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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본문 /  고전 6: 1-1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1)


1. 종말론적 공동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한 이 땅의 주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지상에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의하면 이 세상이 종말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의 출현과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성전의 등장은 결국 예수님이 인간들의 죄의 문제를 십자가로서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택함 받고 죄사함을 받은 자들에게 임하셔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이 다시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은 분명하게 다시 오신다고 약속은 하셨지만 그것이 언제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아버지의 때가 되면 오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승천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종말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 땅 가운데 성령으로 말미암은 교회의 출현은 결국 종말론적인 공동체인 것입니다. 교회의 출현은 그동안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쾌락과 권세와 힘이 종말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묵인하셨으나 이제는 회개의 증거를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회개의 증거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된 자들이 바로 교회요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가 그런 교회 안에 들어온 음행을 물리치지 아니함에 대하여 바울사도가 책망하다가 갑자기 성도의 소송문제를 가지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바뀌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세상의 법정에 서로 소송을 하는 것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은 음행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음행이 헬라문화권에서 관용되어지고 즐기는 것이라면, 소송의 문제도 역시 헬라문화에서 즐기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헬라인들 중에 자유민들은 매일 새로운 것을 듣고 말하는 것에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 고소하고 재판하는 것들 까지도 그들은 즐기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다보니 교회에서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그들은 세상의 법정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사도가 한탄스러워하면서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교회 안에 형제라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생겼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합니다. 차라리 속는 것은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론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은 아마도 내 아들, 즉 예수님에게 물어보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신 예수님께 물어보면 예수님의 대답은 더욱 더 분명할 것입니다.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어라.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마라.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것처럼 너희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하기 보다는 세상 법정으로 달려가는 것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간에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생기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누가 내게 꾸고자 할 때, 내가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있으면 꾸어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보증 또한 서실 때에 자기가 감당할 능력이 되면 서시고 아니면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예수 믿는 다는 사람이 사업을 하자고 그러면 그 사람의 교회에서의 열심을 보지 마시고, 그 사람의 사업의 능력과 경력을 보시고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그 답으로 성도 안에 이해관계로 인하여 세상의 법정에 고소하느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하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돈 떼이고 기분 좋은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바울사도는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서 교회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라고 하였습니다. 종말론적이란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가치와 목표들의 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의 끝이 있고, 이 세상에서 즐기는 쾌락이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끝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 그 끝이 있는 것을 더 가지고자 영원히 함께할 지체와 세상의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세상의 법정에 서는 것이 합당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끝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 세상 끝에는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고전6:1-3)고 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합니다. 세상이 성도에게 판단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천사조차 성도에게 판단을 받게 됩니다. 세상이 판단을 받고 천사들이 판단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실 때에 일어날 일입니다. 이때 성도가 어떻게 세상과 천사를 판단하는 것입니까?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지체, 즉 그리스도의 몸이 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한 몸이 된 성도의 위상이 어떠한지 너희가 아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이야 성도가 심판을 한다고 해도 천사는 어떻게 판단하는 것입니까? 성경에 보면 바울사도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고 합니다. 판단의 기준이 복음인 것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을 천사들도 잘 몰랐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도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0-12)고 합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복음의 비밀을 살펴보기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의 대단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천사들조차 판단할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3장에 보면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3:7-11)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일군이 되었는데,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풍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방인에게도 전하여진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이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정사와 권세란 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성도의 신분을 모르고 세상의 법정에 고소를 하는가 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재판관이란 1절에서 불의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불의하다는 것은 그들이 부정한 짓을 해서 불의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재판관들을 4절에서는 경히 여김을 받는 자라고 합니다. 단지 가볍게 여긴다는 정도가 아니라 멸시를 받는 자들로 재판관을 삼는가 하는 말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마저 판단하는 자들인데 어떻게 교회에서 가볍게 여기는 그런 세상의 재판관들 앞에 소송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끄러운 짓을 하느니 차라리 속는 것이 낫고,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오도록 해결하는 관점을 종말론적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이 다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미 종말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시각에서 영원을 바라보지 않으면 이해관계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금전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감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여기는 부분들이 다들 있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 갔더니만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흉보면서 해결하겠습니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도는 세상을 판단할 자요, 천사조차 판단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장차 판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그런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사랑의 사귐

여기서 또 하나의 관점은 지금 누구와 사귀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지난주에 사귐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과 사귐이 있다면 그 사랑에 눈멀었기에 다른 것들은 시시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도 우리가 잘 아는 사랑에 눈 먼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1936년에 영국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미국의 심프슨 여사와 교제를 가졌는데 이 여인은 한번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하여 살면서 에드워드 8세와 공식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호감을 가지고 사귀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결혼하기 위해 에드워드 8세는 왕위를 포기하였고, 이 여인은 그 남편과 이혼하고, 에드워드 8세와 결혼한 것입니다. 이상한 예화를 듭니다만 무엇을 말하려는가 하면 정말 사귀게 되면 왕위도 필요 없고 남편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와 사귀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6장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9-11) 이 목록들에서 자기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고 자신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남을 욕해보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도적질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아마도 들키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다 한 번 이상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어주시고,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습니다. 이분과의 사귐이 있다면 그래서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까지 판단할 자들인데 지금 교회 안에 일어나는 소송문제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여 교회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세상의 재판관에서 소송을 하느냐는 책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지금도 형제에 대하여 억울함이 남아 있습니까? 나에게 금전적이든, 말이든 피해를 입혔기에 너 잘되는지 한번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혹 그렇다면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의 목록에 함께 포함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고전6:7-8) 송사를 하는 것은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구나 저희는 너희 형제니라’고 합니다. 꼭 세상의 법정에 송사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에서 그런 송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 모두가 이 말씀 앞에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종말론적인 자세로 살고 있는지, 이 세상의 끝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의와 생명의 세계로 옮겨주신 주님과의 사귐이 과연 있는지 점검하여야 합니다. 주님과의 사귐이 더욱 깊어져서 이 세상을 미리 판단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장차 천사조차 판단할 자들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므로 세상의 판단에 휘둘려지지 마시고 주님의 판단 앞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불의를 당하고 속으면 바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형제 안에서 바보가 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종말론적인 공동체라면, 주님과의 사귐이 있다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차라리 속는 것이 나은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들이 우리 안에서 맛보아 지기를 소원하며, 그 맛을 봄으로 더욱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세워져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이 땅의 하나님의 교회가 종말론적인 공동체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 자라면 세상 법정으로 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세상과 하늘의 천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라 합니까?

4. 우리가 예수님과의 사귐을 통해 무엇을 버릴 수 있었나 이야기 해 보시기 바랍니다.

5.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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