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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리 준비하는 우리의 신앙

본문 / 고후 9: 1- 5

 

 

1. 준비함

우리는 지금까지 고린도후서 8장을 통해 연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연보에 대한 그동안의 말씀을 요약해보면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연보란 한마디로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은혜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많은 사람이 부요하게 되었다는 은혜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은혜를 받은 것이기에 연보를 하는 것은 특권이기도 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시간에 나눈 대로 연보란 균등케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균등케 함이란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놀라운 은혜의 부요함의 평균화인 것입니다. 그 은혜의 세계가 너무나 부요하기에 자신의 목숨마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내어 놓는 부요함인 것입니다. 죽어도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사는 세계를 은혜로 받았기에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돌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입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그리고 성경은 스데반 집사의 최후를 죽는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란 죽음도 이기는 부요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연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며 자원함과 넘치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라면 미리 준비하라고 하지 않아도 다 잘 되지 않겠는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보면 매주일 연보할 때에 늘 기쁨과 감사와 넘치는 은혜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랜 시간동안 매주일 헌금하다가 보니 그냥 습관적으로 하기도 하고 또 의례히 하는 것으로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가 하는 겁니다. 아마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며 헌금을 하신 분들은 자신의 수입 중에서 얼마를 미리 헌금으로 떼어 놓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것도 새 돈으로 미리 준비하여 헌금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방금 ‘미리’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원하여 기쁨이 넘쳐서 힘에 지나치도록 하는 헌금하고 다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기분파들입니다. 기분나면 온 국민이 다 들고 일어나서 붉은 악마가 되기도 하고 또 식기도 잘합니다. 부흥회 때 분위기가 고조되어서 헌금할 사람 손들라고 할 때 손을 들거나 또는 어떤 헌금에 대하여 작정으로 약속해놓고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부흥회 해놓고 헌금이 얼마나 나왔다고 또 작정을 얼마나 하였다고 좋아들 하지만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면 과도하게 작정한 헌금이 부담이 되어서 결국 교회도 못나오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책정을 해 놓고서 서원한 것이라면 손해가 와도 갚으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억지로 하게 되는데 그런 연보들이 참 연보일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미리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입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고전16:1-3)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직접 가서 부흥회를 해서 작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미리준비 해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된 연보를 은혜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미리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누구에게 큰 감동을 주어서 큰 감돌을 받은 그가 많은 돈을 내어 놓으면 좋을 것이라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모든 일이 되는 곳이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면 당장 ‘아니 돈 없으면 어떻게 목회자 사례비주고 교회 운영 하겠는가’ 생각할 것입니다. 재정부에서도 교회 통장에 잔고가 얼마 없으면 걱정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교회란 돈이 없어서 안 되는 교회라면 그곳은 이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연보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 재정이 없다는 것은 성도들이 연보를 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은 결국 은혜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이 교회이어야 하는데 그 은혜가 없어 교회 재정이 어려울 정도라면 그곳이 이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2. 참 연보

