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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다시 듣기

본문 /  유다서 1: 5- 7


1. 복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 유다는 일반으로 얻는 구원, 즉 인간의 어떠한 자격이나 조건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에 대하여 편지를 쓰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런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그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편지를 쓰려던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이런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자들이 나타났기에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내용을 덧붙여 편지를 한 것입니다. 이런 은혜로 인한 구원과 그 복음이 얼마나 좋았는지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가슴에서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인하여 복음의 내용보다 먼저 찬송의 말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14)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를 하는데 인사말이 끝나자 말자 ‘찬송하리로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복음의 내용을 전합니다. 이 내용 전체를 한마디로 하면 오직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를 이용하는 무리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니까 그러면 은혜를 더하려면 죄를 더 지어야 되겠네 하며 비웃는 자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은 복음이 전하여진 그때부터 오늘날에 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는 싸움입니다. 오직 은혜라고 주장하는 곳에서는 은혜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을 정당화 하는 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혜만을 말하면 그런 자들이 생기니까 그럼 행함도 따라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만이 아니라 행함도 있어야 한다고 하는 곳에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가리는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이 둘을 절충하는 ‘신인협력설’이 나온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그렇게 볼만한 구절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유다서에서도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하면서 구약에서의 여러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다가 말하는 구약의 예들이 행함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믿음이 없어서 인지를 함께 살펴봄으로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입니다.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유1: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모든 사실을 알았다는 말은, 자신들의 구원이 은혜로 된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이미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쓴다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살펴 본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듣고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거짓 선생들이 들어오니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다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다시 듣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봉사도 잘 하는데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복음을 들어야만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만 구원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다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정말 잘 잊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조금 잘한 것들이나 또 내게 상처를 입힌 미운 사람들은 오래 기억하면서도 자기가 받은 은혜는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지 모릅니다. 유다는 그런 우리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에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때가되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 것입니다. 결국 그 어린양의 피 안에 있었던 자들, 즉 살아남은 자들은 그 피의 능력으로 살았음을 알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의 능력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그들이 홍해 앞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고 보니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믿음은 다 잊어버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 속에서 모세를 원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합니다. 그들이 한 일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홍해가 갈라져 육지처럼 건너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홍해에 수장되는 것을 보고서 여호와의 구원을 찬송합니다. 여호와는 용사라고 모세가 찬송하고 백성들이 화답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처럼 하나님의 큰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큰 구원을 보고서도 3일 만에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광야 40년 동안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 동안은 믿음 없는 자들을 멸하시는 기간이 됩니다. 왜 멸하셔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출애굽한 후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40일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기를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대한 사람들과 강한 성벽으로 되어 있기에 그들과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아서 당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온 백성들이 또 원망하면서 장관을 세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14:11)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즉 출애굽부터 홍해를 건너 시내산의 강림을 보고, 지금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기사와 표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생각하지도 않으며 믿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은 광야 40년 생활 중에서 전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당한 자들은 행함이 없어서 멸망당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멸망당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못한 것은, 그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놀라운 은혜로 인도하셨기에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도 은혜로 들여놓으실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런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손익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광야에서 죽은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곤란한 질문이 됩니다. 그런 질문 역시 개인적인 구원에 대한 관심사에서 나온 질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다 멸망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관심은 이런 출애굽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좀 알라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가 이 편지를 쓰면서 출애굽의 과정을 말하는 것은,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가 어떤 것인지를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로 얻은 구원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생각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3:12-4:2)고 합니다. 여기에 보면 광야 40년에 대하여 말하면서 12절에서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있을까 하여 매일 서로 피차 권면하라’고 합니다. 14절에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처음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자들이 순종치 아니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을 이야기 하는 것은 결국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라는 것입니다. 유다가 말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6절에 보면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라고 합니다. 원래 천사란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일을 위해 시중드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런 천사조차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을 타락한 천사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늘의 처소에서 쫓겨나서 영원한 심판의 날까지 흑암에 가두어 두셨다는데 이 흑암의 세계를 이 땅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늘의 영광에 비하면 이 땅은 캄캄한 흑암의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탄은 끊임없이 이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고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싸움이란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8)고 합니다. 잠깐 뿐인 보이는 세상의 것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 가운데 어느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믿음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3-6) 이 세상의 신이 영원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비쳐졌다면 그것은 천지창조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복음도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붙들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는 7절에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1:7)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그 이웃의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 즉 유다가 말하는 거짓 선생들과 같이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꾼 자들입니다. 이미 구원을 얻은 자들임에도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에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육체를 따라가고 음행한 소돔과 고모라성과 그 주변의 도시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여 질 것이라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내렸던 심판이 그대로 그들에게도 이루어 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3. 본보기

이 세 가지를 내용을 통해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 7절 끝에 보시면 ‘거울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거울을 보는 것은,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를 보며, 머리나 몸을 살피고, 옷매무새를 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 자신을 살필 수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우리의 마음과 믿음의 내용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거울을 보듯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0장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10:11) 바울 사도도 유다와 마찬가지로 광야생활을 우리의 본보기(개역성경엔 거울로 말함)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는 그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한번 따 놓은 운전 면허증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운전면허증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운전면허증도 필요할 때만 꺼내 써 먹으려고 따 놓은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우리 생각처럼 사용해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은혜가 천하보다 귀한 것임을 날마다 생각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셔서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놓치지 않고, 늘 감격하며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하나님의 원하심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여 범사에 그 은혜에 통치함을 받으며 살아가는 예원의 가족들이 되어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매일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의 복음이 전하여진 곳에 복음을 오해하여 나타나는 두 가지 증상은 무엇입니까?

2. 이미 알고 있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멸망 받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성경이 출애굽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사탄은 누구이며, 그가 믿는 자들 가운데서 속이며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6. 거짓 선생들이 소돔돠 고모라 같이 음란하게 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유다가 또 성경이 이런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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