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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십자가 속에 감추어 두신 복음의 광채

본문 /  고후 4: 1- 6

 


 

1. 수건 쓴 자

지난주에는 모세가 쓴 수건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수건이 가려져 있으면 복음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면 그 수건이 벗겨져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바울사도 자신이 수건에 가려져 있을 때는 예수는 이단의 괴수이며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영광중에 계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수건이 벗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 영광의 주님을 증거 하기 때문에 자신이 영광스러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죽이는 직분인 의문의 직분도 영광스러웠는데 살리는 직분인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러운 직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직분을 맡은 자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 결코 영광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고후4:1)하여 바울 사도는 자신의 직분을 다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 다시 자신의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해 대적하면서 자신들이 바른 선생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추천서를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웅변술과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들의 가르침에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4:13-14)고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이 전할 복음을 처음 받아들일 당시의 상황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 심한 질병으로 인해 요양을 하고자 갈라디아 지역을 방문했으며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갈라디아 교회는 고린도 교회나 바울에게 적대적인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런 바울을 무시하지 않고 사도로서 영접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즉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갈라디아 교회도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바울의 복음을 배척하고자 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과 복음을 전하는 자의 직분을 말하는 이유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의 주장을 경계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고린도 교인들이나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보다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넘어가는 것입니까? 그들은 추천서도 있고 설교도 잘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핍박과 고난의 모습이 아니라 고상하고 우아하고 멋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영광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 영의 직분, 살리는 직분을 받아서 증거를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난당하고 핍박받고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하시는 것은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미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자신이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주어진 것이지 자기의 자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추천서나 세상의 자랑거리를 들고 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서 저 같은 사람을 청빙하여 오라고 하겠습니까마는 혹 그런 일이 벌어진다든가 아니면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셔서 저를 일찍 불러 가는 일이 생겨서 새로이 이 교회 담임하실 목사님을 청빙하여야 한다면 과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면 괜찮다 여기겠느냐는 것입니다. 똑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인데 한 사람은 모든 외부적인 조건이 좋지 않고, 한 사람은 누가 보아도 모든 조건이 좋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을 택하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같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이왕에 외국 유학도 갔다 오고, 박사학위도 있고, 외모도 멋있고, 집안 배경도 좋고, 거기다가 겸손하고 그런 사람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장로를 투표할 때도 복음을 알고 헌신하는 정도도 같지만 한 사람은 부자이고,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인데 둘 사람 한 사람만 뽑아야 한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투표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 확률은 전자가 훨씬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눈에는 그런 분들이 더 유능하여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이 바로 교회가 세속화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긍휼이 사라지고 세상의 자랑거리를 앞세우면서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를 단장하는 그 모든 단장품은 철두철미하게 제거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나를 꾸미고 가꾸고 만들려고 치장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입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3-4) 사람의 그 어떤 화려한 명예와 높은 자리와 그 가진 물질로도 자신의 죄와 부끄러움은 다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단장품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2. 바울의 직분론

다시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고후4:1) 바울이 이 직분을 받은 것은 긍휼이라고 하며, 긍휼로 직분을 받았기에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곳이 수도 없이 많지만 성공적인 곳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복음을 듣고 기뻐하다가도 거짓 선생들이 거짓 복음을 전하니 그런 것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디모데후서 1장에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딤후1:15)고 말합니다. 또 4장에서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0-11)고 합니다. 이런 가슴 아픈 일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디모데전서 1장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1:12-17) 자신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요 죄인중의 괴수였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자신의 구원이 된 것처럼 후에 예수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후에 믿게 된 자들이 생각하기를 ‘바울 같은 자도 긍휼과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받았는데 하물며 우리들이야 왜 긍휼을 입지 못하겠습니까?’ 하는 이런 모델로 바울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에 대해 바울의 열심만을 너무 많이 이야기합니다. 바울처럼 전도하고 바울처럼 열심내자 그렇게 합니다만 그러나 정작 바울 자신이 고백하는 사도된 증거는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고 오래 참으신 주심을 증거 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 때문에 부름 받았는지 알기에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부름은 결코 자기의 의나 자기 자랑이나 자기만족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된 자의 모습이며 주님의 부름을 받은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사도들은 자신들의 부족과 연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외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후4:2)고 합니다. 자신의 직분은 긍휼로 된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을 알아주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력서나 추천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이며 행하지 아니합니다. 외모를 꾸미는 자들은 자기들의 부끄러운 일을 숨깁니다.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속임으로 행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할 것인 양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무료성경신학원이라는 곳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름은 늘 바꾸는데 그곳에 가면 모든 성경을 제대로 해석한다는 선전합니다. 그러니 기존의 교회의 목사들은 벙어리 개요, 거짓 선지자이기에 참선지자인 자기들의 지도자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다 비유로 다 풀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그렇게 풀어내는 것입니다.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잡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리를 증거 합니다. 그 진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성경을 다 외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성경의 말씀을 다 지킬 수도 없지만 성경의 말씀을 지킨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이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3. 복음의 광채

이 간단한 진리를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다음 말씀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 복음이 가려졌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려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은 세상의 영광을 약속하는 사단이기에 세상의 영광에 취하여 있는 자는 십자가에 감추어져있는 하늘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우리의 실력이 결코 아님을 압니다. 우리도 다 세상의 영광에 취하여 살던 사람들입니다. 에베소서 2장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10)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가 어떤 상태인가 하면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즉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마귀의 종이 되어서 세상의 영광만을 목표로 살고 있는 자들이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우리도 다 그 가운데 행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여 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긍휼로 은혜로 된 것이기에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 은혜의 영광을 증거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광채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분이 복음의 광채이며 하나님의 형상임을 증거 합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아직도 십자가 속에 감추어두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만 구하여 내시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세상의 영광을 좇아가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고 합니다.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우리가 너희의 종 됨을 증거 한다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고린도 교회를 섬기는 종으로 보냄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이기에 주님이 오래 참으시고 긍휼을 베푸시기에 자신이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직분이며 의의 직분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광채를 보았습니까? 데살로니가후서 1장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1:8-9) 복음을 복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형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복음의 광채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재림하실 것이며, 성도는 그 영광에 참예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는 말씀처럼 어둠에 빛이 있으라 하신 그 창조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처음 창조는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범죄 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친히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놀라운 소식이 기쁨과 감사의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 영혼을 비춰짐으로 말미암아 세상 영광이 아닌 십자가 뒤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참 영광을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그 영광에 참예할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바울 통하여 복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선생들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교회가 세속화 되는 지름길은 무엇이며 그것을 막기 위한 길은 무엇입니까?

3. 사도 바울이 어렵고 가슴 아픈 일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말씀을 혼잡케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5.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받지 못하는 이유와 또 그 진리를 받은 사람     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6. 우리가 전에는 어떤 자들이었으며 또 지금은 어떤 자가 되었습니까?

7. 하늘의 영광을 아직도 십자가 속에 감추어 두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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