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새 언약
본문 / 고전11:23-26
1. 땀과 노력
지난주에 우리는 주의 성찬에 담겨져 있는 전체적인 의미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그 말씀 중에 새 언약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새 언약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전에 옛 언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새 언약으로 하시지 않고 왜 옛 언약을 먼저 주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죄를 모르는 자는 은혜도 모르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전체를 통해 인간이 어느 정도로 구제불능인지를 철저하게 확인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아들이신 예수님의 피로만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시는 것이 새 언약인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을 오늘 본문에서 다른 말로 표현하여 말하고 잇는데 그것이 바로 ‘주의 죽으심’입니다. 새 언약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바로 주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예수님 오실 때까지 기억하고 증거 해야 할 것은 주의 죽으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란 주의 죽으심 안에 있어야만 하며, 만약에 주의 죽으심을 벗어나면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20:28)고 하여 교회를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피를 흘리심으로 교회를 만드신 것입니다.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유지하고 계시는 것도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땀과 피가 교회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옛 언약인 율법 하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땀과 노력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7장입니다.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신26:5-6)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단을 쌓을 때는 쇠 연장도 대지 말고, 다듬지 않는 돌로 쌓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주어진 말씀인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에발산에 단을 쌓을 때에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애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다듬지 않는 돌로 여호와의 단을 쌓음으로서 신앙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인간의 땀도 거부합니다. 에스겔 44장입니다.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내가 맡긴 직분을 지키되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성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겔44:16-18)라고 하십니다.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양털로 된 속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게 한 이유는 땀을 흘리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땀으로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사람의 땀만이 아니라 분비물까지도 다 부정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레위기 15장에 보면, 남자나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은 병으로 나오는 것이든, 정상적으로 나오는 것이든, 그것이 고름이든, 피 이든 간에 다 부정하게 여겨져서 정상적인 것은 몸을 씻어야하고 병적인 것은 치료가 되고 속죄를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에도 이런 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22장입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2-44)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실 때의 모습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제자들을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땀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조차 바치겠다고 한 제자들이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깨워도 또 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잡히시는 그때에는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 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란 인간의 땀과 노력이 아니며, 인간의 결단과 각오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께서 땀을 피 같이 쏟으시며 기도하신 후에 잡히시고 살을 찢고 피를 흘리며 십자가를 지신 것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월절 만찬인 것입니다.
2. 새 언약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월절을 지키는 모습이 있습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 예수님은 떡을 자신의 몸이라 하시고, 잔을 자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이 새 언약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이며, 이 새 언약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완전하게 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 백성의 특징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의 죽으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누가 더 많이 주를 위해 땀을 흘리는가를 경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땀만이 아니라 피까지 요구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피땀 흘려 모으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그만큼 돈이란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피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돈을 교회에 바치면 복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옳다면 예수님의 땀과 피는 소용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과연 주님 오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만을 증거 한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정말 많은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몇 년을 목회를 해도 지하 예배 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성도의 수가 늘지 않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한 주에도 수십 명씩 등록을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교인의 수가 더 많아지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휴게실을 강남의 카페처럼 꾸며서 커피 한 잔에 천원에 팔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내장을 만들어 교회에서 하는 문화교실을 홍보하기도 합니다. 다이어트 건강체조로부터 독서, 논술지도, 악기교실, 어학교실, 컴퓨터 교실 등 이 모든 것들이 무료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다양하게 문화 교실이 있는지 모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 지하에서 벗어나지 못한 교회와 이런 화려한 교회가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느 교회로 등록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물어보나 마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작은 교회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교회도 저렇게 큰 교회가 될까를 꿈꾸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이 많이 모여야 되고, 돈도 많이 들어와야 하는데 사람이 많이 모이고 돈이 모이려면 무언가 매력적인 것을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그 십자가만 증거 하면 얼마나 사람이 모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면 그래도 우리교회는 그런 건물을 원하거나, 돈을 많이 내라고 하지 않으니 괜찮은 교회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그런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는 우리는 그런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니 우리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역시나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님 오실 때 까지 그것만을 붙들고, 그것만을 증거하며 살아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렇게 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주의 죽으심만을 주님 오실 때까지 증거 해야 하는지를 히브리서 10장에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10:1-18) 여기 말씀을 보면 율법은 그 어떤 것도 온전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황소나 염소의 피로 되지 않습니다. 제사장으로도 안 됩니다. 왕도 안 됩니다. 오직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대로 한 몸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은 것입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온전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가 새 언약이기에 그렇습니다.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새 언약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4) 하나님의 법을 자기 백성의 마음에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에는 돌비에 새겨 주었던 것을 새 언약에는 심비에 새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저희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실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새 언약입니다.
3. 죄
그러나 마귀는 어떻게 유혹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과 그의 백성사이를 이간질하고 갈라놓으려고 하는 것이 마귀의 최종목표인데 그런 마귀의 유혹은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도 믿어야 되지만 그것만은 안 되고, 너도 무언가 행함을 더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 속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피 흘려주심만으로는 구원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우리의 땀과 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땀과 피만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라서 우리의 땀과 피에는 죄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사람이 되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으심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아들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인간의 땀과 피가 찬양되지 않습니다. 그 아들만이 영광을 받게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죽으심을 모독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즉 죄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여 받지 않고 모독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다시 히브리서 10장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10:26-31) 옛 언약인 모세의 율법 하에서도 모세의 법을 어겨도 심판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이루어내신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그것을 증거 하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는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며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자기의 땀과 피를 부인하고, 그 아들의 피와 그의 죽으심으로만 우리가 온전케 되어 진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그것이 바로 은혜의 성령이 임한 증거입니다. 세상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죽으심만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증거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의 증인이 되어 우리의 모든 삶의 터전에서 그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이 새 언약(복음)보다 옛 언약(율법)을 먼저 주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옛 언약이나 새 언약 안에서 사람의 땀과 노력을 거부하는 근거와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성경에서 말씀하는 오늘날 새 언약 백성의 특징과 교회의 현실은 어떻게 다릅니까?
4. 새 언약이 옛 언약과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5. 새 언약 가운데 사는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마귀의 유혹은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