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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신 은사의 목적

본문 / 고전12: 4-11

1. 하나님의 오른 손

우리는 신령한 것이라고 하면 신비하고 초월적인 것이라고 쉽게 여겨 버립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살펴 본 말씀에 의하면 신령한 것이란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하지 않고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신령한 것이라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신령한 자인지 아닌지의 구별은 다른 것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보느냐로 구별하면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은사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초보 단계이고 이야기하고, 고급단계로 올라갈수록 초월적인 능력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바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나타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많은 은사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사의 목적을 모르고서 자기에게 은사가 나타난 것을 자랑으로 삼고 또 그것으로 교만하여 진 것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 신령한 것을 말하게 된 사람들이 무엇을 증거 하였는지를 먼저 확인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2:36) 이 말씀은 사도행전 2장에 있는 성령이 임하신 내용의 결론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기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는 승천 하셨습니다. 승천하신지 10일 만에, 즉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그 복음이 각 지역 사람들이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각 지역의 언어로 알아듣게 되는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큰일 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큰일이란 십자가의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지금 보고 듣는 이 성령을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요엘서와 시편을 인용하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구약을 제대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구약의 선지자들이 누구를 증거 하기 위하여 그렇게 예언하였는지를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밝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성령을 부어 주리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이며, 그 성령을 보내시기 위하여 주가 오셔야 하셨고, 고난 받고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셔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의 증인이라고 사도들이 말합니다. 다시 사도행전 2장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그런데 여기서 보면 하나님의 오른손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에 무엇으로 구원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오른손입니다. 출애굽기 15장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출15:6)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에 애굽을 치시고 홍해를 가르신 손이 바로 여호와의 오른손입니다. 원수에게는 심판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 오른손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다 이루신 예수님을 높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이미 창세전부터 앉아계셨던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자기를 비워 종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승천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 오른편이 무엇을 하시는 자리입니다. 바로 구원하시기도 하시고, 심판하시기도 하시는 구원과 심판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앉으셔서 바로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오른 손의 역할을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이루셨고 그 일을 이제는 성령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2. 교회

이제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12:4-6) 4절에서는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절에서는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절에서는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주님의 일이나 하나님의 일이나 다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주님을 높이지 않을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자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유익은 인간적인 유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은사이지 어떤 개인이 사유화하여 특권처럼 사용하라고 주신 은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은사의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하면 자기 치장과 자기 과시와 자기 자랑용으로만 은사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란 구한다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시는 분의 뜻대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1)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는 그 뜻이란 아버지의 뜻이며 또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심으로 이 땅에 종말론적인 공동체가 탄생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철저하게 은사 공동체인 것입니다. 은사 공동체라고 하니까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나는 방언도 못하고, 방언 통역도 못하는데 어떻게 은사를 받았는가 하실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은사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은사를 받지 못한 신자들은 워낙 무슨 열등한 신자처럼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다시 반복하여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신령한 은사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그 십자가를 저주 할 자입니까? 아니면 그 십자가의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고백하는 자들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성령이 임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은사들은 무엇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나타내며, 믿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유익이 무엇입니까? 은사를 통하여 구약의 말씀, 즉 하나님의 계시들이 분명하여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믿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언이나 방언통역 보다도 그 성령으로 말미암은 드러난 계시가 필요한 것입니다.

3. 은사

그래서 오늘 본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고전12:8)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지 않았기에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복음서가 기록되고, 서신서가 기록되고, 요한 계시록이 기록이 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기록이 된 것이지 그 이전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로 된 것입니다. 복음서와 서신서와 계시록으로 계시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빼거나 더하거나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혜와 지식의 은사로 기록된 성경의 특징과 그 통일성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자기가 받은 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성경이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성경이 도대체 몇 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러니 무엇을 보았다거나 들었다거나 하는 그런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지혜와 지식의 은사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지혜와 지식의 은사들은 새로운 계시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계시를 바르게 알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17-23) 여기 등장하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은 바로 성령님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을 알고, 성도의 소망,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그의 힘의 강력한 역사를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 오른편에서 모든 권세를 다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인 우리는 그분의 몸입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입니다. 이러한 신령한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은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말씀에는 다른 은사들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고전12:9) 주셨습니다.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헤롯왕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이는 일이 발생하자 유대인들이 무교절에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는 사건이 있습니다. 옥에 갇힌 베드로는 내일 죽을 줄도 모르는 그 상황 속에서도 깊이 잠을 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믿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나오는 이런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다스리시는 주가 주신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사도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자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기의 옷을 찢으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자신의 실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로 주어진 믿음과 병 고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유를 행한다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입으로야 주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만 성경에서는 요즘처럼 병 고친다는 광고를 하고서 병 고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우발적입니다. 그리고 다 고쳐준 것도 아닙니다. 병 고치는 은사가 있다고 자기가 전매특허인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때그때 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나누어주실 뿐입니다. 절대로 은사를 사유화하거나 반복하거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복이 안 된다는 것은, 이렇게 하니 무엇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게 하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조절하고 조작할 수가 있기에 그렇게 맡겨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는 결코 사유화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능력으로 소유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하실 뿐인 것입니다. 또한 10절 이하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0-11)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다루는 부분이기에 오늘은 그냥 넘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정리하여 결론을 내려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도를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되는 것이 성도의 유익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늘의 신령한 복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감사하며 사모하며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내 개인이 능력을 받고 높아지고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은사는 없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다 은사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4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4:1-16)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목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목적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허락하신 은사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믿음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은사 때문에 나타난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2.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난 현상은 무엇입니까?

3. 은사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4. 성령의 은사로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더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는 무엇입니까?

6. 은사로 말미암아 성도가 유익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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