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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울의 자랑과 바울의 상

본문 / 고전 9:16-18

1. 어리석음

우리는 지난주에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 사도를 무시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종의 모습으로 그들을 섬겼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러한 바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강압적으로 자신들을 종으로 삼고, 사로잡고, 뺨을 칠지라도 용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들을 향하여 다른 복음을 전하고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용납하느냐고 책망하는 모습을 고린도후서에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가 바울 사도를 무시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자랑거리들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성령의 은사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러한 은사들이 나타나다 보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무언가 특별한 사람들이어서 그런 은사가 온 줄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서로 자기들의 은사를 자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은사가 임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났으면 은사가 주어졌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입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고 합니다.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받았다는 것은 자기에게는 능력이 없기에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잘난 것인 양 자랑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하도 그렇게 자기 자랑을 하니까 바울 사도가 하는 수 없이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고린도후서 12장에 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1-10) 바울은 자기가 어떤 사도보다 못하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혈통적으로나 신분으로나 학식으로나 못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수고도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자기가 보았던 그 영광의 나라에 대하여 또 다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갔다 왔다고 합니다. 하늘나라를 보고 왔는데 사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무엇으로도 표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영광을 자신이 직접보고 왔지만 그런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객관화시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식입니다. 주의 은혜로 된 것이지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계시가 너무 커서 하나님께서 자고하지 않도록 사단의 가시를 주셨는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자신은 약하여 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약하여야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기에 자기는 이제 약함만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천국을 보고 왔다는 한 미국인이 쓴 책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팔린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천국은 강남의 고급맨션을 그려놓았습니다. 천국을 보고 왔다는 자들의 공통된 특징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천국에서 자기가 사는 집의 평수가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천국에 온 사람은 자기 집이 없어서 합숙소에 있고, 전도와 십일조와 구제와 봉사를 많이 한 사람일수로 고급 맨션이며 평수가 넓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곳은 천국이 아니라 도리어 지옥에 가깝습니다. 이 땅의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어놓고서 천국이라고 거짓말 하고 있는데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천국에 갔다 온 바울사도는 도저히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성경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막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는 어디로 사라지고 인간들의 탐욕에 찬 경쟁심만 돋우어서 교회의 재산과 크기만 키우기에 앞장서게 하고서는 천국을 보았다고 합니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천국을 인간들 욕망의 투기장으로 바꾸어 놓고서 그런 자들을 데려다 간증집회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천국은 절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는 말씀 외에는 귀를 막으시기를 바랍니다. 막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그들과 같은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귀가 솔깃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2. 자랑

그러면 바울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를 위한 자랑을 하라고 하면 자기의 연약함을 자랑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바울 사도가 너무 겸손한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에 대해서 너무 미화하여 보려는 시각이 있습니다. 흔히 바울 사도를 향하여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오직 복음을 위하여 평생을 살았던 위대한 사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고 합니다. 자기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천국간증으로는 지상에서 전도를 하거나, 헌금을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간에 그러한 것들이 재료가 되어서 하늘나라에서 집이 지어지는데, 바울사도는 전도한 것이 자기 자랑이나 공로나 재료가 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성경 다른 것에서는 ‘행한대도 갚아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답하여 보십시오. 우리가 과연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우선순위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나중에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주님 앞에서는 마땅히 지옥으로 가야할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행함을 챙기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십자가를 붙드셔야만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전도한 것이 자기 자랑이 될 수가 없는 이유는 부득불 할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득불 할 일이라는 것은, 억지로 마지못해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바울 사도 자신이 복음을 선택하거나,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이라면 자랑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복음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복음에 사로잡힌바 되고 복음에 정복당한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된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복음에 정복당하고 보니 그 복음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기에 그 복음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헌신하고, 내가 얼마나 열심을 내는가를 자랑할 수는 결코 없다는 말입니다. 복음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기에 내가 목숨 바쳐 복음을 전할 지라도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여름에 수영을 하다가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많은 사람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용감하게 뛰어들어서 그 사람을 구하여 내고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환호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누가 내 등 떠밀었나?” 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자의로 구하였다면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등 떠 밀려 갔기에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심정이 이러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고, 그의 사랑의 강권하심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그의 살아계심과 그의 일하심을 증거 할 뿐입니다. 바울의 행위를 통하여 바울 자신이 증거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9:17)고 하는 것입니다.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종이 하루 종일 수고하며 일하고 돌아와서도 주인의 밥상을 차려드리고 시중을 다 들어야 하는 정도의 충성입니다. 그렇게 하였다고 주인이 사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주인이 사례를 하지 않을지라도 종이 할 말은, ‘마땅히 종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는 말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사명을 받은 자의 또 직분을 맡은 자의 마땅히 할일 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이 얼마나 놀라운 사명이며, 영광스러운 사명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참예하는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 복음에 참예하기 위해 바울사도는 모든 것을 행한다고 합니다. 복음에 참예시켜 주신 그 은혜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참예시켜 주셨기에 자신은 종이 되어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3. 상

그러면 바울사도가 이렇게 복음에 참예한 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상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그러한 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로 받았다면 그것이 영광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상의 개념을 이 땅의 물질적인 개념으로 바꾸어서 천국에서 상의 차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들이 상상한 천국과 상급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울이 말하는 상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 로다”(고전9:18)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임의로 아니할 지라도 사명으로 받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분을 받았는데 그 직분을 잘 감당하는 상이 무어냐는 것입니다. 그 상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한을 다 사용하지 아니하는 것이 자기의 상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복음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고생하는 것을 상으로 여길 정도이겠습니까? 그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사랑과 용서를 알고 나니 주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고난들이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어찌 나 같은 죄인이 주님을 위하여 이 고생을 당할 수 있는가 하는 기쁨인 것입니다. 사랑에 눈이 먼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라 합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에 빠진 자의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입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0-41) 주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으니 기쁘다고 복 받았다고 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과의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겠다고 나서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핍박과 고난이 아니라 그냥 고생인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주를 위해 참고 견뎌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덥다고 산과 들로 놀러갔는데 나는 가지 않고 나왔다. 그런 자신의 결단과 결심으로 견뎌 내었다면 그것에 따른 보상을 기대하게 됩니다. 나 이만큼 했는데 주님도 좀 알아주시겠지 하는 것입니다. 놀러간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생각들은 예수님과의 그 거룩한 사랑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를 바라 볼 뿐인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이를 위해 드려지는 시간도, 물질도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이를 위해 수고하는 모든 수고도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이제 바울의 자랑과 상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바울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바울의 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 상입니다. 그 십자가 안에 하늘의 영광과 생명이 다 감추어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기가 택함을 입고서 고난의 자리에 들어선 그것이 너무나 감사하여 자기의 권리마저 사용하지 아니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 받은 사람만 아는 것입니다. 누가 더 많이 그 사랑에 붙잡혀 살아가느냐가 진정한 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도 바울이 받은 이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 자기의 자랑과 상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서 그 사랑과 상이 얼마나 좋은지 바보가 되어도, 고난이 닥쳐도, 죽어도 좋다는 그 자랑과 상을 우리도 맛보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인생이 되도록 주님과의 그 아름답고 존귀하고 거룩한 사랑에 푹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주님 앞에 섰을 때 기쁨으로 감사와 찬양을 그리고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우리들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들이 받은 은사에 대해 착각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2. 우리들이 많은 간증으로 들은 천국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은 무엇입니까?

3. 바울이 수 없이 복음을 전하고도 자신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예수님과의 사랑에 빠지기 전의 제자들과 빠진 후의 제자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사도 바울이 말하는 우리가 진정으로 받을 상은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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