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1,293
오늘 : 11
어제 : 217

페이지뷰

전체 : 78,741,763
오늘 : 31
어제 : 2,162
조회 수 144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무너뜨림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본문 /  고후10: 7-11


1.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자신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내세움으로 바울사도를 상대적으로 그리스도에 속하지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하는 사람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 외모만 보는 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후10:7)고 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믿는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너희들 속으로 다시 생각하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자신은 과연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들을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는지 아니 속하였는지 과연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고린도 교인들은 외모를 보았습니다. 자신들에게 나타난 지식과 은사들을 가지고 자랑하며, 그것으로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무언가 받을 만 해서 받았다는 자기 자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있는 그 무엇도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받은 것이 은혜임을 알게 하시고 또 우리가 어떤 자들임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달리 소망이 없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바르게 알며 그리스도만을 소망하는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약할 그 때에 그리스도가 강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우리의 본성상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강하고 잘 됨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내가 못되고 실패하고 연약해지면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려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일 것이며 우리가 한 번 쯤은 들어 보거나 경험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세례를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는 것에 대해 마음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못하고 있었는데 자기를 인도한 분이 찾아와서는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십일조를 잘 해야 집사직분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목회자에게서 언질을 받아 전한 것입니다. 처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는 복음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평생 평신도라도 상관이 없다고 여겼는데 분위기상 안 할 수가 없어서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십일조를 하게 되었는데 목회자가 십일조를 처음 하는 가정에 하늘 문을 열어 복에 복을 더하여 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너무나 어색하고 거북스러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무거워 오후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집으로 가려고 하니 오후예배를 드려야 물질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들에게 이런 것이 복음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시험에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다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살아 보셨을 것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함으로 하늘에서도 많은 상을 받고, 세상에서 복을 받는 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만약 세상에서 복을 받지 못하고 어려움에 처하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아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거의 대부분 이렇게 듣고 배우고 또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사도는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고 합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냐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구별하여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라면 모든 것이 다 은혜로 받은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은 것이기에 자랑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무언가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자랑이 나온다면 그것은 엉터리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그럼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도바울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9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9-13)고 합니다. 이런 모습의 사도를 보고 과연 누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여기겠습니까? 이런 설명들은 도저히 사람의 이론과 생각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모습이 된다면 환영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이론과 생각을 다 부수어버리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나눴던 내용을 보면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싸우는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소의 이론과 생각이 조금 전에 예를 들었던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아담의 후손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이런 이론과 생각인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보다 더 높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죄악 된 욕망입니다. 이런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예수님께서는 다 부수어버리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도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독생자를 세상은 자신들을 높여주거나 원하는 것을 주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십자가에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이미 멸망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자는 멸망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하는 일은 먼저 무너뜨리고 부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장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렘1:1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면서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게 하시는 일이란 여러 왕국 위에 세워서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리게 합니다. 그리고서 건설하며 심게 하는 것입니다. 장마철에 홍수로 뒤틀려진 집이나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반파된 건물들은 그냥 수리해서만 될 일이 아닙니다. 