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2부 / 넘치는 은혜로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by 관리자 posted Aug 1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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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넘치는 은혜로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 /  고후 9: 6-15


 

 

1. 심음

오늘은 연보에 대한 마지막 설교입니다. 물론 앞으로 연보에 대한 본문이 나오면 다시 해야 되겠습니다만 평소에 헌금에 대하여 하지 않고 본문에 있다는 핑계로 기회다 싶어서 헌금을 강조하며 많이 내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그렇게 사용하기 아주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을 가지고 얼마든지 많이 바치면 많이 받는다는 식으로 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설교를 듣는 사람은 결국 헌금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이구나 하게 될 것입니다. 평소에 헌금 이야기를 하지 않더니 결국 본문 핑계 삼아서 헌금을 많이 하라고 하는 것을 보니 별수 없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반응이 다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래! 헌금 좀 더 하지’ 할 것이고 또는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의 방식대로 할 거야’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니면 ‘돈 바쳐서 복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더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생각은 모두 다 돈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심에도 내 생각과 마음에 이미 돈이 자리 잡고 있기에 은혜를 말씀하는 하나님의 말씀도 자꾸 돈으로만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돈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모두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어놓고서 많이 바치면 부자 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해서 헌금을 많이 내게 해야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그런 설교를 듣고 부자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하는 사람이나 모두 다 이미 돈을 사랑하는 죄악 된 마음입니다. 그래서 바로 앞의 9절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고 하는데,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을 연보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뿌리지 않으면 거두지 못합니다. 적게 뿌리면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두게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덕분입니다. 창세기 8장을 보면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고 합니다. 심고 거두는 것이 계속되는 것은 땅이 있을 동안에만 그러합니다. 이 땅이 사라지면 심고 거두는 것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심으로 노아 언약보다 더 놀라운 언약이 시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농사에 국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있는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고후9:10상) 라는 말씀도 농사의 일반적인 원칙입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9:10후)라고 하십니다. 갑자기 의의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를 심고 거두는 농사처럼 말씀하시면서 그 결론의 열매는 의의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 6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3)많이 심는 자는 3)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여기에도 보면 ‘많이’라는 단어 앞에 3)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성경 밑에 보시면 헬라어로 ‘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으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복으로 심는 자는 복으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를 하는 것이, 십일조를 하였더니 두배 세배로 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연보자체가 은혜며 복이기에 그 연보를 하는 것이 복으로 심고 복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에 대하여 성경 한곳을 더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7-10) 심고 거두는 것에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육체로 심고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고 영생을 거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심고 거두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영생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혹 연보를 한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복 받기 위해 한다면 그것도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생을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심과 뜻을 배제한 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다 육으로 심는 것입니다. 그렇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에 영으로 바꿀 능력이나 자질이 사람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나온 것으로 아무리 심고 거둔다고 하여도 그것은 이미 썩어진 것입니다. 지금 썩어지지 않아 보여도 주님 재림하시면 다 불살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심의 결과로, 은혜의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성령으로 심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며, 고린도후서 9장에서는 은혜와 은사로 나타난 연보인 것입니다.

 


 

2. 은혜의 연보

그렇기에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연보가 은혜와 은사로 나타나기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 그러면 내 쪽에 무언가 이익이 되도록 받는 것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 은혜가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도 은혜인 것입니다. 또한 인색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연보를 하는 것도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즐겨내는 자를 통하여 나타나기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십니다. 연보도 은혜이기에 넘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연보에 부족함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은혜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일에 부족함이 없이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받았다면 교회의 연보가 부족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부족하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속에 자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늘 남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기에 넉넉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족할 줄 아는 것이 경건에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고 지금도 계속하여 주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믿는 사람은 넉넉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은혜를 받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후9:9)는 말씀은 시편 112편 9절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시편 112편 전체를 보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시112:1-10)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흉한소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일의 염려와 두려움 때문에 베풀지 못하는 것은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기의 소유를 늘리는 것을 복이라고 하지만 이 시편의 말씀은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해 지심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신 것을 궁극적인 성취로 봅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은혜를 입은 자들 안에서 이런 복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미 하늘나라의 부요함을 맛본 사람은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보란 결국 무엇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입니까? 11절입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고후9:11-12) 고린도 교회가 넉넉하게 연보를 함으로 그 연보를 받은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돈을 모아서 구제를 하였다면 고린도 교인들이 감사패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연보하는 봉사의 직무로 인하여 성도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것만이 아니라 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인하여 넘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9:13-15)고 합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증거를 삼은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의 증거가 성도를 섬기는 후한 연보가 바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또 이 연보를 받은 자들이 간구하며 고린도 교회에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한다고 합니다.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를 하였는데 예루살렘 교회가 고린도교인들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차고 넘친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연보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연보를 통하여 무엇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까? 연보를 많이 하였더니 부자가 되게 해주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연보를 통하여 지극한 하나님의 은혜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연보만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와 은사를 맛보아 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3. 생명의 샘물

요한복음 4장에 보시면 사마리아 우물가에 목마른 여인이 물을 길러왔습니다. 이 여인은 목만 마른 것이 아니라 온통 세상의 것들이 다 목마른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다섯 명이나 갈아 치우고 지금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 일부러 사마리아 우물가에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의아해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물을 좀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말하기를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주겠느냐”고 합니다. 이 우물은 야곱이 우리에게 주었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크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물을 먹는 자 마다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을 동문서답을 하지만 결국 예수님이 누구신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내버려 두고 마을로 가서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와보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 여인의 목마름과 수치가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을 피하여 한 낮에 물 길러 온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물동이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생수에 대해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고 하심으로 결국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목마름을 해결하여 주실 우리 안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에 목마릅니까?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은 우리의 목마름을 결코 해결하지 못합니다. 마치 망망대해에서 소금물을 마시듯이 계속하여 갈증만 더할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하여 쏟아지는 그 생명수를 마시는 자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성전 동문에서 물이 나와서 발목과 무릎과 허리를 넘쳐흘러 능히 헤엄칠만한 물이요 사람이 감당치 못할 물이 차고 넘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겔47:8-10)고 하여 이 물이 가는 곳마다 죽은 것이 살아났습니다. 이 생수의 강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오늘도 넘치게 흐르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은사를 우리도 범사에 맛보시고 또한 모든 은혜와 은사의 일이 우리에게도 넉넉하게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주께 받은 은혜는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표현하며 그 사랑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표현됨을 통해 우리 모두가 누구에게든지 필요한 자로 그리고 자족한 자로 살아가시어서 하나님 앞과 모든 성도들 앞에 그 위대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알게 모르게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2.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과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3. 은혜를 넘치게 받은 자들의 특징은 무엇으로 나타난다고 합니까?

4. 고린도교회의 도움을 받은 자들이 고린도교회가 아닌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바울이 이 은혜의 연보를 통하여 증거를 삼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6. 세상 것의 목마름에도 물동이를 버릴 수 있고, 죽은 우리의 심령이 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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