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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본문 / 고후 5:16-17

 

 

1. 새 것이 없나니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때로는 골동품이라 하여 오래된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새로운 물건,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몸과 마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늘 새로워지기를 위하여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지루해하고 권태로워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취미생활과 생활방식 그리고 가구 배치 같은 것들도 이리저리 바꾸어보기도 하는 것이며, 사업을 하는 이들은 새로운 상품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기에 이 세상에서는 새 것이 나오는 그 순간부터 이미 옛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1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1:1-11) 이 말씀을 기록한 솔로몬 자신은 새로다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다 누려 본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보통 사람으로는 누릴 수 없는 그 어마어마한 것들을 다 시도해 보았습니다. 지혜도 있었고 부자였고 왕이었기에 다 해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업도 늘려보고, 별장도 지어보고, 공부도 엄청 해보고, 돈도 많이 모아보았고, 여자도 천명이나 거느려 보았고, 자기 마음에 원하는 것들을 다 해보았습니다. 무언가 새롭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다 해보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무언가 세상에서 새롭다고 하여 한 번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솔로몬은 다 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즉 자신들에게 어떤 새로운 것이 주어지면 행복할 것이라 여기는 것들을 솔로몬은 모두 다 가져도 보고 누려도 보았지만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렇게 결론이 이미 내려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헛된 것을 향하여 여전히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헛되다고 하는 한 마디 하고 죽을 인생임에도 우리는 불나비가 불속으로 돌진하듯이 그렇게 미련하고 어리석게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녕 이 지상에는 새로운 것이란 없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지상에서는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새로운 피조물이란 무엇입니까? 지상에 없다는 말은 이 땅의 역사적인 세계에서나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을 가지고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이미 있는 것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란, 없는데서 있게 된 것이어야 말로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죽은데서 살아난 것이어야 말로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 새로운 피조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말씀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2. 새로운 피조물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고 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준이 오직 이것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새로운 피조물이지 그 외의 것은 모두가 다 헌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며, 영으로 나야 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이란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다시 만들어진 것을 영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제사장의 규례를 말씀하는 중에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 앞에서 하체가 드러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육체적인 능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희생 제물의 대속의 피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드릴 향을 만들어 향을 피워야 한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가 향을 뿌릴 때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뿌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부패한 인간의 냄새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향기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가리는 것입니다. 부패한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 항상 향을 피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결국 범죄 한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안에서만 용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주어진 새 언약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새 언약 안에 있어야만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다 옛 하늘과 옛 땅에 속한 것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에 속하였기에 그 안에서 아무리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여 만들어 낸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헌 옷이며, 헌 부대인 것입니다. 헌 옷에 새 조각을 붙일 수가 없고, 헌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찢어지고 터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베드로후서 3장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0-13) 새로운 피조물이 아닌 자들은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임하고 물질이 불에 풀어지듯이 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 된 자들은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는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1-8)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오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질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우리는 과연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즉 결국은 불에 타 없어질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성경의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또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어내실 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관심사가 사라질 것들에 굴복하여 살고 있다면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회개하여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3. 분별력

그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5:16)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알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다가 이제는 육신을 따라 알지 않는다고 합니다. 육신을 따라 안다는 것은 육신의 잣대와 시각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잣대로 본다는 것은, 범죄 한 이후부터 인간의 본능입니다. 모든 것을 외모로 보는 것입니다. 두렵고 부끄러워서 나무그늘 아래 숨고, 나무 잎으로 가리는 것이 인간의 범죄 한 이후의 모습입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을 치장하고 가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기준으로 악하다는 것은 멀리하고, 선하다는 것으로 채워서 자신을 가리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 율법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받은 인간들은 도리어 그 율법으로 자기를 더욱 더 치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새로운 피조물 되지 못한 인간들은 그 좋은 것으로도 오직 자기를 꾸미기에만 바쁜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바른 복음을 들어도 그 복음이 들은 자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은 믿음을 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 복음의 내용을 머릿속 지식으로만 삼아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내가 너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자로서 너보다 더 낫다는 것을 드러내는 치장거리로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바른 용도를 알지 못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게 복음을 주신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율법의 완성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복음을 제대로 알면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지식으로나 행위로나 자신을 치장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존재함으로 나로 인하여 내 이웃과 지체들이 유익과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그런 모습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하는 복음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그 좋은 복음을 단지 나를 위한 치장거리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가장 율법을 잘 지킨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보다 더 잘 지키려고 아예 도시를 떠나서 광야의 동굴로 들어간 에세네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율법을 실천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가 잘 아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당시에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자신들이 이렇게 로마의 지배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였기에 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고 싶어 하였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자신들이 남은 자들로서 메시아가 오시면 자신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 다윗과 솔로몬시대와 같은 그런 왕국을 만들어 온 세계가 그들에게 굴복하는 그런 나라를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그런 말씀을 예언해 놓았기에 그것을 사모하며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서는 그런 자신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니 율법을 지킨다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들과 달리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고 성전을 무너뜨리는 자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의 괴수라고 하여 민중을 선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보았다는 말인 것입니다. 바울사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육신의 잣대로 보았기에 그를 믿는 자를 잡아 죽인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의 바울사도는 육신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장입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4-9) 바울이 자신도 육체를 신뢰할 만한 자라고 합니다. 하도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이 많기에 자신도 그러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고 베냐민 지파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고 나서는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만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 된 자의 모습입니다. 사람을 보아도, 예수님을 보아도 육신의 잣대로 보면 아직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도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이 왔기에 바울사도가 새로운 피조물을 이야기 하면서 육신의 잣대로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싸움도 이 싸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웃과 지체들을 육체대로 보느냐 영으로 보느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 축복과 저주, 행복과 불행을 육신의 잣대 즉,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면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기준으로 하면 망한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은 분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도 다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왕이 되셨다면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는 성공과 실패, 복과 저주를 바르게 주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그는 영에 속한 자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아직도 세상의 영광을 바라고 외모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지금 방향을 잘못 잡은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다시 창조된 사람만이 십자가의 능력을 알고 믿게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지만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능력이 됩니다. 헛된 능력을 바라보지 마시고 세상의 힘이 아닌 힘,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는 그 십자가의 힘을 믿고 사는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새 것이 되었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되었음을 알고 믿기에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분별력을 가지고 바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에서는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인생에 대해 뭐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2. 성경에서 말씀하는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3. 제사장의 규례 가운데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의미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4.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면 어떻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까?

5. 새로운 피조물 된 자들의 시각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시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6. 율법을 대하는 이스라엘이나 복음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같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7.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새로운 피조물에 대해 편지한 이유는 무엇이며 또 새로운 피조물로 산 다는 것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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