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0,714
오늘 : 133
어제 : 280

페이지뷰

전체 : 78,737,715
오늘 : 809
어제 : 1,339
조회 수 13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섬기는 자 되라

본문 / 고전14:26-40

 

 

1. 사도의 권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그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허락하신 것입니다. 몸이란 여러 지체가 서로 도우면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도 여러 지체들이 서로 덕을 세우기 위하여 은사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덕을 세운다는 것은 형제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유익과 만족이 아니라 형제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에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랑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14:26)고 합니다. 여기에 ‘어찌할까’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은사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진 것인데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고 있으니 이런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모일 때에 여러 가지 은사가 있으나 그 모든 은사는 덕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은사 중에 찬송시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계시와 방언과 통역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도 계시가 주어지는 것인가 하는 궁금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사도시대와는 다릅니다. 사도의 사도됨이란 계시를 위하여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바울시대에는 계시가 아직도 부분적으로 주어지고 있었기에 계시가 있고 방언과 통역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방언이나 예언이라고 하면, 무당이 입신한 상태에서 자기의 의식과 상관없이 나오는 말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요즈음도 어떤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하며 예언한다고 하면 꼼짝없이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와 예언과 방언이 부분적으로 주어질 그때도 의식 없이 무질서하게 하는 것을 금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14:27-28)라고 합니다. 여기 ‘너희가 모일 때에’ 라고 하였으니 교회 안에서 방언을 하게 될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차례대로 할 것이며, 한 사람은 통역하고,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 합니다. 잠잠 하라고 하는 것은, 교회에 덕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잠잠 하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는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언에 대해서도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 지니라”(고전14:29-30)고 합니다. 예언도 두 세 사람이 차례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은 분별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언한다고 다 옳은 예언이 아니기에 분별을 하라는 것입니다. 거짓 예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예레미야 14장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 하는도다~~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렘14:13-16) 이 말씀 앞에서부터 보면 유다는 범죄 하였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실 것이라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평강을 주신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거짓 예언이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포된다 할지라도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언약을 하신 적이 없으신데 자기 생각대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예언인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23장에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렘23:16)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선포하는 것, 그것이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포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거짓 예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누가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며 선포해도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예언은 지금도 똑같이 선포되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주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예언을 하다가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하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잠잠하라고 하는데 왜 잠잠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14:31-33)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예언하라고 합니다. 만약 두 세 사람이 예언을 받은 것이 있다고 한꺼번에 말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의 제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을 분별하고 제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 사람씩 차례로 말하여 모든 사람이 배우고 권면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요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고전14:33-36)고 합니다.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고린도 교회의 여자들도 잠잠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번째 잠잠 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배우려면 집에 가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 즉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말씀에 대해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반대하고 나섭니다. 그러면 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하는지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주의 명령

먼저 디모데전서 2장입니다.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2:8-15)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여자들의 마땅한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는 것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서신서를 쓸 때의 고린도교회는 무질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라는 말씀도 질서의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 또 한 가지는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의 말을 듣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를 주장하기 위한 말들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말이 많은 것입니다. 자기들이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바울 사도만 계시를 받느냐면서 무시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를 비난한 사람들처럼 바울 사도의 말을 무시하기에 무어라고 합니까?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전14:37)고 합니다.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도의 권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완성되어 기록된 이 성경의 말씀만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는 것입니다. 여성들에게는 이 말씀이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니지만 이 말씀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이 말씀을 듣고 잠잠하셔야 합니다.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분별없이 나서서 말하는 것을 바울 사도가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자가 잠잠 하라는 것은 여자를 무시하거나 깔보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해짐으로 보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 앞에서 잠잠한 신부가 된다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는 여자만 잠잠할 것이 아니라 남자도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다. 방언과 예언을 하는 남자들도 순서에 따라 하고, 다른 사람이 하면 잠잠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8절에서도 잠잠하라고 하고, 30절에서도 잠잠하라고 합니다.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여자에게 잠잠하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역할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런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는 신랑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 앞에서 잠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3. 은사 받은 자의 섬김

