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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본문 /  요17: 3                  


오늘 본문은 영생에 대한 정의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의 영생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을 설명하는 것과는 달리 영생에 대한 적극적인 면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이 내용을 통해 영생에 관한 더 깊고도 넓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영생

영생에 대해 우리들에게 가장 익숙한 말씀인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타난 구원에 대한 설명은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강조된 것으로 구원의 궁극적 목적과 목표에 대해서는 설명이 덜 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에 대해 더욱 더 적극적인 오늘 본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신앙생활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이 힘들고 가난한 것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이해가 요한복음 3장 16절에만 머물러 있고 오늘 본문의 이해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영생에 대한 이해와 신앙의 수준이 초등학교 3학년 16반 정도에만 머물러 있지 더 높은 학년과 수준인 17학년 3반으로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 얻은 것을 알고 있으며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지금 죽어도 우리는 천국에서 깨어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이란 말은 이런 의미들을 포함할 뿐 아니라, 그 보다도 훨씬 크고 넓은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생이란 단지 시간적으로 영원토록 존재한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영생이란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거기에 덧붙이거나 다듬을 필요가 없이 온전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꽃으로 비유하면 더 이상 손댈 필요 없이 만개한 아름다움과 완성의 극치에 와 있다는 표현이 영생이라는 말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도 자신에 대해 영원하시다는 말씀을 자주 사용 하시는데, 그 말씀 속에는 시간적으로 한없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부족하여 더 채워야 되거나 혹은 지금 있는 것 중에 버려져야 할 부분이 남아있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서의 영광과 존귀와 거룩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영생에도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영생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에 우리가 우리의 경험과 과정 속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이것은 시작이 있고 도달해야 될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단회적이고 진전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단회적인 변화를 우리는 '신분적인 변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단번에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된 신분이 그 신분에 걸 맞는 수준으로의 완성에 있어서는 아직도 시간이 더 걸리는 일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17장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1-24) 여기서 보면 모두가 아는 것에 관한 싸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의미는 단지 정보를 갖고 있다는 뜻보다도 훨씬 더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키가 몇이고, 안경을 끼었고, 살이 찌고 등의 것을 가지고 그를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안다고 할 때에는 그의 성격, 즉 속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에 종종 하나님께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셨다는 어떤 정보를 아는 정도의 일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것보다도 더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말씀은 전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란, 아는 것의 대등한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통속이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똑같다는 뜻입니다. 아는 일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서로가 모르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들어가서 인격 대 인격, 존재와 존재의 속성이 그냥 한 통속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영생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그런 부분에 있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신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지 '하나님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체가 목적이 되어있는 신앙은 참으로 적다는 것입니다. 장로교 소요리 문답 중에, 그 1번 문제가 '사람의 제일 되는 본문이 무엇이뇨?'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원토록 그를 기뻐하는 것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 자신이 목적물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를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영생인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우리가 놓친다면 신앙생활이란 얻은 것에 대한 보답의 싸움이 되고 말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자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그 아프고 험한 가시관과 십자가를 지시며 구원해 주셨는데 어찌 내가 이러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를 보상하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성경이 요구하고 있는 최고의 경지의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우리들의 신앙에 있어서 어려운 부분입니다.