이제 오늘 본문을 보면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고후9:1-2)고 합니다. 성도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고린도 교인들의 원함을 알기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쓸 것이 없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성도 섬기는 일로 연보 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고 있고 또 일 년 전부터 예비하고 있기에 그것을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자랑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린도 교인들을 자랑하니 마게도냐의 많은 사람들도 자극을 받아서 분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고린도 교회에 연보를 말하기 위하여 세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까? 3절에 보면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9:3-4)고 합니다.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 교인을 자랑하였는데 이 자랑이 헛되지 않고 사도가 말한 것처럼 준비하게 하기 위하여 보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리 준비 되어 있지 않다면 바울사도가 마게도냐를 지나서 고린도 교회로 가면 마게도냐 교인들도 함께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될 텐데 그러면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해 놓은 것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끄러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가 이 믿는 것에 부끄럼으로 당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서 은혜로 연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하였는데 만약 연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은혜의 일이 무엇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도록 세 명의 형제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참 연보답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해외에서 선교 사역 중에 선교사님이 오시면 그 전 주에 미리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선교 사역를 위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는 의미에서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전에 광고 없이 선교 사역을 위해 연보를 하게 된다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억지로 마지못해 하게 될 소지가 많습니다. 물론 그래도 어떤 성도들은 감사함으로 참여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성도들은 체면상 마지못해 연보를 하게 된다면 이것은 참 연보가 아니라 억지로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참 연보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연보의 내용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 전반에 걸친 내용입니다. 신앙도 어느 날 갑자기 감동받았다고 해서 붕붕 떠서 날아다니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은혜 받아서 날아다니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평소에 삶 속에서의 신실함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누구에게 부탁하는가 하면 신실한 자에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미리 준비하는 것은 연보만이 아니라 모든 신앙생활의 전반에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자신의 영혼을 도로 찾는 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쌓아둔 재물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화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아끼면 똥 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이 과하면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맛나고 귀하고 좋은 것은 은밀한 곳에 숨겨 두었다가 나중에 혼자 먹으려고 했는데 그만 까맣게 잊어 버려서 그만 먹지도 못하고 폭삭 썩은 경험들이 한 번쯤은 다들 있으실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야기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이 내려 주신 만나를 아껴 두었다가 썩어서 벌레가 먹고 냄새가 났습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고 하는 지금 준비하며 사는 것이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만 미리 준비하는 것이 참 연보가 아니라 참된 신앙생활은 범사에 미리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 믿고, 나중에 봉사하고, 나중에 참여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오늘이라고 하는 지금부터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종말론적 삶을 사는 성도들의 모습이며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라는 시간이 보장된 게 아닙니다. 우리 마음대로 내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믿으시고, 지금 봉사하시고, 지금 모든 사역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9장 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2)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2)연보답고 3)억지가 아니니라”(고후9:5)고 합니다. 그런데 연보라는 단어 앞에 2)이라는 번호가 있습니다. 이 표시는 다르게 번역이 된다는 표시입니다. 성경 밑에 보시면 각주가 달려있습니다. ‘헬, 복’이라고 되어 있을 것입니다. 즉 연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억지라는 단어 앞에는 3)이라는 번호가 있는데, 이것 역시 밑에 보면 ‘탐심’으로 표시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미리 준비하지 않는 연보는 탐심으로 하는 연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연보답고 억지(탐심으)로 한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주를 사랑하며 주의 은혜에 감사하여 준비해 두는 것이 참 연보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준비된 연보는 단지 연보가 아니라 복인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온갖 복과 저주를 이야기 하며 돈을 내게 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것은 복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탐심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은 단지 연보만이 아니라 성도의 모든 신앙생활에서 미리 준비하며 사는 것이 참 신앙답고 억지나 탐심이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3. 준비하는 자

어느 날 인터넷에 어느 여학교 급훈이 화재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10분을 공부하면 남편이 바꿔진다.’ 지금 10분을 더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남편이 바뀌어 진다는 것입니다. 참 현실성 있는 급훈입니다. 그러니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에서의 그렇게 급훈을 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얻은 남편이 아내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습니까? 그 남편이 몇 년을 책임져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도 이렇게 미래의 남편을 위하여 열심히 준비하는데, 우리의 영원한 신랑이 되실 주님이 원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어둘 사항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라고 부르는 바로 이 시간에 준비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미리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별세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이후의 삶을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무엇을 의논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별세를 의논하신 것입니다. 갑자기 어느 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미리 창세전에 준비되었고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준비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 믿으라고 하면 그런 것은 늙어서 힘이 없을 때나 믿는 것이지 젊어서는 할일이 많아서 바빠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하를 얻어도 내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까지도 그런 생각에 빠져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미루며 살아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미루지 마시고 오늘이라는 지금 이 시간에 준비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입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13) 우리가 잘 아는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뒤에 이어지는 달란트 비유와 더불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사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처녀들이 신랑을 맞이하는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은 준비하였는데 기름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이 예비 되었습니다. 등불이 꺼져가자 기름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슬기로운 처녀가 미련한 처녀들에게 그렇게 하면 둘 다 모자랄 테니 기름집에 가서 사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신랑이 왔고 문은 닫쳤고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이만큼만 있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신랑을 맞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긴 주인이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 처녀의 비유처럼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사는 자들은 신랑이 더디 온다 할지라도 잊지 않고 준비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또 달란트의 비유처럼 주인이 반드시 오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주인이 보이지 않더라도 주인을 눈앞에 보듯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준비하며 사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고 나는 종이며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만 미리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죽음도 재림도 미리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기에 참 복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런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도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런 복을 누리는 자라면 우리의 연보가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항상 주 안에서 준비되고 또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시 오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더욱 더 세워지고 위하여 매일 매일 주 안에서의 우리의 본분과 모습을 점검하고 살아감으로 주 안에서 준비된 신부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 받는 예원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말씀에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교회 재정이 없어 주의 일이 안 될 정도면 이미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미리 사람들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종말론적 삶을 사는 성도들의 신앙과 삶은 무엇입니까?

5. 오늘 말씀에 미리 준비하는 연보와 미리 준비하지 않는 연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오늘이라는 지금 우리가 준비하여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열 처녀의비유와 달란트를 맡은 종들의 비유에서 우리가 교훈 받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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