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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랑하는 자들아 사도들이 한 말을 기억하라

본문 /  유다서 1:17-23


1. 신앙점검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유1:17)고 하여 유다는 자신의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유다가 이렇게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로 인하여 한 형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은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사랑한다는 말과 얼마나 대조적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밀도를 측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나를 중심으로 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확증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신분이나 지위나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랑이며, 주 안에서 하나 된 사랑입니다. 구약의 예를 들면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입니다. 이들의 사랑은 두 사람 모두 다 여호와의 전쟁이 활과 칼에 있지 않음을 아는 사람들이기에 그 마음에 서로 연락되었습니다. 요나단이 죽었을 때에 다윗이 요나단을 위하여 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이 사무엘하 1장에 있습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삼하1:26)라고 합니다. 참으로 기이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원수사이이지만 그 사랑이 심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유다는 이런 사랑으로 권면을 하는데 그 첫 번째 내용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도들이 미리한 말은 18절에 보면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유1:18)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경고는 마지막 때에 거짓 선생들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말씀은 베드로후서 3장의 내용과 흡사합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3:3-4) 베드로 사도는 말세에는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는 만물이 처음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데 무슨 주의 강림이냐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의 약속을 믿지도 않으며 또한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같이 멸망하려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유다는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일어날 것을 사도들이 이미 말하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과 마음을 자꾸 비추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만이 아니라 바울 사도도 거짓 선생들에 대하여 여러 번 경고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29-31)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외부에서도 오지만 내부에서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서도 거짓 선생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자신이 삼 년이나 밤낮으로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을 보면 이런 신앙이 넘칩니다.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면서 그것이 신앙인양 신실하게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무감각해졌습니다. 언제부턴가 재림에 대한 찬양이 교회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항상 깨어 있어 우리 신앙을 바르게 점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기억나게 하는 권면 1

이렇게 마지막 때가 되면 조롱하는 자들, 즉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면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는데 그럼 그들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1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1:19)고 하여 이것이 그들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당을 지음으로서 분열을 일으키는 자이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분열을 일으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을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육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에 보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무시하고 분열되고 당을 짓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교회가 되었음에도 여러 당파가 생긴 것입니다. 나는 베드로파, 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파 라는 것입니다. 이런 파당에 대하여 바울은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누가 십자가를 졌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도 않은 자들을 어떻게 교회의 중심의 자리에 두고서 그들을 따라 파당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서는 이보다 더한 모습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정욕대로 행하면서 자신들이 영에 속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얼마나 많은 파당이 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교단과 교파가 얼마나 많이 나누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나누어질 때는 꼭 자기들이 진리라고 하면서도 신앙고백은 똑 같이 합니다. 결국 이렇게 나누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은, 진리를 사수한다는 미명아래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따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유다서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 회개할 일 뿐인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유1:20) 유다는 다시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유다는 거짓 선생들이 자신들이 영적인 지식을 가진 자라고 하지만 그들이 사실 육에 속한 자이며, 성령이 없는 자들이기에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거짓 선생들을 본받지 말고 너희는 사도들의 말한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도들의 말한 것을 기억나게 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주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합니다. 거짓 선생들의 기초는 자기들의 지식이나 체험이나 감정들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란,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입니다. 단번에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1절에 보시면 부르심을 입고 하나님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란, 거룩한 아버지, 거룩한 아들, 거룩한 영에 의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기초란 바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기초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위에 세워지지 아니하면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입니다. 반석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아니합니다. 건물의 기초가 부실하면 아무리 높고 멋있게 지은 건물이라고 하여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어디인지 다시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영적인 지식이 있다고 하면서 온갖 영적인 말을 해도 사실 그들은 성령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기도하는 것은 자기의 정욕대로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에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3)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신 기도가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였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는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유1:21-22)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자기를 지키라고 하면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유혹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로마서 8장에 의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이 바로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3, 기억나게 하는 권면 2

넷째로는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영생에 이르는 길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만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스스로 지킬 수가 있고, 우리가 스스로 영생에 이를 수 있다면 결코 주님의 긍휼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김인데 이것을 자신이 이루어낼 수 있다면 긍휼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없기에 오직 예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유혹을 받아서 그들을 따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심이 일어나는 자들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들을 보고서 정죄하거나 판단하기 보다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의심이 일어나지 않고 진리에 섰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실력으로 되었다면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아도 되겠지만, 진리에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도 주님의 긍휼로 인한 선물이기에 다른 연약한 자들에 대하여서도 긍휼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형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서 형제들을 도마 위에 많이 올립니다. 긍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쭙잖은 자기의 의를 가지고 천하를 다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야고보서 2장의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하는 이 말씀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긍휼을 입은 자라면 혹 의심이 있어 흔들리는 자가 있더라고 그들을 긍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째로는 23절에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1:23)는 말씀처럼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합니다. 어떤 자들이 지금 거짓 선생들에게 유혹을 받아서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불에 타고 있는 것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을 불에서라도 끌어내라는 것입니다. 이미 끝났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기에 불에서 끌어내는 심정으로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어떤 자가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어 본능적인 욕정에 빠진 자들이 있다면 그 본능적 욕정으로 더럽혀진 그들의 옷까지도 미워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또한 그러한 본능적인 욕정의 영향력을 입을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하여서도 역시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럼 본능적 욕정에 빠진 자들의 옷이라도 싫어하여야 하지만 그러나 긍휼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11장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11:30-32)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구원 얻는 모든 사람이 긍휼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기에 우리 또한 그런 자들에 대하여 내가 입은 긍휼을 저들도 입혀 주시기를 구하며 기다리며 긍휼히 여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을 하려면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기도하고 무시로 깨어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 말씀 앞에 서야할 것입니다. 들은 말씀들을 기억하며 상고하셔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유혹을 받고 있으면서도 유혹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불에 타고 있으면서도 불에 타는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기억하여야 하며, 읽고 묵상도 하여야 합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자들을 조롱하지만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하여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될 것을 기억하고 믿고 기다라는 자들인 것입니다. 오늘도 이 은혜와 권면이 듣는 우리들을 바른 믿음 안에서 점검케 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로 세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인간들이 하는 사랑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2. 유다는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했는데, 사도들이 한 말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3. 마지막 때에 나타날 조롱하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라’는 유다의 권면의 뜻은 무엇입니까?

5.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유다의 권면의 뜻은 무엇입니까?

6.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하는 유다의 권면의 뜻은 무엇입니까?

7.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는 권면과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는 권면의 뜻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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