그런데 우리는 잠잠해야 할 일은 잠잠하지 않고 오히려 잠잠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잠잠한 것이 문제입니다. 처음에 은사를 말씀하면서 교회로 모인 성도란 모두가 다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드러나 보이는 은사가 있고, 숨겨진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더 높고 낮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은사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은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주어진 은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받은 몸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모든 은사란 덕을 세우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라 했습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형제자매를 유익하게 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교회의 유익을 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가 교회의 유익을 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피로써 값 주고 사신 것이기에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편한 대로 사용하라고 주신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그 몸을 형제자매를 섬기는 일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아기를 둔 엄마도, 직장을 가진 분도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섬길 수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섬기고 자기 이익을 앞장세우기에 섬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삶과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란 한 몸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우리 몸의 지체가 서로 섬기듯이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섬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더욱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몰래 빠져 나가는 것이 옳다고 여기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차라리 함께 부딪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서 배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몸이라면 한 몸 된 몸에 분쟁이 없어야 하는데 몸에 온갖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온갖 죄인들이 모인 곳임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그 다른 지체를 섬기며, 그 지체의 유익을 위해 내가 주의 마음으로 수고하고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나 자신도 잠잠하지 못하는 인간임을 알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무언가 조그마한 것이라도 잘한 것이 있으면 잠잠하지 못하고 자랑하고 싶고, 조금 억울한 일이 있으면 몇 배를 부풀려서라도 말하고야 마는 자신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봉사를 하면서 나 자신을 발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청소를 하면서 나 같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몸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면서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하다가 보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먹은 커피 잔을 씻지 않고 쌓아 놓기만 하는 걸 보면 화가 납니다. 잔득 쌓인 쓰레기를 치울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가 더 쌓아 놓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납니다. 휴지와 아이들 귀저기까지 함부로 버려진 것을 보면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화가 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떻게 섬기셨는가를 생각하면 나의 죄를 알게 되고 주님께 회개의 마음과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함께 부딪히지 않고서는 이런 은혜를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때로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기도 하고, 교회 안 오면 이런 꼴 보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싶은 마음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주께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래서 주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존재임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예수님께서도 곤욕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대신 곤욕을 당하셨습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곤욕을 당하셨지만 마치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 입을 열지 않고는 참지 못할 억울함이 있지만 우리 주님은 그 입을 닫으셨습니다. 이런 주님 앞에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 내가 이런 죄인이기에 주님께서 대신 죽으시지 않고서는 어떤 가능성도 없는 인간입니다.’ 하면서 주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도 그치고 방언도 그치지만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복음은 계속 됩니다. 복음 앞에 우리 마음속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됨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믿게 되는 것이 이 시대의 은사요 기적인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은 잘하는 것이 있는 줄 알았는데 복음을 듣고 보니 나 행한 것이 죄 뿐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주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며 이런 교회에서 서로 섬기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더 깊이 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섬김을 받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20장을 보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이런 은사와 기적을 날마다 맛보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섬김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시험 드는 자가 아니라 내가 지체를 섬기지 못하는 것에 무릎을 꿇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섬기러 오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섬김을 받았다면 이제 그 주께 받은 섬김을 이웃의 지체들에게 아름답게 표현되어 지고 나눠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본문에서 방언을 어떻게 하라고 하며 또 그렇게 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오늘 본문에서 예언을 어떻게 하라고 하며 또 그렇게 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교회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고 잠잠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우리가 주어진 은사로 우리의 이웃들을 섬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우리가 교회 가운데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6.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발견되어 지는 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73 6월 20일 2부 /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우리의 신앙 관리자 2010.06.19 1402
572 1월 30일 1부 / 그리스도의 날에 견고하게 하시리라 관리자 2011.01.25 1386
571 8월 29일 1부 / 오해된 신앙과 합격점을 받는 신앙 관리자 2010.08.28 1385
570 5월 13일 2부 /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관리자 2012.05.19 1384
569 1월 6일 2부 / 능히 서게 하실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1 관리자 2013.01.21 1384
568 11월 14일 2부 / 우리를 변화시키는 십자가의 능력 관리자 2010.11.12 1376
567 2월 20일 2부 / 십자가의 도와 우리의 자랑 관리자 2011.02.18 1373
566 3월 4일 2부 / 새 언약의 일꾼과 영원한 영광 관리자 2012.03.04 1373
565 10월 10일 2부 / 빌라도와 같은 판결을 하며 사는 우리 관리자 2010.10.09 1371
564 6월 17일 2부 /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관리자 2012.06.16 1364
563 4월 1일 2부 /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과 같은 믿음 관리자 2012.04.04 1362
562 11월 13일 2부 /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알게 하노니 관리자 2011.11.13 1360
» 11월 6일 2부 /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섬기는 자 되라 관리자 2011.11.06 1359
560 10월 24일 1부 / 십자가 현장에서의 거룩한 음성 관리자 2010.10.24 1357
559 3월 3일 2부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 관리자 2013.04.10 1351
558 12월 16일 2부 / 꿈꾸는 사람들은 화 있을 진저 관리자 2012.12.16 1344
557 10월 3일 1부 / 진리를 듣고도 육신적은 삶을 사는 자 관리자 2010.10.02 1339
556 8월 22일 2부 / 자녀 되고 지체된 우리에게 요구된 신앙 관리자 2010.08.21 1337
555 9월 12일 1부 / 하나님께 붙잡힌 우리의 운명 관리자 2010.09.11 1334
554 4월 3일 2부 / 하나님의 것이 된 우리의 자랑 관리자 2011.04.02 1322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