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본문 / 고전10:23-11: 1
1. 성령과 법
우리는 지금까지 우상 제물을 먹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린도전서 8장에서 시작하여 오늘 본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에서 그 결론을 보게 됩니다. 그동안 이 내용으로 많은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결론인데 과연 여러분은 어떤 결론과 기준을 세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상 제물을 먹든지 또는 안 먹든지 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일과 행위에 있어서 해야 할지 또는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하여 어떤 기준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설교를 듣고 이런 요구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렸다고 생각하는데도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요구를 들을 때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시면 됩니다’라고 답을 드립니다. 그러면 또 다시 ‘아니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행위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또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들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니 오직 그 분의 지시를 따르시기 바랍니다’라고 답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어렵게 말하지 말고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 그렇게 말해 주세요’ 하시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내용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우리들 마음에 드는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마음의 바탕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로부터 인간이 육신이 되어 버린 까닭입니다. 육신이 되어버린 인간은 법을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육신이 된 자는 아무리 법을 지켜도 그 안에서 사랑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자기 의만 쌓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그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우월함만 자랑할 뿐 사랑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면서 무엇을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 몇 가지를 제시하면 그것을 붙들고 지키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너무 부담스러우면 안 되겠기에 적당하게 제시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처럼 다 지키는 것은 부담되기에 그렇게 지키는 것은 아니고, 어떤 것은 지키고 또 어떤 것은 부담스러우니 슬그머니 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든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주일 성수와 십일조 같은 것입니다. 그것만 하면 기본은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좀 더 많이 하면 여러 종류의 헌금들과 교회의 봉사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아무리 지킨다고 하여도 법 지키는 차원에서 하는 것은 육신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7-9)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모릅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것이 613가지입니다. 그런 율법의 명령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 십계명을 잘 지키기 위한 보조계명이 있는데 그 보조계명만 365가지입니다. 보조계명이 그렇게 많은 것은, 십계명을 생활 속에서 실천을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365가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중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한 가지 법에 따른 보조 법만 39가지나 됩니다. 안식일에 불을 피워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지, 안식일에 구덩이에 짐승이 빠지면 건져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사람이 다치면 치료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상처에서 피가 나면 지혈은 하지만 약을 바르지 못하게 하는 등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게 하기 위한 보조계명으로 이러한 법들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우리들에게 제시하면 우리는 과연 지킬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 또는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말씀으로 듣기를 원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는 누가 무엇을 가르치지 않아도 그 기름 부으심이, 즉 성령께서 다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고 하십니다. 주께서 각자에게 친히 가르치시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렸는데도 아직도 우리 마음에 ‘그래도 지금까지 많은 시간 말씀을 들어 왔는데 그래도 오늘 결론을 통해 우상 제물의 문제만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신다면 ‘그동안 다 말씀 드렸습니다.’라고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여러 시간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는데 기억이 나지 않으신다면 오늘 다시 그 내용을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2. 요약
첫째로 먼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참 신이시기에 우상의 제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이 없어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못하는 자를 향하여 아직도 우상에 대한 지식이 없느냐며 멸시하게 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안 먹고의 기준은 자기 지식보다 사랑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모든 행동의 기준은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형제와 복음을 위한 것이라 했습니다. 자기 편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형제를 위하여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형제가 실족하게 된다면 차라리 가지고 있는 지식을 따라 살지 않고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바울의 고백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몇 가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자랑을 하니까 바울은 그런 자랑이라면 자기는 더 큰 자랑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여서는 오직 자기의 약함만을 자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바울의 상이란 형제를 위하고,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아니한 것이 자기의 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복음의 지배를 받아 그 복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그에게는 상인 것입니다. 넷째로 자유인이란 아무 목표가 없어야 자유인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자기를 사로잡은 그 십자가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하였습니다. 그 십자가를 알면 알수록 더욱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율법에서 그리고 죽음과 세상에서 또 자기 자랑과 자기 체면에서 점점 더 자유하게 하는 것이니만큼 그 자유를 위해 사로잡힌바 된 그 십자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 자유인의 목표인 것이라 했습니다. 다섯째는 구약을 거울삼아 본보기로 비추어 보니 우리의 모습이 그 안에 다 들어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온갖 우상숭배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다만 어떤 형상물에 절하는 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탐심이 우상숭배며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이런 우상숭배에 갇힌 자들이기에 오직 피할 길을 주님께서 주셔야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섯째로 지난주의 말씀으로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고자 하는 것인데도 우리는 날마다 세상과 벗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고자 작정하고 달려들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 달라는 그 의도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 몇 가지만 하고서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세상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다시 요약을 하였으니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준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아마도 아직도 세워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원리를 말씀드렸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면 반드시 율법화 시키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열매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나타나는 내면적인 생명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교회봉사의 예로 들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두 사람이 똑 같이 봉사를 합니다. 두 사람 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 봉사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은 되는데 어느 것은 되지 않는 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다 한꺼번에 나오는 속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성령을 열매를 맛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 것 아닌 몇 가지 종교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자기는 많이 한 것인 양 자랑하고 비교하면서 위안삼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거짓 된 종교적인 삶에서 속히 벗어나야만 합니다. 이런 내용에 대해 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의 모든 신앙적 지식과 행위는 다 버리셔야만 합니다. 아깝다고 스스로 구별하여 챙겨두지 마시고 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장성한 자로 또 그 삶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결론
이제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결론을 어떻게 내리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고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합니다. 모든 것이 다 자유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자유라고 내 편한 대로 하였는데 그것이 덕을 세우지 못하였다면, 나의 지식으로 교만하게 행한 것이지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합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또한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고전10:25-30)고 합니다. 시장에 나오는 음식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사 먹으라고 하는데 기 이유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에게 드려진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식사를 마련하고 초대를 하면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시장에 파는 것이나 차려진 음식이나 고기의 대부분이 우상에게 드려진 것들이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파는 것이고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사온 것이기에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그 음식이 우상 제물로 드려진 것이라고 알려 준다면 그 알게 한 자와 그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양심은 자유 하여 거리낄 것이 없지만, 알게 한 자의 믿음이 연약하여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이라고 알려주면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총 결론 부분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0:31-11:1)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며, 형제의 유익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의 봉사든, 가정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사랑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 하나님의 교회에서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거치는 자란, 결국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에 나오는 일입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하며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것이 결론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까지도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위하여, 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모든 범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삶을 사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며 또 그 분을 따라 산 자가 바울이며, 이제 우리가 그 바통을 이어야 할 차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모든 부분에서 나를 위한 삶이 아닌 형제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 냄으로서 우리의 모든 삶의 시간에 버려지거나 잊어버린바 된 시간이 없게 되시기를 바라며 또 하나님의 간섭과 참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늘 기억된바 된 삶과 충만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말씀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일로 구분하여 듣기 원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주를 믿는 자들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3. 우리가 요약을 해서 다시 들어도 어떤 기준이 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맛보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5. 같은 행위와 지식을 가지고도 교만과 사랑으로 나누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