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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본문 /  고후13: 1-10


1. 죄

오늘 본문에 바울 사도가 세 번째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것이라고 하면서 먼저 편지를 보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고린도 후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게 오래참고 희생한 바울사도가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가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문 하였을 때에 말하였던 것처럼 편지로 미리 말하여 두는 것인데, 죄 지은 자들을 용서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주에 이런 책망까지도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런 책망 속에서 바울사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보려고 합니다. 우선 바울사도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는 죄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내가 갈 때에~~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2:20-21)고 합니다. 모든 교회들이 다 문제가 있겠지만, 이 고린도 교회만큼 문제가 많은 교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고린도 전후서라는 이렇게 긴 편지가 남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문제를 통해 결국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다툼과 시기와 분냄이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얼마나 많은 다툼과 시기와 분냄이 가득한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으며,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이런 내용들의 말씀이 내게는 해당되는 것이 없다고 단정 지어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있고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책망은 한 마디로 세상을 사랑하는 죄악들입니다. 고린도 교회나 우리들이나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러한 것들이 다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았는데 왜 아직도 그런 짓을 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9-11)고 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지난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옛 사람의 허망한 것을 좇아 행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부끄럽고 죄송하여 회개하여야 하는데 도리어 그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큰소리치는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후서를 살펴보면 이런 모습들이 도처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죄 지은 것에 대하여 책망하는 바울사도에게 오히려 당신이 사도가 맞느냐며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믿음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바울 사도의 사도권에 대해 시비를 거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대답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13:3-4)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바울 통하여 말씀하시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 강한 사도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12장에서 자신이 부모의 심정으로 희생을 한다고 하고서는, 오늘 본문에서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했는데 이것이 진정 강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요구를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강함이란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약함이란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약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고 합니다. 연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원리를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약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약하심이며,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약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면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지만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그 약함을 나타내셨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타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약함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약함은 자신을 낮추어서 분노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는 약함이며, 하나님께 복종하여 자신을 포기하는 약함인 것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약함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 부활의 참 승리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강함으로 능력을 나타내었던 것처럼, 바울도 그리스도 사도로써 그리스도의 약함과 강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면 약한 자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셨던 그리스도의 삶과 같은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살리고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도 그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함께 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약한 자처럼 다가가고 또 그렇게 보이지만 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한 자처럼 십자가를 지신 것은, 결국 우리를 살리기 위함인 것처럼, 나도 약한 자 같으나 결국 너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그렇게 죽으셨다고 약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유케 하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강한 분이시기에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한 자면 자신에게 그런 불이익이 오면 금방 마음이 변하여 십자가를 거부할 텐데 강하시기 때문에 그 길을 변하지 않고 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도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세상이 알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믿음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하면서 ‘믿은 대로 된다’ 또는 ‘네 소원대로 된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성경에 있는 단어를 가지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세상의 강한 것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고린도전서 1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우리는 세상의 강한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 앞에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저주 받은 십자가를 구원의 표로 제시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약함보다는 강함과 외모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인들의 모습이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을 바울사도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어떤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율법식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도대체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하는 신앙의 근본을 다시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고 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하며 되묻고 있습니다.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자기 기준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는 이만하니 믿음이 있구나 하는 것으로 증거를 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너희는 버려진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온갖 문제들을 말하면서 하나하나 어떻게 의지적인 결단으로 고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은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죄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나를 믿고 내 결정과 내 인생의 야망을 위하여 살아온 모든 것이 죄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갖 문제들이 다 드러난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와 자랑이 나온다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 잘난 것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바울사도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너희의 믿음이 있는가를 묻고 있는데, 그 믿음이란 모든 것을 다 선물로 받은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은사가 나타나고 또 무슨 능력이 나타나니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약하여 짐으로 남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누르고 그 위에서 군림하고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좀 잘한다는 것이 있을 때에, 그것을 가지고 자신을 죽이고 남을 살리는데 사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를 살리고 남을 죽이는데 사용하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받은 믿음인지 아니면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지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사도가 권면하는 내용이 이런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약하심으로 너희가 살게 된 것처럼 내가 약함으로 너희가 강하여진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3. 주의 마음

그런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모습에 대하여 바울은 6절에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고후13:6) 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약하여 버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만물의 찌꺼기처럼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버림을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약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에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한 알의 썩는 밀알 되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다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도 결국 약한 모습으로 또 죽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그러나 그것이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고후13:7)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약하게 되었으니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약하여진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자기의 의가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약하여지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자신이 옳다는 것과 자기 정당성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나는 버림 받은 자 같이 보일 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라고 합니다.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며, 이것이 믿음에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9절에서 계속 봅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후13: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남이 다 죽어도 자신이 살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약하고 버린 자 같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강하여진다면 그것을 기뻐한다고 하며 또 구하는 것은 너희의 온전함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온전함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를 시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과연 지금 하고 있는 그런 일들이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셔서 지시하시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나를 드러내기 위하여 하는지 아니면 지체를 살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서 하는지 매사에 점검하여야만 합니다. 그 말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또 그 행위가 아무리 기독교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할지라도 우리 속이 무엇을 지향하며 그 사역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지체를 위한 것인지 너 자신을 돌아보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습인지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후13:10)고 합니다.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고 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동일한 책망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과연 믿음의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행동 하나 하나를 어떤 기준을 제시하여 그것에 맞추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새로운 율법주의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자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믿음에 있는지? 그리스도가 과연 내 마음에 계신지? 그리고 내가 그 분의 지시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버려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순간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지, 그 분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물어보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가 죽고 내 지체는 살아나는 일이 내 모든 삶에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주 안에서 바울을 통하여 권면을 받습니다. 우리는 과연 믿음이 있는 자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확인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내 만족에 빠져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내가 자랑되거나 내가 강해지려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죽은 자의 모습이고, 만물의 찌꺼기 같은 모습일지라도 나의 그 모습이 지체를 세우며 살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며 감격하며 사는 자입니다. 우리 주님이 또 바울 사도가 그 길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같은 성령으로 오늘이라는 이 시간에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책망 받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이 나와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강하지만 약함을 드러내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3. 바울이 말하고 있는 ‘약함’과 ‘강함’에 대한 개념은 무엇입니까?

4.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의 기준과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가 있는 자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5. 바울을 통해 말씀하는 믿음의 사람과 아닌 자의 구분을 무엇으로 알 수 있다고 합니까?

6. 약한 모습이 버림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와 또 그런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그리스도 안에 모습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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