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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귀지 말아야 할 자와 사귀어야 할 자

본문 / 고전 5: 9-13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5:9-13)

 

1. 세상

여러분은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사는 이 세상이 어떤 곳으로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곳으로 선하고 아름답게 보이시는지 아니면 불살라 없어져야 할 정도로 죄악이 관영한 곳으로 보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죄도 비록 많이 있지만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도 많기에 착하게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과연 이런 질문을 평소에 우리 스스로에게 하면서 사십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은 ‘목사님 그런 소리는 그만하고 내가 세상을 살다가 피곤하고 힘 드는데 위로나 좀 해 주시죠’ 그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또는 이 세상이 어떻게 결론되어 질지를 모르고 산다는 것은 마치 불나방이 불을 보고 달려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죄악이 관영하여 노아 홍수의 심판을 하였지만 그러나 인간은 그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할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모델로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에 타버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시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약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의 심판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 사도가 불살라 없어질 것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0-13) 그렇게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불살라 버리려고 하시는 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면서 반역을 한 것입니다. 모든 창조의 세계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는데 인간들은 그 영광을 찬탈하고 자기들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가 정말 그러한지를 십자가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내가 주인이라고 하자 사람들이 그를 죽여 버렸다는 것이 십자가의 고발입니다.

 

2. 사귐

이런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긍휼히 여길 자를 골라내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이미 창세전에 예정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어 부름을 받아 나온 자들입니다. 이들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서 구별되어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나온 것이 교회라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내용은 바로 우리가 세상에서 악한 죄의 종노릇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즉, 세상에서 똑 같이 죄의 종노릇하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난 주 말씀에 보면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 되셨느니라”(고전5:7)고 하여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심으로 새 덩어리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새 덩어리가 되었으니 어떤 사귐이 있어야 마땅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세상이 받을 수도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사귐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1:1-4)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이며 또한 그 사귐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악한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주님과 사귐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까? 아니면 부담스러운 소식입니까? 이런 예를 들어 보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며느리 되시는 분들은 시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너와 함께 살아야겠다고 하면서 들어오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끔씩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정기적으로 용돈을 송금하는 것은 그나마 하겠는데 함께 산다는 것은 왠지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시어머니가 대단한 재산가라면 상황은 좀 더 다를 것입니다. 무언가 잘하면 나중에 남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어머니도 아니고 집도 한 채 없는 시어머니가 온갖 잔소리는 다하면서 함께 산다고 생각하시면 끔찍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귀자고 찾아오시는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습니다. 고운 모양과 풍채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되어서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와 함께 사귄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에 제자들도 다 도망을 가버린 그런 분이 지금 우리와 사귀자고 십자가를 지신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런 예수님을 과연 누가 사귀자고 나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5:9-10)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세상에서 음행하는 자들과 도무지 사귀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 음행하는 자들이요 탐하는 자들이요 토색하는 자들이요 우상숭배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원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서 세상의 문명을 등지고 스스로 자급자족 하면서 살아야 그들과 사귀지 않게 된다고 여겨 그렇게 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 자기들만이 거룩한 모임이라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한 공동체들이 많지만 그런다고 그들 안에 죄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과연 성경에서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형제라고 하는 자들이 음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과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와 사귀는 것을 좋아합니까?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교회 안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과 동행하기를 좋아하고,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멀리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사모하며 사는 그런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이 있어야 사귀기라도 할 수 있을텐데 도리어 걱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을 통분히 여겨야 하는데 우리 모두가 다 그 나물에 그 밥처럼 적당하게 눈감아주고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누구를 책망하고 잘라내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5:11) 음행만이 아니라 탐욕을 부리는 자, 우상숭배하거나 모욕하고 술 취하는 자들 그리고 토색하는 자들과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는데 내 자신이 그러한 사람인데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일들 중에 재미있는 일이란 다 죄짓는 일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 일은 죄 짓는 일입니다. 그런 내용들은 말리면 더 하고 싶어 하고, 숨어서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죄 짓는 일입니다. 바로 이런 죄들을 책망하는 곳이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성공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과연 세상의 것들이 침투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책망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세상적이요 마귀적이요 정욕적입니다. 그런 세상의 지혜로 보면 교회란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통하는 재미와 쾌락과 힘들이 교회에서는 정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란 말은 세상 사람들보다 윤리 도덕적으로 조금 더 착하게 산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내용과 방향과 목표에 있어서 완전히 대조되는,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가는 것이 빛과 소금인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이라면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약속의 세계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이란 보암직하고 이 세상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말하는 성공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 받고 이 세상에서 끊어지는 것이 성공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4-18) 이 책망의 말씀이 모두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일서 1장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5-9) 세상의 모든 사귐은 끝이 있습니다. 부모형제도, 친구도, 애인도, 불륜의 관계도 다 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헛된 사귐에 목숨 걸지 마시고, 영원한 주님께서 십자가 안에서 사귀자는 이 사귐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사귐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의 사귐은 누구와의 사귐입니까?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화려하고 더 할 것 없이 좋을 것 같지만 결국은 사라질 세상과 사귀고 있는지 아니면 흠모할 모양도과 힘도 없고 또 그렇게 영향력도 없어 보이시지만 우리의 영원한 능력되신 주님과 사귀고 있는지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떤 친구의 손짓에 더 반응하며 사는지 보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원하는 것은 주시지 않지만 우리에게 언제나 영원한 것으로 공급하여 채우시는 주를 바라보고 사귐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하늘의 영원한 것을 우리 안에 가득하게 채원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적인 삶이라 칭찬 받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성경의 시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덩어리가 되고 난 후에 있는 사귐은 누구와의 사귐이어야 하며 그러나 그 사귐이 우리에게 달갑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성경에서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세상은 교회를 어떻게 보며, 교회는 그런 세상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5.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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