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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랑을 추구하며 예언을 하려고 하라

본문 / 고전14: 1-19

 

 

 

오늘 본문 1절에 보시면 바울 사도는 사랑을 추구하면서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신령한 것은,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말씀을 보면 예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인 우리들은 예언을 하려고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언을 중심으로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가짜

고린도전서 14장 전체에서는 예언과 방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지만, 방언은 개인의 덕을 세운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통역이 없는 방언은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에 덕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방언은 혼자서 하도록 하되 금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에 이러한 예언과 방언이 주어지는 것은, 그 당시에는 아직도 성경의 계시가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시대에는 계시가 예언이나 방언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가 완성이 되면 그러한 계시에 사용되어 졌던 은사인 예언과 방언은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온전한 것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 온전한 것이란 계시의 온전함만이 아니라, 그 계시의 온전함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함에 대함임을 지난주에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란 죄인 되고 원수 된 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 안에 있는 자는 온전한 자이기에 그 사랑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에서 예언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예언하라는 것입니까? 이 성경의 예언을 바르게 알려면 우선 예언이 아닌 것을 먼저 바르게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예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래에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지 아니면 불행한 일이 있을지를 미리 알아서 좋은 일은 불러들이고 불행한 일은 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 가는 곳이 바로 점집 같은 곳입니다. 어젠가 경찰들이 점치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되어 그 점치는 사람을 잡아들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점치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들의 장래를 예언하는가 하면, 자식들이 피를 토하고 있다고 하거나, 사업이 안 된다고 하거나 해서 결국 큰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바친 사람도 있고, 돈이 없는 사람은 그 점치는 사람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잘못하면 얻어맞아가기도 하면서 그 무당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거짓이라고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공황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당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데 이런 모습이 오늘날 기독교 내에서도 기도원이라는 이름으로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기도원이나 또는 기도 좀 한다하는 사람에게 기도 받으러 간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무당이 하는 짓을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직접 계시를 받는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에게 걸리면 무당에게 속은 것과 마찬가지로 속고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입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후11:20) 왜 이들을 용납하는 것입니까? 마치 무당처럼 장래의 일로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종교성이 많아서 무당에게 속아 살았는데 이제는 또 다른 종교의 이름으로 속고 있는 것은 속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나와 내 가정은 잘 되어야 한다는 이기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욕심이 죄를 잉태하고 그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무당에게 속거나 또는 예수 이름으로 무당 짓 하는 사람들에게 속는 것은 그 마음속에 자기 욕심이 가득하기에 속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나, 속는 자는 사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이는 자나 속는 자가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그런 욕심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우리는 어디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우리 자신과 가정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거짓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우리의 죄 된 심성으로 예언을 알려고 한다면 그 예언조차도 우리는 자기의 이익의 재료로 삼으려고 할 것입니다. 종말론을 이야기 하면서 재산을 착취하고, 그런 종말론에 빠져서 자기는 구원받아야 하겠다는 것 역시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구원욕망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예언들은 모두가 가짜 예언인 것입니다.

 

 

2. 성경의 예언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예언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5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고 언약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언약을 받는 아브라함은 자식도 낳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내려가서 사백 년간 종살이하고서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6장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출6:3-9)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시기 위하여 모세를 보내시고 그 언약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전한 그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평생 종살이나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음이 좋거나 예뻐서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기 언약 때문입니다. 그 언약을 지키시기 위하여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에서 가만히 서서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스라엘이라도 광야에서 불순종하던 자들이 멸망합니다. 광야에서 멸망당한 그들의 불순종은 무엇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바를 하나님께서 이루실 능력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시지만 결국 자기의 언약을 이루어 내셔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들여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언약 완성을 통한 영광을 하나님 홀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모세가 계시를 받았습니다. 율법도 받고 장차 일어날 한 선지자에 대한 예언도 받게 됩니다. 신명기 18장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18:15) 이 말씀은 어디에서 받은 말씀이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 계속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18:16-22) 진짜 선지자는 그 하신 말씀이 반드시 성취가 되는 것이기에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망하게 되고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똑같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그 말의 증험과 성취함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선지자는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예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언자들의 공통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면서 예언한 자들이 백성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배척을 당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을 정죄하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꿈, 가정의 꿈, 자기가 속한 단체가 회사이든, 국가이든, 교회이든 자기들의 욕망을 위한 장래를 꿈꾸면서 자기들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가려는 자들에 대해 심판을 선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을 증거 하는 자들이 받은 선지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겠습니다. 이사야 50장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50:4-6)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는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아듣고 학자의 혀로 곤핍한 자를 도와주려고 하는데 그런 예언자를 때리고 수염을 뽑고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는 자에 대하여 이렇게 대접한 것입니다. 이 예언자들의 완성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예언을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하셨는데 세상이 그를 미워하여 강도처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아래 저주아래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이제 무슨 예언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은 멸망한다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불에 타 사라질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피로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서 돌이키시고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사시기를 바란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인 것입니다.

 

 

3. 오늘날의 예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것을 증거 하는 것이 예언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3절에서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는 것이며 권면하는 것이며 위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교회에 예언을 함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무슨 말로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케 되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무엇이 위로가 되는 것입니까? 잠시잠간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이 위로인 것입니다. 지금 중국이나 북한의 지하성도들은 고난 중에 있음을 잘 압니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이 위로겠습니까? 주님이 곧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한 위로는 없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우리들에게는 위로로 들리십니까? 아니면 저주로 들리십니까? 아마도 위로로 들리는 사람은 소수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예언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의 날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을 나그네로 외국인으로 살아가자고 하는 이런 예언의 말씀이 사라졌습니다. 그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이 땅에의 높아짐을 외치는 소리가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가는 곳마다 환영 받는 일은 극소수였고 온갖 고난과 핍박과 매 맞음과 헐벗음과 위협 속에 춥고 떨었습니다. 참된 예언자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4장입니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4-6) 구약의 마지막 성경의 마지막 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저주로 땅을 치신다고 합니다. 그 엘리야로 온 자가 세례요한이며 이 세례요한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두면 저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믿는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편안하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자들에게 오늘도 예언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살라질 것이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예언을 믿으시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예언을 하려 하시며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사람들이 점집이나 기도원 같은 곳으로 기도를 받으러 다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가짜 예언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언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믿지 아니하는 이스라엘임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시키시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게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라도 광야에서 멸망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를 어떻게 구별하며, 참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미움 받고 배척받 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오늘날 이 땅에서 참 선지자들이 해야 할 예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6.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언이 사라져 버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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