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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

본문 / 고후12: 7-10

 

 

1. 약함과 강함

여러분은 어떤 시합을 하는데 지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이기는 것이 좋습니까? 또 예수님을 믿는데 약한 자로 사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강한 자로 것이 좋습니까? 어찌 보면 이런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한 것을 좋아하고 이기는 것을 좋아하지 누가 자신의 약함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이 이렇기에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가지게 된 우리의 신앙 기준은, 예수 믿는 사람이 불신자들보다 잘 되어야지만 예수를 잘 믿는 것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것은 윤리 도덕적인면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불신자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착하게 살아야 하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직장도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 전국의 유명한 목사들이 기도한 내용을 컴퓨터 서버에 받아 놓고 회비를 내고 등록하면 백일 동안 그 유명한 백 명의 목사에게서 기도를 받을 수가 있다고 하는 광고를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사도가 ‘자신이 받은 계시가 지극히 크기에 하나님께서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자신의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육체에 가시를 제거하여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면서 약할 때에 온전하고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전능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전능한 능력이 나타나서 다른 사람이 감히 이루지 못하는 엄청난 일들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서 보란 듯이 하나님 믿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 하나님도 영광스럽고 나도 영광스럽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평소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그런 우리의 평소의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내가 보란 듯이 강하고 싶은데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은데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사도는 죽도록 충성하였는데도 강하기는커녕 도리어 약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를 더욱 강하게 하셔서 아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위대하게 하셔서 사용하면 얼마나 더 효과 있게 전도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친히 바울사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약할 때에 강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약할 때에 강하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합니다.

 

 

