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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열심으로 중매하는 중매자

본문 / 고후11: 1- 6

 

 

1. 하나님의 열심

우리의 옛 선조들은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과의 뗄 수없는 관계를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하였습니다. 그 다섯 가지가 바로 부자, 부부, 군신, 붕우, 장유라 하였고 이 다섯 가지로 기본을 삼아 인륜이라 하고 그중에서 남여가 혼인을 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다음세대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 그 중심에 있다고 여겼기에 결혼을 인륜의 중대사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인륜지대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 결혼이 필수였는데 오늘날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결혼을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 즉 연예결혼과 중매결혼이 있는데 오늘은 중매에 대하여 이야기 좀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혹 중매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중매를 하면 남자를 여자에게 소개하든, 여자를 남자에게 소개하든지 간에 그 사람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직업은 무엇이며, 집안은 어떠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자신이 소개하는 사람이 귀하고 좋은 사람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소개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시면 바울사도는 자신을 중매쟁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서를 통하여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리스도의 편지로 소개하였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중매한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소개하는 신랑이 얼마나 멋지고 좋은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질투가 없다면 참다운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데도 아무런 반응과 질투가 없다면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하는데도 늘 다른 곳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이것을 우상숭배라 하고 음란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렇게 다른데 마음을 둘 때에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냅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심판을 행하여서 다른 나라에 포로가 되게까지 하셔서 하나님의 열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의지할 만한 다른 나라까지 심판을 하셔서라도 이스라엘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열심을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난 곳이 호세아서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호세아서 1장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호1:2) 고멜은 처음부터 음란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선지자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자식을 낳게 되자 하나님께서 이름을 짓게 하시는데 그 이름들이 다 심판의 이름입니다. 아들을 낳아 ‘이스르엘’이라고 합니다.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딸을 낳게 되자 ‘로루하마’라고 합니다. ‘로’는 부정 접두어이고, ‘루하마’는 긍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자녀의 이름이 뜻이 ‘긍휼을 입지 못하다’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아들을 낳으니 ‘로암미’라고 하라고 합니다. ‘암미’ ‘내 백성’이라는 뜻인데 앞에 부정 접두어가 있어 그 뜻도 ‘내 백성이 아니다’ 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신앙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런 심판을 다 행하신 후에 다시 ‘암미’라 하고 ‘루하마’라고 부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심판을 행하신 후에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까? 호세아 2장입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2:19-20)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든다는 것입니다. 온갖 음란한 죄를 다 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사랑을 베푸심으로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자신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며 음란한데서 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도 보면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8:40-41)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아브라함을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시자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고 자기들의 아버지는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그들을 보고 마귀에게서 났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마귀에게서 난 증거이며 그것이 음란한 데서 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아무리 정결한 처녀 총각이라고 하여도 예수님을 알지도 믿지도 못한 자들은 모두 다 음란한 데서 난 자들입니다. 이런 음란한 이방인들을 긍휼과 사랑의 남편인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드리려고 바울사도가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중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의 이런 열심도 사실상 하나님의 열심인 것입니다.

 

2. 새로운 피조물

그러면 이미 아담의 후손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인이고 다 더럽혀지고 다 음란한 자들인데 어떻게 정결한 처녀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고 하십니다. 바로 앞의 말씀에서는 성도란, 아무도 육체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과거를 따라 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고 평가할 때에 과거의 이력과 경력을 보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며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음란한데서 태어난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까? 그 앞에 1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고 하십니다. 호세아서에서 보았던 그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 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과거가 어떠하든 새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결한 신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물론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떡을 먹고 배불러서, 기적을 보고서 따라온 자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만나주신 병자들과 세리와 창기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병자들을 죄인이라 병든 자로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자들입니다. 세리도 창기도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들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은 자기 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가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의란 누더기와 같은 것이며, 거미줄로 짠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으로 옷을 만들지도 못하지만 만들어서 입는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의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결한 처녀가 되어 한 남편인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에서 끊어지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한 것처럼 오늘날 성도를 유혹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입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3) 뱀의 미혹으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스스로 선악을 챙기며 살게 된 것입니다. 선과 악이 동시에 들어왔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또 하나의 악이 자기를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이 갈등 속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선으로 악을 이겨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실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사망의 몸입니다. 아무리 선을 쌓아서 악을 상쇄시켜 보려고 하여도 이미 그 노력 자체가 범죄 한 이후의 노력인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죽도록 선행을 하여도 그 속에서 악이 더 강하게 따라 붙는 것에 대하여 인간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 인간들이 스스로 정리하여 내린 진리관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비록 죄를 안 지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나를 가상하게 봐 줄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소한 51%의 선을 행하면 선 쪽에 무게가 더 나가기에 지옥에야 보내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나의 갸륵한 정성을 받아 주지 않는 신이라면 그 신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이후의 인간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무슨 정결함이 나오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음란한 것이란 남녀의 성적인 관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음란한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다 음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한 신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정결하게 되는지 에베소서 5장입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5:26-27) 남편과 아내에 대한 말씀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성도가 교회인 것입니다.

 

 

3. 진리와 유혹

이 멋진 신랑을 소개하는 것이 바울의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소개가 어떻습니까? 직업은 목수였는데 지금은 실직자인 것입니다. 거기에 학력은 무학력이며, 가정형편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입니다. 재산이라고는 전세방은커녕 월세방을 얻을 능력도 없습니다. 외모는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시각으로서의 예수님의 이력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소개하면 과연 중매쟁이가 받을 대접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옛 말에도 ‘중매 잘 서면 술이 석 잔이고, 잘못서면 뺨이 석대’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왜 바울사도가 가는 곳마다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쫓겨 다녔는지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중매한 신랑감이 형편이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나를 뭐로 보고 그런 신랑감을 소개하는가 하면서 죽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창녀이고, 죄인이라서 결혼은 꿈도 못 꾸는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이런 신랑도 멋지고 좋은 신랑감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본인들이 자신들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모르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오늘날은 이럴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멋지다고 그렇게 결혼하느니 차라리 결혼 안하고 혼자 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멸망 받은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능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아무런 힘과 도움도 주지 못하는 예수님을 우리의 영원한 신랑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아무도 이런 신랑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하와가 미혹을 받은 것처럼 지금 고린도 교인들이 아니 오늘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마음에서 떠나 부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11:4)라고 합니다. 오늘날 혹 우리가 외모를 자랑하고픈 마음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울이 전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원한 신랑은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영광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 죽으면 그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 완벽한 죄 사함이 있고, 영원한 용서가 있습니다. 흠도 티도 없는 정결한 신부로 세우시는 능력이 그 보혈 안에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계19:6-9) 아멘!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잔치에 청함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야 하는지 또 우리가 어떤 존재였고, 어떻게 정결한 신부가 되었는지 그리고 신랑 되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히 알기를 원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매일 매일을 주의 순결한 신부로 감사와 감격 가운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매일의 삶에 내가 아닌 주의 흔적만 남기는 아름답고 존귀한 주님의 신부로서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열심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2. 호세아와 고멜을 혼인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내용은 무엇입니까?

3. 음란한 데서 태어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며 또 그 렇게 신부가 된 것을 알게 된 자들이 가지게 되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4. 당시 죄인 취급받던 자들이 바리새인들 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죄인 된 인간들이 가지는 구원과 신에 대한 인식은 무엇입니까?

6. 바울의 중매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자와 핍박하는 자는 어떻게 나누어지게 됩니까?

7. 우리의 신랑 되신 우리 주님께서 신부된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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