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1,823
오늘 : 81
어제 : 204

페이지뷰

전체 : 78,744,477
오늘 : 254
어제 : 1,20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성령으로 한 몸 되게 하사 우리를 부르신 목적

본문 / 고전12:12-31

 

1. 죄의 성향

우리는 지금까지 들은 수많은 설교 말씀을 통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10장에서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주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닌 주의 성령이 임하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요엘서 2장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2:28-32) 요엘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사람들에게 부어주셔야 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이루어졌음을 성령이 임한 베드로 사도가 사도행전 2장에서 증거 한 것입니다. 말세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을 얻게 되는 일이 지금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하는 성령께서 임하시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죄 아래 오셔서 죄인의 자리에 들어가시고 죄의 삯인 저주와 사망을 십자가에서 치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등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오른 편에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이며 그리고 그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한 몸이 되는 것입니까?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둘이 한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둘이 아무리 결혼을 한다 할지라도 몸은 둘이지 결코 한 몸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한 몸이 되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이루어 낼 사항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그 상태에서 서로가 한 몸이라면 서로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지기는커녕 서로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인을 보고는 내 살 중에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할 때는 언제이고 선악과를 따 먹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주신 여인 때문이라고 핑계대기에 바쁜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 부부는 한 몸이라는 이야기는 주례사에 항상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한 몸처럼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프면 과연 아내도 남편과 똑같이 아프냐 하는 것입니다. 조금은 안타깝지만 실상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괴로운 일이 있다고 해서 그 아내도 남편과 똑같이 괴로움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한 몸이라고 하는 내용들은 우리가 이루어낼 수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처음 아담은 실패하였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성공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한 몸을 이루어 내시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2. 하나 됨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그 세례 속에 들어가는 것이며, 세례 속에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3:14) 하면서 만류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세례는 죄인이 받아야 하는 세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인이 받는 세례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3:15)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의 자리에 들어오신 것이며, 죄인과 함께 연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서 죄인의 가야하는 심판의 자리로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죄로 인하여 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과 하나 되는 연합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게 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어내신 그 모든 것들이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함을 받고 영화롭게까지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도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1:30)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님도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거룩과 구원함이 된 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바로 성령이 임하심으로 하나로 묶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로마서에서는 세례라고 합니다. 함께 묶여버린 것이며, 한 몸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11)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다는 것을 세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천 년 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함께 죽고 사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것은 그렇게 죽고 살아나신 분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니 연합이 되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의 세례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니 우리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 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2-13)고 하시는 것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지체가 아무리 많아도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도 그러 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그 안에서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 다 한 성령을 받고 한 성령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싶어서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말로 성령을 마시고 싶어서 마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가 받게 된 것이고 마시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한 성령을 받은 것이고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제 한 성령을 받고 마시게 된 자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공로로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가 되었기에 누가 더 잘났는가 하는 차별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가 다 한 성령을 받고 마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인 헬라인의 벽이 얼마나 높았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하여 사도들을 현장에 파견하여 확인하였던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종과 자유자, 즉 노예와 주인의 차별 같은 이 엄청난 차별들이 성령이 임하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에 우월이나 열등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목적

