 자기 몸처럼 챙기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 누룩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암과 같은 존재입니다. 암이 굉장히 빠른 세포분열로 정상 세포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누룩도 조금만 들어있어도 발효시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누룩이 들어왔는데도 자기 자랑이나 하고 있다면 이것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바울 사도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책망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 누룩이 있던 자들입니다. 다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심으로 우리는 누룩 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룩 없는 자가 되어서 새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 덩어리란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면서 행하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서 살아난 사건을 감사함으로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 어린양의 희생으로 살아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그 절기를 지켜왔습니다. 그 절기를 지키면서 이어지는 일주일간은 누룩 없는 떡을 먹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 집안에 있는 모든 누룩을 내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유월절이나 무교절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5:8)고 합니다. 묵은 누룩도 아니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도 아닙니다. 묵은 누룩도 아니라는 말씀은, 무슨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자는 것도, 이 세상과 우리 육신의 것들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이 누룩 없는 떡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 하시고, 누룩을 용서 하시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몸에 한 덩어리가 되게 하심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일어난 일임을 믿는 것입니다.


3. 사랑의 치리

그런데 그렇게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세워진 그 교회에 다시 누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도 왜 통분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태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완벽하게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 까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체에 누룩이, 즉 죄가 들어온 것을 보고서도 통분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것은, 자기들은 신령한 은사들이 있다고 하는 자기교만과 자기자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책망을 하고 치리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5:3-5) 바울사도가 그런 자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 내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육신은 멸하고,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는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서 징계로 출교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을 멸하고 영은 살린다는 것은, 영은 거룩하고 육신은 더럽다는 영육 이원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육신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육신이라고 봅니다. 영이란 관계가 회복이 된 것을 영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범죄 한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는 것은, 교회에서 출교라는 징계를 통하여 그를 회개하게 하여 주 예수의 날에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구원 받지 못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바울은 그런 자라 할지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냥 죄 지었으면 지옥에 보내버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까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며, 자기 맹세를 지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나서 온 우주에 그 아들의 영광으로 충만케 되는 일에 사단도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누룩 없는 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새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나를 살리시기에 묵은 누룩이나 세상의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통분히 여기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만이 우리를 살리심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과 우리의 삶 위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름답게 꽃 피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영광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매일의 삶에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령이 임하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2. 고린도교회에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들이 많았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3. 구원 받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통분히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묵은 누룩과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는 떡으로 하자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5. 고린도교회가 죄를 보고도 통분히 여기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바울이 세상에도 없는 죄를 지은 자를 치리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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