2. 이스라엘의 힘

인간은 아담이 범죄하고 나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자기의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는 모든 것을 받아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자기가 땀을 흘려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약하면 안 되고, 강해야만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게 됩니다. 형인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동생인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에 분노하여 동생인 아벨을 죽이게 됩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벌을 내려 가인이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며, 땅은 효력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가인의 후손들은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욱 강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죽은 아벨대신에 셋을 주셨습니다. 이 셋 계열과 가인의 계열이 대비가 되는데, 가인의 계열은 스스로 힘을 길러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반면에, 셋 계열은 에녹과 노아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나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나라로 갔으며, 노아는 홍수 때에 다른 사람들은 세상의 힘을 모으기 위해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기 바빴지만, 노아는 방주를 준비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은 전개되어 지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셈계열의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또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 중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지만 그 부모들은 자기 취향대로 자녀를 사랑하였기에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축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자녀도 서로 축복을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린 것입니다. 이 당시에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것은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기에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 중에 야곱이 더 교활합니다. 야곱(야아콥)은 그 이름의 어근이 ‘아카브’인데 그 뜻은, ‘발뒤꿈치를 잡는다’란 뜻과 ‘뒷면’이란 의미가 있어서 나쁜 의도로 사용될 때는 ‘남을 속이는 자’ 또는 ‘거짓되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답게 아비와 형을 속여서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아내서 강해지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야곱을 형이 죽이려고 하자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서 그곳에서 아내를 얻기 위하여 14년 그리고 자신의 품삯을 위하여 7년을 더 일하여 죽도록 고생하여 부자가 됩니다. 그런데 에서도 사백 명의 사람을 거느릴 수 있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는 사실 에서가 더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복 받은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곱의 생각대로 자신이 부자가 되고, 강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은 표가 된다는 사고방식을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재산이 늘어나자 안색이 달라지는 외삼촌과 그 자식들을 피하여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형님을 만나야 하는 문제에 부닥칩니다. 얍복 강 나루터에서 모든 소유물과 가족을 먼저 건네 놓고서 혼자 남았다가 어떤 사람, 즉 천사와 밤새 씨름합니다. 이 천사가 야곱의 환도 뼈를 칩니다. 그래도 야곱은 놓지 않고 붙들고 늘어지며,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름을 묻자 야곱이라고 하니 이제부터는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합니다. 환도 뼈가 위골 되고서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환도 뼈란 허리 밑에 커다란 뼈인데 이 환도 뼈가 위골됨으로 야곱은 약한 자가 됩니다. 평생 지팡이를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야곱이 나중에 바로 왕을 만나서 하는 말이 자신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손자들을 축복할 때도 지팡이를 의지하였습니다. 자기 힘으로 강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약하게 되니 이제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하게 되는 진정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의 열두 자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됩니다. 그렇기에 이 이스라엘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면 망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는 강해야 삽니다. 그래서 경제력을 키우고 국방력을 키웁니다. 국가가 힘을 키우기 위하여 자녀도 많이 낳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만드신 나라는 다른 힘을 의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17장에 보면 왕을 세울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신17:14-17) 왕은 말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왕의 힘인데 이것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특징입니다. 말이 많고, 정략결혼을 하여 동맹관계를 맺고, 은금이 많으면 그런 힘을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스스로 힘을 비축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허물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게 하셔서 가진 것들을 다 빼앗기게 하시거나 다른 나라로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의지 하지 않아서 망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사사시대의 기드온의 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디안의 적들이 얼마나 괴롭혔는지 기드온이 밀을 타작하는데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포도즙 틀 안에서 타작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큰 용사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께 너와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자신의 집안은 므낫세 지파 중에 극히 약하고 자신의 아비 집안에서도 제일 작은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는 네가 미디안 치기를 한 사람 치듯이 할 것이라고 합니다. 기드온이 믿음이 없어서 몇 번이나 하나님의 표적을 요구하여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고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합니다. 그러자 삼만 이천 명이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만약에 이기면 자기들의 손의 힘으로 이겼다고 할까봐서 두려운 자는 다 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만 이천이 돌아가고 일만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전쟁 할 때에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이미 율법에도 있습니다. 신명기 20장입니다.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신20:5-8) 새 집을 짓고 준공을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약혼한 자 그리고 두려워하는 자는 돌아가라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한 사람이라도 많아야 하는데 이런 자들을 다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말의 힘과 병거의 힘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에게 만 명도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하면서 냇가에서 물을 마시게 하여 적은 숫자 삼백 명을 택합니다. 이들은 일당 백의용사라서 택한 것이 아니라 숫자가 적기에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백 명이 무기라고는 항아리와 횃불을 준비하여 삼대로 나뉘어 항아리 깨고 횃불 들면서 고함만 질렀는데 적들이 자기들끼리 찌르고 죽고 한 것입니다. 기드온이 승리하고 오자 백성들이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기의 힘이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의 전쟁인 것입니다. 결코 인간의 힘으로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른 전쟁들도 다 이런 방식의 전쟁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스스로 힘을 길러서 싸우고자 하면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전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렇게 사용하시는 이유는, 세상의 헛된 힘을 의지하고 그것을 좇아가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3. 오직 주님만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언제나 원하고 찾는 것은, 세상의 힘과 강함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린도전후서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어떤 특별한 인간에게 대단한 능력을 주셔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약하게 하셔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 사람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일하심을 증거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13:4) 그리스도가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사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성경의 도구들은 그 누구도 자신의 강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약함을 말할 뿐이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비록 약하나 그리스도께서 강하심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4:7-12)고 합니다. 우리는 다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을 빛내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이 깨어짐으로 그 안에 담긴 보배가 빛이 나는 것입니다. 질그릇 속에 보배가 없는 사람이라면 질그릇을 치장하다가 한 평생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자신은 약하여져서 능욕을 받아도 그 속에서 그리스도가 드러난다면 그것을 기쁨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질그릇에 보배가 담기는 것도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6절을 보시면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합니다. 즉 천지 창조의 그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약함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과 비교하여 나는 이것이 부족하고, 저것이 부족하다는 그런 것들에 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가 약하여 깨어지더라도 그 안에 보배가 담겨있다면, 그렇게 약하게 하심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기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그때에 그리스도가 강하심을 증거 된다면 그것으로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바울의 이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 우리 모두가 이 신앙 위에 굳게 서서 주만 바라며, 주만 선포하며, 주가 나를 통해 표현되어 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주 안에서의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성경의 이야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2. 성경에 있는 가인의 가문과 셋 가문의 후손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왜 그런 것입니까?

3. 야곱의 삶과 그가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과정 가운데 일어난 일들은 무엇입니까?

4. 야곱의 열두 아들로 이루어진 이스라엘과 이방나라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께서 냇가에서 물을 마시게 한 다음에 삼백 명을 택하고 이기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6.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7. 바울의 기쁨과 또 오늘날 성도라는 우리의 기쁨은 무엇이어야만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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