그런데도 왜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러한 차별과 자랑이 나오게 된 것입니까? 성령의 은사가 자신에게서 나타나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기에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게 하셨는가를 생각하여야 하는데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은 잘난 것이 있어서 또는 받을 만 해서 받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부분입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에게 은사를 어떻게 받았느냐고 하면, 금식기도와 고행 같은 뭔가 특별한 것을 해서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은사는 선물이 아니라 삯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놓치게 되면 자기 자랑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은사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몸의 지체로서 비유하고 있습니다. 몸에 수많은 지체들이 있지만 서로 분란이 없고, 다 몸을 위하듯이 은사는 그렇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튀고 싶은 것은, 그것이 바로 죄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받는다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아도 자기들은 여전히 죄의 성향이 강한 자들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골2:16-19) 여기 보면 그림자와 몸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위하여 일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공로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몸 된 우리는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하는데 머리를 붙들지 않고 일부런 겸손함, 천사 숭배함 그리고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고 자기 경험과 체험을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잠언서 18장입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잠18:1) 몸의 지체로서 붙어 있는 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특별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갈라지고자 하는 것은 자기의 욕심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참 지혜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말없이 조용히 숨어서 봉사하고 충성하는 자가 더 큰 은사인 것입니다. 자주 말씀을 드리지만 드러나게 앞에서 표현되는 은사는 믿음이 더 약한 사람이라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붙어 있지 않을 것 같아 하나님이 주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앞에서 드러내며 일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나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봉사의 일로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해 은사를 주신 것이기에 그것은 어떤 차별이나 우열이 있을 수가 없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지체가 아무리 잘 난 체 한다 하여도 결국 몸에 붙어 있어야지만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체의 기능이 다 다른 것이지만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지체에게 ‘너는 필요 없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몸의 약하게 보이는 부분이 오히려 더 요긴한 것입니다. 이처럼 몸 가운데 분쟁이 없게 하시고 고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함께 고통을 받고, 영광을 받으면 함께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 된 우리들이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르면 한 몸이면서도 서로를 찌르는 가시에 불과한 자들이 됩니다. 지체끼리 공로다툼을 하고 그 결과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모습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나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어야 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대속하신 주의 사랑을 알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몸 된 교회를 위해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와 각종 능력을 주셨는데 그로 인하여 교회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밝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28절 이하의 첫째 둘째라고 표현하는 것은, 신분상의 차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기초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시간의 순서로 보아야 합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은 은사의 특징은 14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양한 지체들은 결국 한 몸을 지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머리를 붙드는 것이며, 그 머리의 지시를 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은 목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렇게 한 몸을 이루게 하신 주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내 마음에 안 드는 지체가 있어도, 나와 한 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슨 은사를 받았다거나 또는 이 땅에서 얼마만한 물질을 맡았다거나 그리고 어떤 위치를 맡았든지 그것으로 우리의 자랑거리를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나보다 못한 자를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내 몸처럼 사랑하며 섬기며 세우는 삶이 되시어서 주님이 하나 되게 하신 이 놀라운 은혜의 작품을 힘써 순종함으로 지켜나가시는 예원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까지도 인간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만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우리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3.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까?

4. 은사를 주신 목적과 그 목적을 망각한 자들이 가지는 오해는 무엇입니까?

5.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6.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3 5월 2일 2부 /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서 신자답게 사는 길 관리자 2010.05.15 1878
672 7월 17일 2부 / 오직 복음을 위하는 바울의 변명 관리자 2011.07.17 1863
671 12월 26일 1부 / 도마의 믿음과 보지 않고 믿는 믿음 관리자 2010.12.24 1858
670 10월 9일 2부 /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관리자 2011.10.09 1846
669 9월 23일 2부 / 바울의 어리석은 자랑 앞에서의 우리의 자랑 관리자 2012.09.23 1835
668 5월 8일 2부 / 묵은 누룩을 버리고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11 관리자 2011.05.07 1826
667 7월 10일 2부 /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위하여 2 관리자 2011.07.09 1806
666 5월 20일 2부 /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이라 관리자 2012.05.19 1800
665 9월 25일 1부 /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신 은사의 목적 3 관리자 2011.09.25 1784
664 5월 9일 2부 / 이 세상에서 신앙의 삶을 산다는 것 관리자 2010.05.16 1775
663 9월 30일 1부 / 교회를 위한 염려 때문에 하는 바울의 자랑 관리자 2012.09.26 1769
» 10월 2일 1부 / 성령으로 한 몸 되게 하사 우리를 부르신 목적 2 관리자 2011.10.01 1762
661 7월 31일 1부 / 자유인의 목표와 방향 관리자 2011.08.13 1756
660 5월 15일 2부 / 사귀지 말아야 할 자와 사귀어야 할 자 관리자 2011.05.14 1753
659 5월 1일 2부 / 세상과 이별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 관리자 2011.05.02 1725
658 11월 17일 추수감사주일 / 소금이 맛을 잃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9 관리자 2013.11.23 1720
657 8월 19일 2부 / 육신에 속하지 않은 우리들의 무기 13 관리자 2012.08.18 1689
656 5월 6일 2부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관리자 2012.05.19 1685
655 12월 5일 2부 / 빈 무덤 앞에서의 알 수 없는 눈물 121 관리자 2010.12.03 1681
654 7월 15일 2부 / 은혜의 연보로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23 관리자 2012.07.15 167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