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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본문 /  고후12:11-18


1. 참된 사도의 표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약점은 감추고 자신의 장점만을 부각시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약할 때에 그리스도가 온전함이 드러나고, 자신이 약할 때에 그리스도가 강하기에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가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의 출신과 자신의 경력과 수고를 말하고 있는 것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을 대접하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나은 대접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사도가 고린도 성도들에게 사도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게 되면 지금까지 바울을 통하여 전하여진 복음이 손상을 입을까 염려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아도 주 안에서 감당하는 자였습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이 여김을 받고, 온갖 곤란과 궁핍과 능욕을 받아도, 견딜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되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고린도 교회에 전하여진 복음에 대하여 바울 자신이 어느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면,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놀라운 확신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바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복음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표이며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 자신도 이 복음에 배치되면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하여 겸손과 헌신과 충성된 모습으로 증거 하고 있는데,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이 나타나서는 바울을 배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바울을 통하여 전하여진 하나님의 복음마저 배척을 받게 되기에 어리석은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랑을 하게 된 것은 바울이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고후12:11)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시켜서 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빠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자랑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자신이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바울사도의 사도된 표는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큰 사도들이란, 스스로 큰 자인 척 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보다 자신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어리석은 자랑을 통하여 말한 것입니다.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모를 자랑하는 그들과는 달리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하고 참된 사도의 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원래 사도란 예수님의 열 두 제자를 칭하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열 두 사도 중에 탈락한 가룟 유다를 대신해 다른 한 사람을 제비뽑아 그 자리를 채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그 사도의 자리를 대신할 자의 자격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1:21-22) 가룟 유다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된다는 것을 시편을 인용하면서 사도를 뽑는데 어떤 자격인가 하면, 세례요한의 때부터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실 때까지 함께 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사도는 여기서 말씀하는 자격에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고 하여,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위하여 바울을 택하였다고 하십니다. 즉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부름 받은 것입니다. 교회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지는 것인데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인 중에서 택함을 입어 나온 자들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사도의 표가 무엇입니까? 다시 오늘 본문입니다.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고 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참음입니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바울에게 나타났지만 고린도 교회에서는 많이 행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복음 전함이 바울의 지식이나 능력 때문이라고 할 까봐서 심히 두렵고 떨었습니다. 그러니 자기를 자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표가 아니라 그런 것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모두 주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도의 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가짜 사도들은 조그마한 것들을 과장해서 자기의 경건과 능력으로 나타난 것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참된 주의 종이기에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결국은 사람들을 자기의 종으로 삼아서 사로잡아 먹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무슨 표적이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다고 여기며 말하는 사람은 가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설교를 한다고 해서 그 설교하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신분이 다르거나 그렇게 할 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엉터리인 것입니다. 왜 그런가를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사도의 직분도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은사들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받지 않고 자기의 능력으로 하는 것처럼 왜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의 특징은 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그렇게 오래 참아주신 주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면 형제에 대하여 참아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알기에 주님을 믿음으로 이 말씀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참지 못하는 사람인가를 알며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를 용납 하며 사는 것은 오직 우리를 그렇게 구원하신 주의 은혜임을 알기에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의 사도의 표이며 주의 종의 표인 것입니다.


2. 거짓 사도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고후12:13) 사도로서 다른 교회보다 고린도 교회를 덜 생각한 것이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교회들에서는 연보를 받았는데 고린도 교회에는 연보를 받지 아니한 것이 불공평한 처사였다면 용납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고린도 교회보다 어려운 교회에서는 연보를 받았는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연보를 받지 않고 자신이 수고하고 또 다른 교회의 연보의 도움을 받으면서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고린도교회가 아직 감당할만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사는 풍성하였지만 아직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기에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연보를 하게 하였다면 연보하는 것은 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난 체 하는 자기 치장의 모습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후서를 보내는 지경에야 연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모습입니다. 무조건 바치면 복 받는다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를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을 오히려 이러한 바울 사도의 마음은 모르고 사도의 자격이 없으니 자신들에게서 받지를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게 할지라도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자기 사람 만든다고 하는 비판들이 나온 것입니다. 16절입니다.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고후12:16) 바울 사도는 아비의 마음으로 갑니다. 고린도교회를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재물도 사용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내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생각하고 사랑하여 이렇게까지 하는데 고린도교회는 도리어 바울의 이런 모습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고후12:17-18)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나뿐 아니라 내가 보낸 디도나 또 다른 사람이 너희의 이익을 취하더냐고 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성령으로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않더냐고 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성령으로 일하는 주의 종이라면 성도를 자신의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경우란 목사에게 대접을 잘하면 복을 받는다는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교묘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면서, 주의 일이라고 하면서 교인들을 축복과 저주라는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면서 자신의 야망을 위하여 일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운데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 합니다. 이렇게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이 나의 욕망과 성공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방법이 되는 이익의 재료가 된다면 그것은 오늘 본문의 고린도교회 가운데 있는 거짓 사도들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나오는 곳이라면 돌이켜 신앙을 점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3, 부모의 심정

그러면 참된 사도의 표는 무엇입니까?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고후12:14-15) 여기 보면 바울은 세 번째 고린도교회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가는 것도 너희에게 폐를 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도가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바로 너희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식 잘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이용하여 덕을 좀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자식이 머리 컸다고 부모를 우습게 여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시골에서 부모가 어렵게 농사짓고, 소 팔아 가면서 대학을 보내었더니 여름방학 때에 자기 여자 친구와 놀러왔다가 거름지고 가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자기 집 머슴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 교인들이 이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사도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자식 아니라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바울은 또 다시 해산을 수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의 모습이며, 참된 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재물을 준비하는 것이지,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고, 자기 자신까지 내어 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자기는 굶어도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정상적인 부모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도의 모습이며, 참된 주의 종들이 모습인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입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7:24-29) 이 말씀을 다윗이 하나님께 하게 된 배경은 1절부터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목동에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고 적을 다 물리치고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초라한 천막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워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집이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약속을 받고 다윗이 간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복을 허락하였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오늘 이 복이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을 받은 자로서 이 받은 복을 증거 하는 모습이 사도의 표이며, 주의 종의 표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위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표이고, 이 마음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누구를 바라보든지 그를 아비의 심정으로,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시며 대하시는 것같이 우리 또한 그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을 안다면 우리에게서 마땅히 보여야 할 것이 우리가 받은 그 사랑과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의 이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욱 더 세워져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사도 바울이 가진 복음에 대한 확신은 어느 정도이며, 우리도 그런 확신을 가졌습니까?

2. 바울 사도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에 대한 사도의 표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바울이 말하는 사도의 표 중 오래 참음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처음부터 연보를 받지 아니한 이유와 나중에 연보에 대해 말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바울 사도와 같이 동일한 성령으로 봉사한 자들의 사역은 모습은 어떤 모습이라고 합니까?

6. 바울이 세 번째 고린도교회에 갈 때에 가진 사도와 참된 종으로서의 마음가짐은 무엇입니까?

7. 다윗에게 허락한 복과 연관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만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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