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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

본문 / 고후12:19-13: 2

 

 

1. 주를 만난 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누가 더 능력 있는가에 따라 대우를 달리하는 것도 바로 이 세상의 속성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서도 이런 세상의 속성이 잘 드러났습니다. 여인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라고 왔는데 제자들이 못 오도록 막아선 것입니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힘없는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며,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신 것은, 어린 아이가 순수하거나 착해서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린아이는 의식주에 대한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 부모로부터 공급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떡으로만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우리 모두는 하늘의 것을 스스로 만들어서 자족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오직 하늘 아버지로부터 공급 받아야만 하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차원에서 우리 또한 어린아이에 불과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 합니다. 오직 우리의 공급자 되시는 주만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아는 자들의 나라인 것입니다. 또 제자들은 강하고 능력 있는 자들이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게 되는 것인 줄 알고 누가 높으냐며 시기와 경쟁을 하였습니다. 그때도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를 내 세우시면서 어린 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결국 천국은 사람의 노력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닐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에 따라 큰 자가 되는 곳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철저하게 알아 오직 주만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더 많이 깨닫고, 더 많이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리시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를 더 많이 받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인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말씀은 세상의 이론과는 정반대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바울사도도 정통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얼마나 열심이 대단하였는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던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겼던 모든 자랑거리들은 배설물로 여기고, 자기가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십자가란 세상이 볼 때에는 무능한 것이며, 약한 것이며, 저주 받은 모습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은, 그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 되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는 못난 것과 약한 것만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바르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청탁하러 와서 자신의 아들들을 주의 나라에서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혀달라는 부탁을 하였을 때에 예수님이 대답하신 결론의 말씀입니다. 세상은 높은 자가 권세를 부리는 곳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높은 자가 종이 되어 섬기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종교란 신에게 자신의 정성을 바친 만큼 그 반대급부로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일종의 거래요 장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주님의 섬김을 받는 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무능한 자인지를 알아야만 주님의 섬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섬김을 받은 자가 바로 바울사도입니다. 주님의 이런 섬김을 받고나니 전에 자신이 잘난 자 인줄 알았는데, 자신이 어린 아이요,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주님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섬김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의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14절의 말씀을 보시면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사도가 가는 곳곳마다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여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처럼 복음으로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자식들 중에 속을 많이 썩이는 자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지리도 말도 안 듣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자식입니다. 그러나 참된 부모라면 그런 자식일수록 애정이 더 많이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여러 교회들에 서신을 보내지만 고린도 교회에 가장 긴 서신을 보낸 것은, 그만큼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정이 더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였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

그러면 그렇게 말 안 듣는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지난주에는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준비한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을 보면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후13:1-2)고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른 부모라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좋은 것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잘못되었을 경우에 매도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12:5-13)고 하십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고 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하십니다.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육체의 아버지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십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나 또 고린도후서 13장에서 이렇게 무서운 책망을 하는 것이나 결국은 다 오늘 본문에서는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덕을 세운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도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율법의 규칙을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그들을 그리스도 앞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예수 그리스도의 이 아름다운 덕을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사도는 어떤 덕을 말하겠습니까? 결국 주가 한 분이시오, 계시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인 것처럼 바울사도도 같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길게 자신을 변호하는 것은 자신을 알아달라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는 이때까지 우리가 자기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 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후12:19)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모든 것은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복음을 받았다면 이 덕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고 긍휼을 입지 못한 자였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백성이 되고 긍휼을 입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전에는 어두움이었는데 이제는 빛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모든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섬겨주신 결과입니다. 이렇게 섬김을 받은 자는 또한 다른 형제를 섬기는 모습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 모습이 겸손이며 헌신이며 희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이런 모습을 보고서 무언가 부족하고 못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고후12:20)라고 합니다. 내가 갈 때에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너희가 보지 않게 될까봐서 두렵고 또 너희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내가 보일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봐 염려가 되고 또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을 잘못 보게 될까봐 염려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부모 된 심정으로 자녀를 위하여 희생한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함인데 오히려 그들이 그런 바울을 제대로 보지 못하여 결국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까봐서 두렵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입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4:14-16) 바울사도의 관심은 자신이 어떻게 대접을 받는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를 드러내기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바울을 오해하여 혹 시험에 들고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바울의 마음이며 바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3. 문제의 원인

또한 바울사도는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한다는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목록들이 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까? 왜 교회 안에 다툼이 있고, 시기와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까? 왜 분내고 당 짓고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 앞에 제대로 세워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주님 앞에 제대로 세워진다면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로 드러나고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만 바라보게 되는데 지금 고린도교회가 이렇게 된다는 것은 이미 자기들의 자랑거리로 인하여 교만하여 졌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결국 이런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세워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적을 가지고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는 남과 비교를 하면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누가 잘했는가 하는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고 온갖 수군거림이 나오고 비방과 거만함과 혼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덕을 자랑하고자 나섰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발생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적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바울이 21절에 보면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2:21)고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시 갈 때에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렵다고 합니다. 바울의 겸손과 희생이 고린도 교인들이 평소에 바울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긴 것처럼 될까봐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까지 낮아 지셔서 바울을 섬겨 주셨듯이, 바울도 고린도 성도들보다 더 낮은 자로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의 본질을 오해하여 바울도 무시하고 더 나아가 바울을 통해 전하여진 복음까지 무시할까봐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또 하나의 염려는 이미 고린도교회에 책망의 편지를 보냄으로 그들이 회개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만 그러나 아직까지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에 방문할 때에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였다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는 마음인데 그들이 정말 그때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심정인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며 그리스도의 덕을 세우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권면을 받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덕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서 세워진다면 자신의 못남을 자랑하고, 주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만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시기와 다툼이 아니라 주님의 아름다운 덕만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주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 우리 교회에 이런 주의 마음과 은혜와 사랑만이 가득하여 어디에서든지 또 누구에게든지 이런 지체를 사랑함으로 그를 주 안에서 세워지게 하는 아름다운 사역만이 가득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천국이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는 것과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큰 자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의 복음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3. 자녀를 사랑하는 참 부모라면 자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4. 바울의 모든 이야기들이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 즉 아비의 마음은 어떤 모습인 것입니까?

6. 고린도 교회나 오늘날 우리에게나 시기와 다툼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실까 두렵다고 한 까닭과 마지막까지 한 염려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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