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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의 소망되신 부활의 첫 열매

본문 /  고전15:20-28 


1. 믿는 자들

지난 주 말씀에서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영광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에서 복 받고 잘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온통 환난과 핍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믿음을 버리지 아니한 것은 더 나은 부활의 세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은, 성도가 소망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영광이 아니기에 그렇다는 것이며, 도리어 성도란 이 세상의 영광이 배설물과 해가 된다는 것을 아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얼만 전에 수능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자녀가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였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게 여기겠습니까? 더군다나 학교를 다니면서 고시를 패스하고 높은 관직에 있다가 대학의 총장 같은 위치에 이른다면 얼마나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바라는 것들이 이런 것이라면 이 질문에 한 번 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대학총장과 시장 그리고 회사 사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결국 모두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영광의 정점에 선들 결국은 다 사망의 자리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세상의 것이라면 이미 그런 것들을 누리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쌓아놓은 사회적 명성이나 그 이름도 죽음 앞에서는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이라는 자리는 아무리 높은 명성과 학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피해 갈 수 없는 자리인 것입니다. 생사화복은 우리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약 그러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이 땅을 살아간다면 성경에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았던 자들이 배설물로 여겼던 것들을 뒤집어쓰고 살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약속의 세계, 부활의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은혜로 주셔야만 되는 것이지 노력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상관없는 사람으로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모습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 앞에 끌려 나와 부끄러워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앞에서 용서받고 정죄하지 않는 다는 기쁨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장에 있는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있는 라합에 대해서도 성경 여호수아서에 보면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라고 그 직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도 자신을 세리라고 드러내고 있으며,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 자신은 살인자요 포행자요 훼방자라고 합니다. 성경이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세계는 그런 것들이 다 용서되고 영광의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부끄러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활의 세계에서 부끄러운지 영광스러운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끄럽고 힘들다고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끝이 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런 자들까지 하나님은 다시 살려내십니다. 그래서 영원한 부끄러움과 고통 가운데 집어넣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 세상에서는 인정 받을만한 어떠한 위치와 소유를 가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영원한 영광에 참여시키실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1-3) 이 말씀의 내용은 마지막 날의 비밀을 예언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자와 영원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가 있을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자란 구원을 얻는 자인데 이런 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자들은 무궁한 부끄러움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런 계시와 예언의 내용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여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끄럽지 않고 멋있게 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영광의 세계에 살고 싶은지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다 하고 싶겠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사는 이 세상의 영광에 있다 보니까 자신의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자존심 상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약함을 감추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온갖 말이 다 나오니 교회에서는 모두 가면을 쓰고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는 일체의 선함과 의로움이 없음을 고백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을 소망 하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 못하고, 세상의 영광도 없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 중에 더 불쌍한 사람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첫 것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셨다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성경에서 첫 것은 하나님께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곡식의 첫 열매만이 아니라 짐승도 첫 것의 수컷은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 사람도 장남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모든 장남을 대신하여 레위지파가 드려지는 것입니다. 왜 처음 것을 드리라고 하는지 출애굽기 13장에 보시면 그 답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출13:11-16)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열 번째 재앙이 바로 장자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장자와 첫 수컷은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드려짐이란 희생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장자의 개념이란 자기의 희생으로 나머지를 살려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장자는 르우벤 이었지만 장자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장자의 역할을 바로 요셉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장자의 몫과 같은 두 몫, 즉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 속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셉이 희생으로 말미암아 형제들을 살려냈기에 장자의 명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혈통적인 서열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희생하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에스겔 44장입니다.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겔44:30) 에스겔서는 새 성전과 새 언약을 말합니다. 옛 성전이 우상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이 신이 떠나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처음 익을 열매와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처음 것이 제물로 희생되어져야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입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11:16) 이 말씀도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하면 떡 덩이도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의 말씀과 오늘 본문에 있는 이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이 연결이 됩니다.


3. 첫 열매되신 주

오늘 본문에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까? 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겨주신 자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첫 열매로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희생만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기에 그 첫 열매의 영역 안에 있는 자들은 다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거룩하니 그분으로 말미암은 우리도 거룩한 것입니다. 다시 본문말씀입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1-2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기에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으며,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이라 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담의 후손으로 사망의 권세아래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서 죽은 자들을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3-24) 여기서 순서가 나오는데, 순서를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첫 열매의 희생과 부활이 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나 지금 예수를 믿는 자들이나 다 부활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순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에 살아서 믿는 자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3-18)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위로가 되십니까? 아직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가 과연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환난을 당하여야 이 말씀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사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너무나 호사스러운 것입니다. 도대체 믿음으로 인한 고난과 환난과 핍박이 있기나 한 것인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불평과 불만투성이인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의 이런 말씀이 위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내가 괴롭고 외로우니 사랑해달라는 투정 외에는 우리가 가진 신앙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고전15:25-27) 예수님이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실 것입니다. 불가불이란 이중 부정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님이 왕 노릇하신다는 것입니다. 재림하셔서 제일 나중에 멸망시킬 것이 사망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사망을 이기시고 왕 노릇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말씀이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십니까? 그런 사람은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15:28)는 이 말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만유란 모든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 모든 것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희생과 수고가 그렇게 만들고야 마실 것입니다. 그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어 매일 매일의 삶이 기쁨 가득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말씀에 우리가 세상의 성공만을 부러워하며 살면 무엇과 같다고 하였습니까?

2. 성경이 믿음의 사람들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정확하게 기록하신 이유는 무엇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에서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3. 성경에서 말씀하는 ‘첫 것’에 대한 의미는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4.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 됨이 우리의 소망인 까닭은 무엇입니까?

5. 오늘날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무엇이며, 또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6.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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