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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는 과연 누구와 사귀며 살아갑니까?

본문 / 고전10:14-22

 

1. 우상숭배

우리는 지난주에 바울이 설명하는 구약의 사건들을 통한 본보기를 보면서 그 구약의 범죄 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상 숭배와 간음 그리고 주를 시험하는 것과 원망 등 이러한 모든 죄악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그런 우리들이 아무리 구약의 본보기를 보고 안다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는 고칠 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구약의 결론으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율법의 내용들을 우리들은 스스로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기능은, 범죄 한 아담이후의 모든 인간이 다 죄 아래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19-20) 이처럼 인간이라는 존재가 캄캄한 어두움 아래 갇혀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모릅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빛 되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들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빛으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으나 사람들은 어두움을 더 사랑하여 그 빛을 미워하여 죽이고 추방하여 버린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세상은 도리어 빛이고, 참 빛 되신 예수님은 어두움으로 보는 것입니다. 참 빛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어두운가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멸시와 배척 그리고 온갖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실패로 보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어두움아래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장에서는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5:20)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고 하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우상숭배의 현장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10:14)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우상 숭배라는 것은, 단지 어떤 형상물에 절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다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한일서 2장에서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은 곧 간음과 연결이 됩니다. 야고보서 4장입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얍4:4)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우상 숭배요 간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 말씀 앞에서 ‘나는 우상숭배하고 간음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마음이 드는지 아니면 원망과 분노가 일어나면서 ‘그러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하는 불평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오늘 본문에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고전 10:15)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은 복음을 듣고, 진리를 알아서 자유하다고 합니다. 우상도, 우상의 제물도 아무것도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상제물을 먹는 자리에 함께 참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지식으로 말미암아 교만으로 달려갔을 뿐이지, 사랑으로 덕을 세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자유와 지식이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교만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너희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 우상 숭배하는 모습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사랑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었다고 하면서 과연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말씀대로 그렇게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상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여 져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10:16-17)고 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잊은 까닭입니다. 우리의 축복하는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요,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살 찢으심과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게 하셔서 성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 결과 너는 너일 뿐이고, 나는 나일뿐이라는 식의 삶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바울은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고전10:18)고 합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이스라엘을 육신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먹는 것은 그 제단에 참여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림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게 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에서는 하나님께 제사 한 후에, 그 드려진 제물이 불태워지는 제물이 있고,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제물이 있고, 제사를 드린 자가 함께 먹는 제물이 있습니다. 화목제물을 함께 먹게 되는데 그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 제단에 참여된 것으로 그 제물이 드려진 신을 섬긴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방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참여하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는데 어떻게 우상의 제단에 드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과 우상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상의 신전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방인의 제사란, 결국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전10:20-21) 이방인의 제사란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과 교제하면서 또 귀신과 교제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 어떤 이들은 이런 우상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어떤 신전에서 제사 드려진 고기라 할지라도 상관없이 먹을 수 있지만 그러나 그만한 지식이 없고 단지 제사 드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신을 섬기겠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그 지식이 있어 다른 신전에서 먹는 사람을 볼 때 무엇이라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의 답변입니다. 이처럼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반대로 오직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왜 우상숭배자가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 받아서 천국 가는 것도 좋은데, 세상에서 사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예수 믿어 주고,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며 사는 그들의 신앙의 마지노선이 바로 십일조 내고, 주일을 지켜주겠다는 정도인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 한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도 하지 않으니까 교회에서는 그것이라도 하면 신앙생활 하는 것인 양 인정해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거래이지 예수 그리스와의 사귐이 아닌 것입니다.

 

3. 사귐과 교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참여 또는 교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님의 몸에 참여하고 주님과 사귐이 있어야 성도인 것입니다. 주님과의 사귐이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와의 사귐도 있는 것입니다. 그 사귐이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사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도대체 주님과의 사귐이 있는가를 의심할 수가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잠언서의 말씀처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성도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원한다고 기도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란, 그의 보내신 자를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중에 누가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살아가는 방향과 목표가 과연 주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을 향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상숭배란, 예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목사로 치면 예수님보다 자기가 담임하는 교회운영과 성도들의 헌금의 크기에 더 관심을 가지면 그것이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데 관심이 가는 것입니까? 과연 예수님과의 사귐이 좋다면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셔야 합니다. 우리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인데 과연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예수님보다 교회 건물이나, 성도들의 숫자나 또는 헌금의 액수나, 교인들과 재미있게 지내는 분위기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이 교회에서 자신의 인기가 얼마나 되는지 점검해 보고 싶은 욕망은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면 또 대접해 주지 않으면 괜히 서운하고 심술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는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 오직 내 가정과 내 가족 그리고 내 신앙에만 관심이 있고, 옆에 지체들은 나오든지 말든지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와 사귐이 깊어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을 더 알고 싶고, 예수님과 더 깊이 사귀고 싶고, 예수님에게 무엇이든 더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사귐이 있는 것입니다. 물질도 시간도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 다 내어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과 교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의 그런 사귐과 교제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참다운 사귐과 교제를 가지려면 이 세상과는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이별하는 게 싫고,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세상과 사귀고 싶어서 주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요 귀신과 사귀는 것입니다. 단지 이방인의 제사에 참예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귀신과 사귀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아직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과 이별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주님과 사귐이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주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시편 84편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 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 이다”(시84:10-12) 아멘!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누구와 사귀십니까? 세상과 사귀면 우리는 세상에서 물질과 명예와 권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얻은 세상의 것이 과연 영원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 세상의 것이 우리에게 하늘의 생명과 거룩에 동참케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다 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하늘에 속한 영원한 것은 주님과의 사귐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사귐 안에 생명이 있고, 거룩이 있습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주님과의 사귐의 삶이 되시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들을 온전히 누리며 살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행하는 우상숭배와 간음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우상숭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랑과 우상숭배는 무엇이라고 정의하여 줍니까?

5. 주님과의 바른 사귐이 없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6. 우리가 주님과의 바른 사귐과 교제를 싫어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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