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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보는 것으로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삶

본문 / 고후 5: 1- 7

 

 

1. 믿음으로 행한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믿는 고로 말한다.’는 내용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믿는 고로 말한다’는 것은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 이지만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아니하는 믿음의 내용이란,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생각해 볼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의 말씀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보는 것으로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5: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믿음에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믿는 고로 말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도 결국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자기가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알면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위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눈에 보이는 것을 삶의 목적과 목표로 여기고 살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잠간이며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약속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로 모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잠시 잠간 있다가 사라질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3-25)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아서 외친 내용이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베드로 사도가 인용하면서 증거 합니다. 인생은 풀과 같으며 그 인생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결국은 시들고 마르는 것처럼 인생의 영광이 아무리 찬란해도 그 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인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곧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를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하여질 것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은 산 소망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하늘에 간직된 것이라고 합니다. 방금 이 말씀이 과연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와 감사와 찬송이 되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듣기 싫고 피하고 싶은 말씀입니까? 위로가 되시는 분은 지금의 삶이 무언가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듣기 싫은 사람은 자신이 세운 인생의 계획이 착착 이루어져서 무언가 세상에서 희망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 좋든 싫든 간에 이 세상은 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믿고 사는 것을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손으로 짓지 아니한 집

오늘 본문에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고 합니다. 여기서 장막집은 우리의 몸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몸이 무너져도 하늘에 영원한 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왜 만일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이 다 무너지는 육신을 가지고 사는데 왜 만일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아주 임박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정말 오늘 오실까 내일 오실까 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오리라’고 말씀하셨기에 어떤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지나갔다는 사람도 있고, 부활이 없다는 사람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렇게 주님을 기다리다가 혹 죽게 된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위해 영원한 몸을 준비하셨으니 소망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만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3-18) 여기서는 땅에 있는 자의 장막이 무너진 것을 잔다고 표현합니다.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자들도 홀연히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에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미 증거 한대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의 몸을 입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영광의 몸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영광에 들어가신 그런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늘에 속한 장막 집은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가 없는 집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평생에 자기 집을 갖기 위하여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수고하여 새 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그 집은 새집이기에 온갖 유해성분이 나오고 또 그렇게 한 달만 지나면 낡아 보일 뿐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은 썩어지고 낡아지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집은 하늘에 속한 영원한 집으로서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을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의 장막집이라고 합니다. 그 집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갔다가 왔다는 어떤 사람의 간증을 들어보니 땅에서 천국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가 올라오는데 그 재료로 자신이 죽고 나서 살 집이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도를 많이 하고, 헌금이 많이 하면 그 하는 것만큼 집이 넓어지고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평생 전도 한명도 못한 사람들은 자기 집도 없고 합숙소 같은데서 산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노아도 합숙소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세상의 것으로 원인 삼아 말하는 하늘의 결과입니까? 그러나 이런 인과율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하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에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막14:58)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에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발하면서 하는 거짓 증인들의 말입니다. 자기들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을 죽여야 할 죄목으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손으로 짓지 아니하는 다른 성전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성전이 무엇입니까?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21)고 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이 말씀하실 때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예수님이 자기 몸을 성전이라고 한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셨을 때에 그 말씀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전이시기에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처소를 준비하시려고 하늘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처소가 준비되면 자기 백성을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처소는 성령을 보내심으로 마련이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지 아니할 집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보면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벧전2:7) 라고 하여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건축자로서 자기 인생의 집을 설계하고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인생의 성공을 위해 여러 가지를 주워 모았는데 쓸모없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그 중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버린 돌이 하나 있는데 그 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싫다고 버린 그 돌을 가지고 새로운 집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집이란 인간의 죄를 드러내면서 만들어진 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들어 드릴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버린 돌로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집을 지으시는 것입니다.

 

3. 갈망함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런 내용은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것으로 믿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알고 믿는 사람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5:2-4) 이 땅에 살면서 하늘로부터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는지 탄식하면서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덧입는 것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벗은 자란 하늘의 처소를 입지 못한 상태를 벗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나타난 반응은 벌거벗은 줄을 알고 부끄럽고 두려워서 숨고 가렸습니다. 그 아담의 후손들이라는 증거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우리 인생을 가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착함이나 아름다움이나 선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평생 자기를 치장하며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의롭고 바르게 살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벌거벗은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스스로 치장한 이 더러워진 것을 벗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를 닦고 선행을 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벗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덧입고자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하늘의 집을 덧입음으로써 우리 스스로 치장한 죽을 육체가 하늘에 생명에게 삼킨바 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종교들은 모두 다 벗고자 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스스로 깨끗하게 되자고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벗을 수가 없는 인생입니다. 바울사도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핍박하는 것인 줄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믿고 나서는 탄식도 없고 그저 평안하고 행복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온갖 핍박과 환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의 소망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소망한 것입니다. 시편 90편에 보면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시90:1)고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거할 처소가 주님의 품입니다. 그 품에 돌아가기까지 우리는 탄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까지 탄식하면서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게 무너질 집은 이제 그만 수리하고 꾸며도 될 것입니다. 이제는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할 하늘의 장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하늘의 몸을 덧입게 되면 이 죽을 몸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리라는 말씀이 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을 인간은 스스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보증이 되셔서 이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5:5-7)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증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보증이 되셨다는 것은 반드시 이 약속을 이루시고야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무너질 장막만을 영원한 것인 양 붙들고 있기에 성령은 오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무너질 장막이 아니라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하늘의 장막을 사모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과 답답함을 주시는 것은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기 위하여 그렇게 조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담대히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행함의 내용이란 우리가 몸에 거할 때는 주와 따로 거하는 것인 줄 알고 차라리 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고자 하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서 증상으로 나타나는 행함인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를 바라며, 이 행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항상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본문 말씀에 ‘믿음으로 행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인생의 모습은 무엇이며, 거듭난 인생과 아닌 인생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이 왜 고린도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까?

4. 손으로 짓지 아니한 집은 무엇이며, 그 집은 어떤 기능이 있습니까?

5. 오늘 본문에 벗은 자란 누구이며, 그 벗은 자의 특징과 벗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우리가 벗고자 함이 아니라 덧입고자 함으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7. 성령이 오신 이유와 성령의 탄식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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