다 부수어 버리고 새로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교만하여진 이 세상을 보실 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사야 2장입니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사2:11-17)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여호와의 한 날이 임하면 모든 교만한 것들을 다 굴복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산이나 나무나 망대나 성벽이나 모든 아름다운 것들까지 높아질 만한 것들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어서 보기 좋다는 것들, 훌륭하다는 것들,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다는 모든 것들을 다 불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3. 무너뜨림과 세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위엄에 차고 영광스러운 여호와 앞에 누가 굴복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메시아가 이러한 모습으로 왔다면 모두 다 굴복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신 참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영광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 오셨습니다. 왕이시라면서 왕궁이 아닌 구유에 오신 것입니다. 왕족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자라시고 사람들에게 미움과 배척을 받아 모두가 저주스럽다고 고개 돌려 버리는 십자가를 지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고린도후서 10장을 보겠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우리의 무기인 하나님의 능력은 여호와 앞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깨어지지 않고 교만한 모든 인간을 벌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겠습니까? 예수님의 부르심과 초청은 세상의 영광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에 함께 죽는 길로 부르신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마귀가 자기에게 절하면 준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절하지 않고 예수님께 엎드려 굴복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란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곳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자신이 못 박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의롭다고, 진리라고, 옳다고 여겨온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전부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앞에 복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복종을 합니다. 자신의 모든 이론과 생각이 다 파하여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그리고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6장입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행26:9-16)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에 행하여야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가다가 예수님께 오히려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의 기원이며 바울의 사도직의 기원인 것입니다. 완전히 엎드려지고 나서 세움을 입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자랑과 의는 모두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며 자랑임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하여 자신은 늘 무능력자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복종된 자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무너지고 깨어지고 나서 새롭게 세워진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8절에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후10:8)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5절에서 모든 것을 다 파하고 무너뜨리고 복종하게 한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고 나서 세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앞에서 무너지고 나서 세움을 입었던 것처럼 지금 고린도교회의 모든 높아지고 교만한 생각들을 무너뜨리고 세워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권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권세란 십자가를 증거 하는 권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무너지고 세워져야 하는 것을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2-14)라고 합니다. 바울사도는 무엇을 잡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려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땅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을 소망한다고 합니다. 이런 바울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며, 이런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은혜의 날들이 되시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부름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와 속하지 않은 자를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2. 바울의 자랑과 그리고 그 바울의 자랑을 우리 본성상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방법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4. 이스라엘의 왕이 그 백성 가운데 왔으되 그 왕을 이스라엘이 죽인 까닭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이 아닌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 바울에게서 나타난 그리스도에게 복종 된 자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7. 바울이 말하는 주께서 주신 권세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3 8월 8일 / 히브리서 40. (히 10:19-25) 새로운 살 길 관리자 2021.08.07 90
672 8월 7일 2부 /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50 관리자 2011.08.13 2635
671 2022 8월 7일 / (약 1:26-27) 헛된 경건과 참된 경건 관리자 2022.08.07 310
670 2023 8월 6일 / 요한복음 12. (요 3:1-8) 사람의 거듭 관리자 2023.08.06 17
669 2023 8월 6일 / 요한계시록 23. (계 6:7-8) 넷째 인 관리자 2023.08.06 12
668 8월 6일 / (마 6:9-13) 시험과 죄악에 대한 바른 이해 관리자 2017.08.05 92
667 8월 5일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유월절을 지키라 9 관리자 2012.08.16 1425
666 8월 5일 / 마가복음 14. (막 2:18-2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관리자 2018.08.04 109
665 8월 4일 / 마가복음 63. (막 11:1-11) 주가 쓰시겠다고 한 나귀 관리자 2019.08.03 91
664 8월 31일 / 사도행전33. (행8:14-17)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슴을 받았다 함을 듣고 관리자 2014.08.30 704
663 8월 30일 / 로마서 2. (롬1:1-7)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 관리자 2015.08.29 456
662 8월 30일 / 갈라디아서 19. (갈 5:13-15) 얻은 자유로 종노릇 하라 관리자 2020.08.30 111
661 8월 2일 / 사도행전79. (행27:20-26) 내게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고 믿노라 관리자 2015.08.01 438
660 8월 2일 / 갈라디아서 15. (갈 4:12-20)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관리자 2020.08.02 164
659 8월 29일 1부 / 오해된 신앙과 합격점을 받는 신앙 관리자 2010.08.28 1385
658 8월 29일 / 히브리서 43. (히 10:36-39) 믿음으로 사는 의인 관리자 2021.09.11 140
657 8월 28일 1부 / 주 안에서의 바른 질서와 삶 관리자 2011.08.28 2032
656 8월 28일 / 로마서 50. (롬8:35-39) 우리에게는 없는 낯선 사랑 관리자 2016.08.27 189
655 2023 8월 27일 / 요한계시록 26. (계 7:1*-3) 세상의 현 관리자 2023.08.27 9
654 8월 27일 / 믿음 1.(롬 4:1-8) 우리른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관리자 2017.08.26 13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