2. 영생의 참 의미

로마서 6장에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들이 있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15-23) 여기서 영생에 대해서 말하되 어떤 과정이 진전되어 가는 것을 말하면서 도달해야 되는 목적지에 대해서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죄의 종으로 드렸기 때문에 사망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우리 자신을 의의 종으로 드려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생의 목적이요 과정인 것입니다. 19절 끝부분을 보면 '이제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이미 거룩한 신분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죄에 종노릇 하던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분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의롭습니다만, 행실로는 아직도 하나님 자녀답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보낸 서신서들을 보면 다 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성도들이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음행이 있었으며, 투기가 있고, 싸움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이전처럼 죄에게 종으로 드려서 악행을 반복하지 말고 이제는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이 거룩함에 이르라는 말은 도달해야 될 목적지가 있고 수준이 있을 때에 사용하는 표현입니다만, 영생이란 것이 바로 그런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받아 멸망당할 자리에서 건져 내신 다음에 이제는 새롭게 도달해야 될 곳이 있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서로 간에 아무것도 감추인 것이 없고 뜻이 같으며 성품이 같은 자리에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말씀 하신 바와 같이 신자의 현 위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차적인 목표는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며 그 뜻에 항복하며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생애는 남과의 싸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잘나서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사건과 일에서 죄악스러운 일로부터 벗어나 의와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가진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승리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나를 죄에게 바치지 않고 의에게 바친 자로서의 승리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잘 살고 승리하고 행복한 것은 의에게 자신을 드려 얻게 되는 복의 차원과 방향에서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한 번 더 생각하고, 하나님 편으로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가 나의 죄악 된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더 변화되는 것이 승리이며 행복이며 만사형통인 것입니다. 이 진리를 발견하고 이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무엇으로도 우리에게서 행복과 만족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일에 우리 욕심이 감당치 못해서 흘리는 눈물은 있을지언정 실패도 회의도 좌절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생애입니다. 2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여기 왜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했을까요? 여기서 표현하는 영생은 17장의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3절)는 말씀과 같은 의미로서 사용한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알며(요17:3),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어서 이루게 되는 영생(롬6:22)은 온전함과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장 23절에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온전함과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이 마지막은 영생이니라"(롬6:22)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한다는 것은 거기 가서 죽지 않고 늘 살아있어서 존재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완성이 이루어진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같이 온전함이라는 차원에서 우리의 영생을 생각하고 비추어보면 우리 자신이 아직도 얼마나 모자라고 멀었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서 훈련되어야 하고 채워져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금방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완성적인 차원에서 말할 때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위해서는 십자가만으로는 다 알게 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시고 세상 끝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출생을 시켰지만 출생한 자녀가 완성되는 일을 위해서는 아직도 주님께서 그 권세로서 우리를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며 일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러한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완성시키는 차원에서 권세를 갖고 계시겠다는 뜻입니다.


3. 교회

그래서 에베소서 1장에서도 그 큰 권세를 가지신 주님을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2-23) 하십니다. 다시 말해 만물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를 간섭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도 완성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이르게 하시고자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장에서는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하십니다. 즉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금 지어져 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보면 '내가 너희 안에 있어 우리가 하나가 되려 함은'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지금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헌금이나 내고 봉사와 충성을 드리고 내 소원을 이루려는 곳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거하실 만한 처소가 되기 위해 지어져 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 드리겠다는 정신도 좋지만 그 이전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거하실 만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을 받는 장소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누가 누구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지고 나오지 않습니다.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지어져 가며 하나님께서 거하실 만한 사람이 되는 싸움을 위해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에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4:13)라고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지금도 훈련시키시고 깨우치시고 채우시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돈이나 지위를 맡겨 일을 하게 하시거나 무슨 업적을 남기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단지 하나의 방편일 뿐이며, 하나님의 참 목표는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관심과 싸움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과 그 뜻에 동참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초대받은 목적이며 또한 우리의 복이요 감격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움직여 나의 소원을 이룰까가 아니라, 하나님이 목표가 되어 하나님을 사귀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초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귀면 곧 하나님과 사귀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모든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부요한 것을 추적해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애쓰고 힘쓰고 매달리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이것은 모든 삶을 다 팽개치고 기도원이나 가서 금식하고 통성기도나 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질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목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반드시 목표 삼아야 할 이 일에 우리가 앞장서서 깊은 믿음의 경지에 설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모습이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들에게 도전이 되고, 자극이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삶의 사람들이 교회에 꼭 필요한 자들이며 또한 이것이 교회의 특권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과연 우리는 영생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길을 걷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가장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참된 목표로 회복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풍성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정도가 사도신경을 외우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 뜻에 깊이 동참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능력과 지혜를 펼쳐주실 것이며, 우리들도 감격할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칭찬하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복된 자리에 속히 전진해 나아가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요한복음 3장 16절의 영생과 오늘 본문의 영생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2. 성경이 말씀하는 영생은 무엇이며, 영생에 대한 바르지 못한 이해가 낳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3. 영생의 최종 목적은 무엇이며, 성경이 말씀하는 승리와 행복은 무엇입니까?

4. 우리가 영생의 바른 뜻을 알았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5.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이유와 교회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6. 영생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7. 신앙고백 및 다짐 기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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