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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꿈꾸는 사람들은 화 있을 진저

본문 /  유다서 1: 8-11


1. 꿈꾸는 자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어떻게 심판 받는 것인가를 구약의 예를 들어 증거 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증거의 세 가지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하는 것과 천사들이 자기들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함으로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갇힌 것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도시들이 간음과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은 것에 대하여 거울이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명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서도 그런 심판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유1:8)고 하여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꿈꾸는 사람들이란, 요즘 세상이나 말하는 꿈과 비전에 대한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런 꿈에 대하여서도 잠시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주를 믿는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일 월드컵 때에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구호가 한때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하였습니다. 이런 꿈이란 사람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많은 교회들이 표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단어, 비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인 것처럼 여깁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꿈이 지배하는 교회가 된 것처럼 큰 꿈과 큰 비전을 가지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건물도 옛날에는 예배당 외에 짓는 건물을 교육관이라고 지었는데, 이제는 비전센터라는 이름으로 짓고 있습니다. 예배당보다 훨씬 더 멋있고 크게 짓습니다. 다양한 문화시설과 운동시설을 만들어 놓고서 자신들의 비전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가 오늘 우리 가운데 와서 이런 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꿈꾸는 자들이라고 하였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교회나 세상이 꿈을 이야기 하지만 그런 꿈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꿈입니다. 정말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꿈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을 모아서 그것을 꿈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이루도록 하는 것은 바로 다른 복음인 까닭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꿈꾸는 자들에 대하여 다른 번역을 보면, 공동번역에서는 ‘제 정신을 잃고’라고 하며, 표준 새 번역에서는 ‘몽상에 빠져서’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꿈꾸는 자들이란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 계시를 받고서 참된 계시라고 말하는 자들과 같은 자들인 것입니다. 열왕기상 22장(20-23절)에 보시면, 아합 왕 때에 시드기야 선지자와 미가야 선지자의 대립을 보게 됩니다. 시드기야도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증거물로 철 뿔을 만들어 가서 아람과 전쟁하면 이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 미가야는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는 영을 그들에게 부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아합 왕은 결국 다수의 말을 듣고 나갔다가 죽게 됩니다. 신명기 13장에도 보면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13:1-5)고 합니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들도 그들 나름대로 보는 꿈과 환상과 계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물론 심판받기 위하여 그렇게 됩니다만 문제는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도 결국 심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입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9-12)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나 꿈꾸는 자들은 자신들을 추종하게 하려고 온갖 이야기들을 다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꿈꾸는 자들이란, 인간들의 마음의 욕망을 하나님의 일로 포장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어내자고 하는 자들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 꿈꾸는 자들이란,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계시를 보았다거나 환상을 보았다고 하여 오직 자신들이 전하는 영적인 지식만이 참이라 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다는 이러한 자들과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2. 꿈꾸는 자들의 특징

유다는 이러한 자들의 특징에 대해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로 육체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처럼 육체를 더럽히고 다른 육체를 따르면서도 자신들은 자유 한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또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권위마저 업신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며 여기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서신서를 썼던 그 시대에 이런 꿈꾸는 자들이 나오게 된 배후에는 영지주의 사상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창조주를 평가 절하합니다.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신다면 세상이 어떻게 이런 꼴로 돌아가도록 내 버려두셨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모르기에 이런 반항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꿈꾸는 자들은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은 등급이 낮은 신으로 보고 이런 세상에서의 구원이란 세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 자들은, 물질과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기 때문에 육체의 방종이나 죄 된 행위는 영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르쳤고 그래서 육체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하는 자들이기에 교회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 어떤 규범에도 묶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에서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들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어떤 세상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자기들의 음행이나 우상숭배들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자신들처럼 그렇지 못하는 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나 믿음이 없는 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고린도전서에서 우리가 이미 보았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쫓아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영광을 훼방한다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천사의 예를 들어서 증거 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1:9)라고 합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천사장이라도 감히 훼방하는 말을 못하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미가엘과 마귀가 모세의 시체를 두고서 다투었다는 내용은 유대인들의 전승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승을 유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신명기 34장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신34:5-6)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보기는 하지만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므리바에서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치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장사되었지만 그 묘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묘는 천사에 의하여 감추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 미가엘과 마귀의 다툼이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럼 왜 모세의 무덤을 알지 못하게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놋으로 뱀을 만들어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놋뱀을 히스기야 왕 때까지 보관하고서는 그것을 음란하게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이 그 놋뱀을 부수어버렸습니다. 그런 물건들도 우상숭배에 사용될 정도라면 모세의 묘지도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것이기에 천사가 숨겨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천사장 미가엘조차 함부로 훼방이나 비방의 말을 못하는데 이들 꿈꾸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조차 함부로 비방하는 안하무인인 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농담거리로 바꾸어서 코미디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서에서 경고하는 이런 꿈꾸는 자들의 말과 행동들이 오늘날 교회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면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용납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지를 이런 말씀에 비추어 조사를 해보면 깜짝 놀랄 정도인 것입니다.


3. 멸망 받는 자들

다시 오늘 본문 10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1:10) 여기서 ‘이 사람들’은 꿈꾸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은 진리에 섰다고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말과 행위를 보면 성전 된 육체를 음행으로 채우고, 정당한 권위마저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마저 비방하면서도 자신들은 진리를 알기에 자유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만이 절대적이라고 믿고 반대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비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본능으로 행하며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유1:11)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꿈꾸는 자들에 대하여 한마디로 저주를 발합니다. 유다는 ‘화 있을진저’라고 하면서  이런 자들을 또다시 구약의 세 인물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세 사람이 다 같이 이성 없는 짐승처럼 그 본능으로 행하게 된 결과가 살인과 음행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먼저 가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아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아주시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동생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라고 경고를 하시면서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짐승 같은 본능은 죄를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결국 동생을 살해한 것입니다. 이러한 가인의 길이란,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시기와 질투와 미움으로 형제를 살해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의 동기를 예수님은 행위와 마찬가지로 보시기에 우리의 마음에 가인과 같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멸망의 길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발람입니다. 모압 왕인 발락이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발람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물질 때문에  그 어그러진 길을 가는 것입니다. 돈을 위하여 거짓 것을 참되다고 하며, 쓴 것을 단 것이라고 합니다.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를 말하며,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이 발람의 길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행동의 원인과 목표점이 사람과 사람의 영광에 있다면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고라입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이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것을 보고서 왜 너희만 잘난 체 하느냐고 대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권위에 대하여 대항한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모세가 지도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고라는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유명한 족장 250명을 대동하고서 왜 똑같이 자신들도 레위지파로 거룩한데 왜 너희만 높이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다고 하면서 성막의 일이 적은 일이냐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것은 정말 주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책망을 받는 꿈꾸는 사람들처럼 자신들은 가장 영적이라고 여기지만 그러나 그 속은 멸망 받는 짐승처럼 자신들의 본능에만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능대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은 예수 믿고서 자유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오늘 책망 받은 사람들처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혹 내가 이런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점검하셔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성경에는 이런 거짓된 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꿈도 있습니다. 유다서 1장입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1:24-25) 이 말씀이 오늘 주를 믿으며 사는 우리들에게 참된 꿈이 되어서 주 예수의 날까지 점과 흠과 티가 없는 아름답고 존귀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전(꿈)과 성경이 말씀하는 비전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2. 오늘날 꿈꾸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며, 그들이 나름대로 꿈과 환상이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초대교회 영지주의자들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를 시체를 감추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5. 오늘날 교회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오늘 본문에 유다가 말하는 꿈꾸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7. 유다가 구약의 나타난 꿈꾸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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